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 우리가 원하지 않은 세상
창문 너머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진다. 저녁 여섯시, 사람들이 돌아오는 시간이다. 하지만 '돌아온다'는 표현이 정확한지 의문이 든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가, 아니면 빚의 거처로 들어서는가.
과거에는 이랬습니다. 취직하고, 돈 모으고, 결혼하고, 집 마련하고. 순서가 있었습니다. 물론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언젠가는 가능하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다릅니다. 집은 결혼의 전제조건이 됐습니다. 아이를 가질지 말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됐습니다. 심지어 어떤 직장을 다닐지, 어떤 삶을 살지까지 좌우합니다. 집이 인생의 한 부분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규정하는 틀이 돼버렸습니다.
집이 투자 대상이어야만 할까요? 모든 사람이 집을 사고팔며 수익을 추구해야 할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은 그냥 사는 곳입니다. 퇴근해서 쉬고, 가족과 식사하고, 아이와 놀고, 밤에 잠드는 공간입니다. 그 공간이 끊임없이 가격 변동에 시달려야 하고, 언제 팔아야 하나 고민해야 하고, 오르지 않으면 손해라고 느껴지는 구조가 과연 건강할까요?
집값 상승은 단순히 부동산 시장의 문제가 아닙니다. 삶 전체의 설계를 바꿉니다.
첫 번째 포기는 시간입니다. 더 많이 벌기 위해 부업을 합니다. 주말도 없이 일합니다. 20대와 30대의 귀중한 시간을 오로지 돈 모으는 데 씁니다. 취미도, 여행도, 친구도 미룹니다.
두 번째 포기는 관계입니다. 연애는 사치가 됩니다. 데이트 비용이 아까워집니다. 결혼은 더 멀어집니다. 집 없이 결혼하기 어렵다는 사회적 압박이 있으니까요.
세 번째 포기는 미래입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방 한 칸 더 필요한데, 그 한 칸이 억 단위로 비쌉니다. 육아 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집값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3년 합계출산율은 0.72명입니다. OECD 국가 중 최하위입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주거 불안정은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꼽힙니다. 집이 없거나 불안정하면 아이를 낳기 어렵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지금 많은 사람이 압박 속에 있습니다. 사야 할까, 기다려야 할까. 대출을 더 받아야 할까, 포기해야 할까.
하지만 이건 진짜 선택이 아닙니다. 선택이라는 건 여러 옵션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을 때 성립합니다. 지금은 모든 선택지가 불리합니다. 사면 빚에 짓눌립니다. 기다리면 더 멀어집니다. 포기하면 평생 세입자로 삽니다.
이런 상황을 개인의 선택 문제로 치부하는 건 잔인합니다. 마치 각자가 잘못 선택해서 어려운 것처럼 만듭니다. 하지만 아무리 현명하게 선택해도, 구조가 바뀌지 않으면 결과는 비슷합니다.
사회는 말한다. "네가 선택한 삶이다." 어느 집을 살지, 어디서 살지, 언제 살지, 모두 당신의 선택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환영이다. 선택권이 있으려면 선택지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선택지가 없다. 모든 옵션이 불리하다.
집을 사면 30년 대출에 묶인다. 월 200만 원씩 갚아야 한다. 다른 곳에 쓸 돈이 없다. 전세를 살면 2년마다 불안하다. 집주인이 올려달라고 하면 이사를 가야 한다. 월세를 살면 매달 나가는 돈이 아깝다. 자산은 쌓이지 않는다.
어떤 선택을 해도 손해다. 이걸 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차라리 선택을 강요당하는 것에 가깝다.
질문을 던져야 할 때입니다. 이게 우리가 원하던 사회였는지.
집 한 채 때문에 청춘을 소진하고, 관계를 포기하고, 미래를 접는 사회.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삶을 결정하는 사회. 노력보다 운이, 능력보다 자산이 중요한 사회.
이게 정말 우리가 바라던 모습일까요?
변화는 작은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이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감각을 잃지 않는 것. 익숙해지지 않는 것. 분노를 체념으로 바꾸지 않는 것.
집은 투자 대상이기 전에 사는 곳입니다. 그 기본을 회복하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지금 당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한 번쯤 물어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집을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집을 구하는가. 이 질문의 차이가,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것입니다.
한 청년이 있다. 그는 요리를 좋아한다. 주말마다 새로운 레시피를 시도한다. 재료를 직접 고르고, 손질하고, 불 앞에 선다. 완성된 음식을 접시에 담을 때의 만족감. 그것이 그의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요리를 하지 않는다. 재료비가 아깝다. 그 돈이면 적금을 더 넣을 수 있다. 시간도 아깝다. 그 시간에 부업을 할 수 있다.
그의 삶에서 즐거움이 사라진다. 남는 것은 효율뿐이다. 모든 행위가 집값으로 환산된다. 이 식사는 몇만 원, 이 책은 몇만 원, 이 산책은 기회비용 몇만 원.
삶이 회계장부가 된다. 모든 줄에 차변과 대변이 있다. 손익이 계산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장부에 기록되지 않는다. 요리할 때의 집중, 레시피를 고민할 때의 창의성, 완성된 음식을 나눌 때의 연대.
이런 것들은 숫자로 표현되지 않는다. 그래서 가치 없는 것처럼 취급된다. 하지만 진짜 가치는 여기에 있다.
변화는 인식에서 시작한다. 지금의 상황이 비정상이라는 각성. 집값에 지배당하는 삶이 당연하지 않다는 자각.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집을 얻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집을 구하는가.
이 질문의 답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전자라면 모든 것을 집에 바친다. 후자라면 집도 중요하지만 다른 것도 중요하다는 걸 안다.
한 사람이 토요일 오후를 어떻게 쓰는지 보자. 아르바이트를 하는가, 책을 읽는가. 둘 다 필요하다. 하지만 비율이 문제다. 모든 토요일을 아르바이트에 쓴다면, 그는 집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자기 자신은 잃는다. 균형이 필요하다. 미래를 위한 준비와 현재의 경험 사이의. 생존과 삶 사이의.
당신의 방에 혼자 앉아있다. 창밖으로 해가 진다. 하루가 끝난다.
이 하루 동안 당신은 무엇을 남겼는가.
당신이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것은 무엇인가. 당신이 나눈 대화, 마주친 시선, 건넨 웃음은 있었는가.
이것들이 모여 당신이 된다. 집이 아니라 경험이. 자산이 아니라 서사가.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무엇을 쌓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