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통장에 꽁돈이 생긴다면

솔직히 1억원 원 생기면 뭐가 떠오릅니까

by 불씨

어느 날 통장에 꽁돈이 생긴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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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만 원 — 일단 도망간다

솔직히 1천만 원 생기면 뭐가 떠오릅니까. 유럽이죠. 바로 검색창에 "파리 항공권"을 칩니다. 파리가 뭔지도 모르면서. 에펠탑 보고 뭐가 달라지냐고요?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비행기에서 허리 끊어지고, 현지 음식 배탈 나고, 루브르 줄 서다가 다리 포기하고 카페 들어가서 커피 한 잔에 이만 원 쓰고 멍 때리다 옵니다.

근데 있잖아요, 그 카페에서 멍 때리던 그 15분 — 그거 진짜 삽니다. 일상에서 완전히 뚝 끊긴 그 감각. 그게 1천만 원의 본체입니다. 나머지는 그냥 교통비.


1억 원 — 자랑해야지요

1억 생기면 포르세 삽니다. 다들 그럽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하던 사람도 삽니다. 왜인 줄 알아요? 출근길에 딱 한 번 — 신호 대기 중에 옆 차가 슬쩍 보는 그 눈빛 때문입니다. 그 눈빛 한 번에 1억. 따지고 보면 비쌉니다.

근데 더 웃긴 건, 그 차 샀더니 이제 주차 스크래치가 무서워서 차를 못 몬다는 겁니다. 지하 주차장 구석에 두 칸 차지하고 혼자 걸어서 엘리베이터 탑니다. 1억짜리 차를 사서 더 많이 걷게 됩니다.


10억 원 — 드디어 인간이 됩니다

10억 생기면 웃지 않습니다. 진지해집니다. 아파트 봅니다. 이건 욕심이 아니라 생존입니다. 한국에서 전세 사는 게 어떤 건지 아시죠? 2년마다 "저 계속 살아도 되나요?"를 집주인한테 물어봐야 합니다. 세상에, 내가 사는 곳에서 눈치를 봐야 합니다.

10억짜리 아파트 등기 치는 순간, 그 눈치가 사라집니다. 그게 다입니다. 그게 10억의 가치입니다. 화려한 인테리어요? 그건 그냥 보너스입니다. 핵심은 "나 여기 삽니다, 누가 뭐라 해도"입니다.


100억 — 이건 좀 무서운 얘기입니다

100억 생기면 배우자를 바꾼다는 말 — 농담 같지만 실제로 좀 그렇습니다.

미국 복권 당첨자들의 장기 추적 연구에 따르면 당첨 5년 이내 이혼율은 일반 집단 대비 약 1.7배 높다. 한국 상속 분쟁 사건 수는 2013년 대비 2023년에 거의 두 배로 늘었다. 거액이 인간관계를 파괴한다는 것은 도덕적 판단이 아니라 통계적 사실이다.

근데 제가 보기엔 배우자를 바꾸는 게 아니라, 내가 바뀝니다. 100억이 생기면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거든요. 맞나기 싫은 사람, 가기 싫은 자리, 듣기 싫은 말 — 그동안 다 참았던 건 솔직히 돈 때문이었잖아요.

100억은 가면을 벗겨버립니다. 내 가면, 상대방 가면, 관계의 가면. 그러니까 100억이 생겼을 때 관계가 흔들린다면 — 돈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그 관계가 그랬던 겁니다. 100억은 그냥 솔직하게 만들어줄 뿐입니다.


결국 뭔가요?

1천만 원은 도망, 1억은 인정, 10억은 안심, 100억은 솔직함.

우리가 돈으로 사는 게 물건이 아니더라고요. 감정입니다.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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