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특별한 1의 이야기
1. 하나. 첫 번째. 처음.
무엇을 생각하며 이 글을 읽던,
당신에게 조금 특별한 1(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한다.
작곡가 모차르트에 대해 아는가?
아마 모두가 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다면, 모차르트의 작품마다 일련번호가 붙어있다는 것도 아는가?
아마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모차르트가 평생 작곡한 음악을 전부 모아 일련번호를 붙인 것을 “쾨헬 번호”라고 부른다. 독일의 음악학자 쾨헬이 완성한 이 일련번호는 알파벳 “K” 뒤에 숫자를 붙여서 표기한다. 모차르트가 죽기 전 가장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 “레퀴엠”에는 K626이 붙었고, 가장 처음 작곡한 피아노곡에는 K1이 붙었다. 그 K1이 바로 나다. 지금부터 모차르트의 첫 작품으로 태어난 내 이야기를 시작해볼까 한다.
모차르트가 나를 만든 건 다섯 살 때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피아노를 보면 이 건반 저 건반을 누르며 놀기 마련인데, 모차르트는 그렇게 한참 신나게 뚱땅거리더니 양피지를 꺼내 삐뚤빼뚤한 오선 악보를 그렸다. 그렇게 탄생한 곡의 전체 길이는 20여 마디에 연주시간은 고작 30초다. 길이가 짧다고 해서 무시하지 마라, 내 꿈은 원대했으니까! 이 세상에 악보로 태어났기로서, 여러 연주자의 손을 거쳐, 악보 출판으로, 음반으로 후대에 기억되고 싶다는 포부를 가졌다.
그러나, 모차르트 이 빌어먹을 인간은, 나를 한참을 바라보더니 이내 돌돌 말아서 서류 뭉치 속에 넣어버렸다. 정말, 그게 전부였다! 말린 종이가 펴지는 일도, 다시 남들 앞에서 연주되는 일도 없었다. 이 인간이 나를 잊었나? 내가 싫은가? 그 사이, 나는 K2, K3 등등, 동생들이 태어나는 소리를 종이 뭉치 틈으로 들어야 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내 이후에 태어난 K525는 “세레나데”라고 해서 비엔나 황제의 궁전에서 연주됐고, K441 “교향곡 41번”은 200년 뒤 음악 교과서에 실리는 것도 모자라, 우주로 발사되는 탐사로켓에 인류 문화를 대표하는 음반으로 실렸다. 누구는 출세해서 우주로 날아가는데 나는 고작 서류 뭉치 속에 있다니! 나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 한 자리 차지하고 싶었다.
몇십 년, 아니 몇백 년을 기약없이 암흑 속에서 지내다가, 나는 드르륵 소리와 함께 세상 밖으로 꺼내졌다. 모차르트의 생가 유지보수 사업이라도 하나 보다. 형광모를 쓴 인부들이 서랍 이곳저곳을 열어보고 관광 팬스를 치느라 열심이다. 마침내 이곳을 탈출할 기회가 온 셈이다. 나는 온 힘을 다해 몸을 일으켰다. 모차르트를 찾아가 나의 존재 이유를 따지고 싶었다. “이 인간, 내 손에 잡히기만 해 봐라!” 열린 서랍장을 뒤로하고, 나는 창가 쪽으로 데굴데굴 굴러가서 창밖으로 힘껏 몸을 날렸다. 2층 창문 아래로 휙, 한 바퀴 돌고, 다시 솟았다가, 잠깐 내려앉았다가, 우아한 곡선을 그리던 중 무언가와 충돌했다.
“뭐야?! 바빠 죽겠는데...”
한 무리의 음대생들이 바이올린 가방을 매고 길을 걷던 찰나였다. 나는 그중 한 학생의 머리와 충돌했는데, 그 학생이 나를 꽉 움켜쥐며 자세히 들여다봤다. 다른 친구가 물었다.
“중요한 악보야?”
“아니, 시험에 안 나와”
이들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바이올린 가방을 매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다음 오디션장이 어디랬지?” 나는 이들의 뒷모습에서 모차르트의 또 다른 작품, “바이올린 소나타 K304, K305, K306” 악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악보들은 비에 젖지 않게 방수 비닐 안에 고이 모셔져 학생들의 가방에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반면 나는 오후 내내 온몸이 비에 젖어 가며 길거리를 나뒹굴었다. 보도블럭 사이, 하수구, 때로는 낙엽들 사이를 전전하다가, 드디어 쿵! 잘츠부르크 공원 한가운데에 있는 모차르트 동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살아있는 모차르트가 아니라서 아쉬웠지만, 평소에 담아뒀던 말이 제일 먼저 튀어나왔다. “너 잘 걸렸다! 나를 감히 이렇게 버려?”
그러나 나를 발견한 모차르트 동상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돌로 된 바이올린 활을 들고 있다가, 활을 내려놓고, 나를 슥 집어올린다. “여어~ 이게 얼마 만이야!! 드디어 내가 찾던 음악이 돌아왔구만! 내가 널 잃어버린 줄 알고 얼마나 찾았는지 알아?”
나는 의외의 반응에 놀랐다. “나를? 네가? 왜?”
모차르트는 나를 돌로 된 안주머니 안에 넣으며 말한다.
“내 생에 유일하게, 순수하게 음악을 위한 음악이었어”
그의 안주머니 안에는 모차르트가 생에 가장 행복하다고 여긴 순간들이 망울망울 영상처럼 담겨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피아노 건반을 이리저리 누르며 주체할 수 없이 올라갔던 입꼬리, 신이 나서 덩실덩실 춤을 췄던 발재간, 그 짧은 음악을 듣고 등 뒤에서 모차르트의 누이 난넬이 쳐 줬던 박수 소리, 멀리서 한걸음에 달려와 자신을 한껏 안아주었던 아버지 레오폴트의 품. 따뜻한 그날 저녁의 노을까지, 모차르트에게 음악은 그렇게 처음으로 재미를 선사했다.
그러나, 이후에 작곡한 음악은 그렇지 않았다. “너도 연주 여행을 한 번 가야지!” 아버지는 조기 교육을 한답시고 유럽 각지를 돌아다니며 그에게 매주 음악을 숙제처럼 작곡하게 했다. 때로는 취업을 위해 대주교 앞에서 피아노를 쳐야 했고, 정기적인 미사 예배를 위해 주말마다 합창곡을 뽑아내야 했다. 처음엔 재미를 위해 작곡했던 모차르트였지만, 점점 지쳐갔다. “내가 만들면서 가장 재밌었던 음악이 뭐였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차르트가 그렇게 평생을 고민하다가, 결국 생의 마지막에야 떠올린 것이 K1의 존재였다. “네가 유명하지 않아도 돼. 음대 실기 곡으로 안 쓰여도, 교과서에 실리지 않아도, 사람들이 뭐라고 하건, 난 오히려 네가 좋아. 처음으로 피아노 건반을 한 음 한 음 맞춰 보면서 쓴 20마디였으니까, 수백 마디의 교향곡보다도 습작으로서의 네가 훨씬 더 가치있는걸?”
모차르트 동상 안주머니에서, 나는 모차르트의 가장 진정한 심장 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쿵쿵쿵, 재미와 흥분으로 가득차 뛰는 모차르트의 박동을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20마디를 그의 가슴 안에 선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