아버님, 저 진정한 크리스천이에요.
난 분명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데 엄마가 뒤에서 나를 잡아당겨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일주일 만에 내게 연락하고 나와 연락이 닿지 않자, 신랑에게 연락을 해왔다. 내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걸까?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분노가 차올라 신랑에게 ‘당신도 우리 부모와 연락하지 마! 우리 애들도 절대 보여줄 생각 없어! 엄마의 선택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엄마도 깨우쳐야 해!’ 라며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모를 말을 독하게 내뱉었다.
이런 밑바닥 인생을 신랑에게 보였다는 사실에 수치스럽고 박복한 내 인생에 휘말리게 해서. 이 끔찍한 사실을 숨기고 당신과 결혼해서 미안하고 또 당신 얼굴에 먹칠한 것만 같아 죄인이 된 기분이라고 말하니 신랑이 ‘박복했으면 나 만나지도 못했지.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 거지. 뭐가 죄인이야 아무 걱정하지 마.’라고, 말해주는 따뜻한 당신에게 너무나 고맙고 다시 한번 미안했다. 그런 당신에게 내 감정 때문에 장인·장모의 사랑마저 빼앗는 건 죄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당신은 편할 대로 해. 뭔가 그건 그것대로 우습겠지만 내 감정 때문에 당신이 취할 포지션을 강요하지 않을게.’라고 말을 정정했다. 신랑에 대한 미안함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결국 시부모님께 죄송함으로 퍼져나갔다. 이런 집이랑 사돈을 맺어서 아들이 사랑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시게 되면 얼마나 비탄해하실까? 나를 미워하시면 어쩌지? 생각이 자꾸 뻗어나가니 우울감이 나를 억누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정신과 선생님께 여쭈었다.
(의) 그런 거 생각하면 신랑의 아내인 김미정 씨가 계속 힘들고 아플 텐데? 그건 배우자 분의 몫인 거예요. 설령 장인·장모님과 관계를 유지한다고 해서 신랑분이 온전히 사랑만 받을 수 있을 것 같으세요?
(나) 그건 아니에요. 그거야말로 허울에 불과하겠죠.
(의) 그러면서 미정 씨가 또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죠.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당신은 더 사랑받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을 했을 텐데. 근데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고 모든 건 배우자 분이 김미정 씨를 선택하고 김미정 씨가 배우자 분을 선택한 것이기에 죄책감 가질 필요 전혀 없다고. 알겠어요? 말하지 않아도 돼요. 굳이 다 말해야 하나요? ‘우리 집안 가정은 이래’ 다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결혼은 모험이에요. 그리고 여기서 김미정 씨가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 김미정 씨 잘못 없어요. 부모님이 잘못하신 거지. 그러니까 시부모님께도 죄송스러운 마음 가질 필요 없어요.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병원 상담실 그곳에선 위로받고 홀가분함을 느꼈지만, 여전히 나는 시부모님을 뵈면 체한 것처럼 명치가 답답하다. 때때로는 죄책감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고 눈을 피하고는 한다. 항상 시댁 식구들과 다 같이 모여 기분좋게 웃으며 기울이던 약주 한 잔이 너무나 그립다. 그러면서 온 가족이 시답잖은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대화하는 시간이 참 좋았는데. 아무것도 모르시는 아버님의 ‘미정이도 맥주 한잔하자~ 이제 술 안마시냐’ 하시는 그 말씀에 나는 여전히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래서 가벼운 농담으로 ‘아버님~ 저 진정한 크리스천이에요. 이제 술 끊었어요.’라고 말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구조적 해리문제로 더 이상 우울과 불안의 고통을 받지 않아 약을 끊게 되면 다시 진정으로 웃으며 예전처럼 시댁 식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고 싶다. 왜인지 그때는 아버님이 더 이상 예수쟁이가 아닌 거냐며 가벼운 농담과 함께 술 한 잔 채워주실 것만 같아 벌써 가슴이 시큰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