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양소주 회장이자 조웅래 나눔 재단 이사장. 2006년 국내 최초, 최장의 계족산 황톳길을 만들어 매년 10억씩 들여 19년째 직접 관리하면서 연간 100만 명 넘게 찾는 '에코힐링'맨발 걷기의 성지로 올려놓았다.
- 마산고,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뒤 전자업계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30대에 단돈 2천만 원으로 1인 창업한 벤처 1세대.
- 40대에 새로운 도전으로 소주산업에 뛰어들었고 50대에 계족산 길에 흙을 깔아 맨발 걷기 명소로 만드는 등 역발상 인생을 살아왔다.
- 2023년 1월, '대한민국 국토경계 한 바퀴' 5,228킬로를 116일간 마라톤으로 최초로 완주해 '대동 RUN 지도'를 만들었으며, 국내외 마라톤대회에서 85회 완주했다.
* 여는 글 : 받은 선물, 나눌 선물
- 현실에 안주하고 싶다거나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면 조웅래 회장님은 과연 '가장 조웅래답게 사는 게 무엇일까?'를 고민한다고 한다. 조웅래 회장은 순탄한 길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새로운 길을 가고자 했다.
- 코로나 19 시절, 코로나 팬데믹으로 모두가 지칠 대로 지쳐 있던 시기에 조회장님께서는 무기력감과 세상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시기에 '대한민국 국토경계 한 바퀴 마라톤'에 도전해 5,228킬로미터를 완주하며, 60대인 자신도 하는데 여러분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한다. 도전하면 '희망'이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고자 함이었다고.
- 소주회사 회장이라는 타이틀 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긴 황톳길을 만든 사람으로 더욱 잘 알려져 있는 조회장님께서는 모두가 미친 짓이라고 만류했음에도 몸소 실천으로 의지를 이어가고 '맨발 걷기의 성지'로 계족산 황톳길을 이루게 되었다.
- 사람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산 위에다 황토를 깔 생각을 했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면 조회장님께서는 그것이 배려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한다.
'내가 걸어보니 좋더라. 이 좋은 걸 많은 사람들도 할 수 있게 해 주자'하는 마음에서 시작했던 일이라고. 또한,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인으로서 지역사회에 보답해야겠다는 일념 하나였다고 한다.
- 아마 조회장님께서 모두가 만류한 계족산 황톳길을 의심 없이 추진하실 수 있던 가장 큰 것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업적으로만 연결 짓고, 당신만을 위한 이기심이 아닌 함께하는 시민들과 모두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이타심으로 비롯한 이 마음이 숫한 반대와 역경 속에서도 강하게 밀어붙여 결국엔 이루어내고 만 원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동기가 선하고, 사심이 없으니' 추진하는 마음에 의심이 없었고, 어떤 역경도 이겨낼 수 있으셨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 몇 년 하다가 그만둘 줄 알았던 일을 5년, 10년 계속하자 주변에서 조회장님의 진정성을 알아주었다고 한다. 조웅래를 신뢰하고 선양을 신뢰하기 시작했다. 조회장님께서는 시민들에게 황톳길을 선물했고, 시민들은 조회장님께 신뢰를 선물해 준 것이다.
- 조회장님께서는 이 책이 누군가의 가슴에 작은 불씨로 타오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셨으며, 책을 집필하는 내내 어머님 얼굴이 떠오르셨다고 하신다. 궁핍한 유년시절로 인해 강인한 정신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신 부모님께, 그것만으로 한없이 감사한 마음이라고 하신다.
Part1. 소주회사 조 회장, 황톳길에 미치다.
1. 나는 길을 내기로 했다.
- '황톳길 작업반장'인 조회장께서는 새벽 다섯 시면 기상하여 매일 같이 계족산 황톳길을 간다. 한겨울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이 길을 맨발로 걷거나 뛰며 운동도 하면서 길도 점검을 하는 것.
- 조회장께 황톳길은 어머니의 품처럼 따스하고 포근한 안식처 같은 곳이라고 한다. 이른 아침 운동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사라지고 몸이 가벼워진다. 몸과 마음에 차 있던 찌꺼기를 싹 비우고 나면 그 빈자리에 새 에너지가 차오르는 아주 신선한 느낌이 드는데, 이것을 조회장께서는 '보약 한 재'먹었다고 하신다고. 그렇게 그 에너지를 가지고 또 하루를 힘차게 시작하신다고 하신다.
- 조회장께서는 매일같이 이 길을 걸으며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그날 있을 회의를 생각하며,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신다고 한다. 바로 조회장님께는 황톳길이 헬스장인 동시에 에너지 발전소요 사무실인 셈인 것이다.
- 19년 전, 황톳길을 만들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하신다.
- 대구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셨던 조회장께서는 2004년 선양소주를 인수하고 이듬해 1월 대전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대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신 조회장께는 대전은 낯선 도시일 수밖에 없었다.
- 이사하고 나서 가장 먼저 찾아본 것은 바로 마라톤을 할 수 있는 장소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계족산을 발견하였으며, 적당한 경사의 넓은 길과 숲, 동쪽으로 보이는 대청호에 한눈에 반해 버리고 말았으며, 이후 매일같이 걷거나 달리기를 즐기셨다고 한다.
- 그러던 중 2006년 고교시절 친구들이 대전에 찾아오겠다는 연락을 받고 친구들을 계족산으로 데려오게 된다. 하지만 산을 걷는 것인 줄은 몰랐던 여자친구들은 하이힐을 신고 왔다고.
- 일단 걷는 데까지 걸어 보기로 하였지만 예상했던 대로 얼마 가지 못해 걷기를 포기했다고 한다. 그 친구들에게 자신의 운동화를 벗어주고 그렇게 처음으로 맨발로 계족산을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다.
- 발바닥이 따끔거리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감각이 점점 무뎌졌다. 그날 조회장께서는 대여섯 시간을 자갈길로 둘러싸인 계족산을 맨발로 걸었다.
- 이내 집으로 돌아온 조회장은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다음날 아침이 걱정될 정도였다고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몸에서 신기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발바닥은 화끈거렸지만 머리는 점점 맑아졌으며, 몸이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온몸이 후끈 달아올랐다고 한다.
- 그날 밤, 정말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게 된다. 기분 좋은 피로감과 함께 숙면을 취하고 나니 조회장을 짓누르고 있던 스트레스가 완전히 날아간 듯했다고 한다.
- 이후 조회장께서는 새벽마다 계족산을 맨발로 걷거나 뛰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바로 조회장께서는 직접 느낀 맨발 걷기의 신비로운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널리 알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계족산 황톳길'의 탄생이 그렇게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 그러한 '계족산 황톳길'을 구상하게 되고, 머릿속에 담아놓았던 구상을 정리하여 회사 임원들과 상의했지만 모두 뜬금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치를 보더니 나중엔 갖가지 반대 의견을 쏟아내었다고 한다.
- 한마디로 산길을 맨발로 걸을 수 있게 만들면 '술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하는 뜻이었다.
- 숱한 반대를 무릅쓰고 조회장께서는 끈질기게 설득하였고, 그들을 설득시킨 논리는 지역과의 상생이었다고 한다.
- 시간이 지나자 완강히 반대하던 임직원들도 조회장의 말을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했다. 지역에 기반을 둔 기업은 어차피 지역사회를 위한 사업에 매년 상당한 금액을 출현하고 있었다. 그 비용을 잘 활용하면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2. 궁하면 통한다.
- 막상 프로젝트를 착수하고 나니 가장 먼저 직면한 과제가 '그럼 무엇으로 산길을 덮을 것이냐' 하는 문제였다.
- 여러 가지 재료들을 찾던 중 '황토'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황토의 효능 같은 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단지 맨발로 걸었을 때 발바닥이 아프지 않아야 하고, 숲과 잘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셨으며, 그렇게 황토를 깔고 나니 그 길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뻥 뚫린 듯 편안한 느낌을 받으셨다고 한다.
- 그렇게 지금까지 연간 2,000톤의 황토를 가져다가 황톳길에 쓰고 계신다고 한다.
- 길을 조성하는 한편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다 같이 맨발로 걷고 뛰는 행사를 열기로 한 조회장께서 떠올린 아이디어는 바로 '마라톤'이었다.
- 그렇게 만든 것이 '에코힐링 선양 마사이마라톤대회'이다. 대회 명칭에는 행사의 의도와 목적이 명확하게 반영되어야 한다. 고민 끝에 떠올리신 아이디어가 '에코 힐링(eco-healing)'이셨다고 한다. 자연과 치유를 합쳐 자연을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한다는 새로운 개념을 창안하셨다고 한다.
- 요즘이야 '에코 힐링'이라는 단어가 일반명사처럼 사용되지만, 이 용어는 선양에서 최초로 만든 신조어였다고 하며 정식으로 상표권 등록도 마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선양에서는 공익적 목적으로 '에코 힐링'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 모두 허용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 맨발 마라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마라톤과 함께 다양한 문화행사도 함께 열게 되었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회는 물론 사물놀이와 비보이 공연 등 축제 분위기를 살릴 이벤트를 요소요소에 넣게 되었다고 한다.
- 이후 이것이 문화로 자리 잡게 되어 매년 5월 '계족산 황톳길 맨발 축제'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부대행사도 늘려 2007년부터 주말마다 '숲속음악회'를 열기 시작했고, 2011년에는 축제와 함께 '에코힐링 국제설치미술제'를 개최했다고 한다.
- 맨발로 달리는 것으로 출발한 이벤트가 '에코힐링 문화예술제'로 확대된 것이다.
- 이는 정부 지원금 없이 불과 7년 만에 독자적인 기업으로서 만들어낸 성과이며, 현재는 대전광역시의 대표적인 축제로 자리 잡게 되었다.
- 그렇다면 무엇이 조회장께서 이토록 황톳길에 미치게 만드는 것일까?
- 조회장께서는 그 힘을 어린 시절의 가난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조회장께서는 사람들에게 자주 궁즉통, 즉 '궁하면 통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궁하다는 것은 곧 빈곤과 갈망의 다른 표현이며, 지난 세월을 돌아봤을 때 조회장께서는 늘 절박한 심정으로 세상과 부딪쳤고 도전했다고 한다.
- 가난한 집안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조회장께서는 유년시절 워낙 궁하다 보니 뭔가 새로운 길을 찾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를 조회장께서는 고맙게도 운명처럼 주어진 빈곤은 결점이 아니라 그간의 힘의 원천이 되어주었다고 한다.
- 무학이셨던 조회장님의 모친께서는 공부 잘하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다고 하신다. 대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던 것은 '말부터 앞세우지 마라'라는 것과 '단디(제대로)하거라'라는 단 두 가지뿐이셨다고 하신다.
- 중1때 아버지를 여읜 조회장께서는 본인 스스로를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천방지축이었다고 표현하셨다. 대입 예비고사를 치른 후 잠시 가출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만 해도 가족 중 누구도 당신께 관심을 갖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며, 슬그머니 사라져도 아무런 변화가 없을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조회장님만의 착각이셨다.
- 신은 세상의 모든 이에게 사랑을 베풀 수 없기 때문에 대신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이 있다고 한다. 어머님의 속이 끓는 줄도 모르고 철없던 시절의 방황을 조회장님께서는 두고두고 가슴에 새기셨던 것 같다.
- 대학 졸업 후 경북 구미에 있는 삼성반도체통신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입사했던 조회장께서는 대기업이라는 고액 봉급과 안정된 작장이 체질에 맞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수많은 직원 중 한 사람일 뿐이고, 그 자리를 누구나 대체할 수 있다고 느껴 큰 보람을 느끼지 못하셨던 것 같다.
- 그렇게 3년 만에 사직서를 던지고 조건이 열악한 중소기업(태원)으로 직장을 옮기시고 인력이 부족하여 여러 일을 동시에 맡아서 했지만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존재감을 느끼셨다고 한다.
- 1990년대 당시 집집마다 전화가 보급되던 시기라서 유선망을 통해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추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각자 휴대폰 하나씩 들고 다니는 세상이지만 그 당시만 하여도 집집마다 전화가 보급됐다는 게 대단한 일이었다고.
- 유선전화가 전국적으로 깔리게 되자 정부는 '700 서비스'를 민간업자들에게 개방했다고 한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누구나 사업에 뛰어들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열린 것이었다. (지금으로 따지자면 스마트폰 보급이 확산되던 2010년대에 어플리케이션 개발 붐이던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 조회장께서는 '700 서비스'가 비전이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하고 회사에 사업화를 제안했지만 회사의 반응은 시큰둥하였고, 회사가 관심을 보이지 않자 오히려 본인이 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하였다고 하며, '이건 반드시 된다'는 자기 확신이 있으셨다고 한다.
- 그렇게 창업을 결심하고 사직서를 제출하였으며, 1992년 '생활정보사'를 창업하게 된다. 그때 조회장님의 나이 불과 서른셋이었다. (우리 아버지도 서른셋의 나이에 회사를 창업하셨고, 내 나이 지금 서른셋이다. 많은 생각이 들게 되는 부분이다.)
- 사업 아이템은 이미 염두에 두고 계셨다고 한다. 당시 다방에서 사람들이 심심풀이로 100원짜리 동전을 넣고 자신의 운세를 점치는 것을 보고는 종이로 보는 운세를 소리로 전해주면 어떨까? 음성으로 듣는 소리 운세 서비스를 하게 되며, 그것이 바로 '700-8484(팔자 팔자)' 운세 서비스였다.
- 사업의 승패는 홍보에 달려 있었다고 회상한다. 전화번호를 모르면 전화를 거는 사람도 없을 것이 당연하다.
- 조회장께서는 시내를 누비며 홍보 전단지를 뿌렸다고 한다.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700-8484'가 차차 알려지면서 상황이 바뀌었다고 한다.
- 밤에도 전단지를 돌리러 시내에 나가면 술집에서 술 한 잔을 얻어 마시기도 했고, 신기하게 여기는 사람들에게 사인까지 해줬다고 한다.
- 반응은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고 한다. 당시 전화 3분 한 통화에 붙는 정보 이용료는 300원. 전화국에 수수료 10%를 지불하고 나면 나머지 수익금이 전부 들어오는 구조였다고 한다.
- 사업은 점차 궤도에 올라 2년쯤 지난 후에는 직장에 다닐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고 한다.
- 전화운세 사업을 하면서 얻은 것은 '최고의 밑천이란 자기 확신'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이때 조회장께서는 장차 무엇을 하더라도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고 한다. 확신이 있었으니까 미쳐서 날뛸 수 있었고 성공했다고 한다.
- 이때 조회장께서 얻은 좌우명이 바로 '불광불급', '미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다'였다. 조금 돌아가고 조금 늦게 가더라도 미쳐서 하면 뜻을 이룬다는 것이 조회장님의 지론이다.
- 세상사를 보면 무슨 일이든 미쳐 날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 조회장께서는 돌이켜보니 서른셋에 창업한 이후로 미쳐서 한 일들이 여럿인데, 그 가운데 제대로 미쳐서 날뛴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계족산 황톳길이었다고 한다.
3. 먼저 가면 길이 된다.
- 황톳길 입구에서 1킬로미터쯤 올라가면 야외공연장이 있다. 이곳을 지날 때마다 조회장께서는 '와, 여기는 공연을 하라고 자연이 준 공간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듬성듬성 놓여 있는 나무 평상 사이에 앉기 좋게 다듬은 자연석을 놓으면 훌륭한 객석이 될 것 같은 느낌으로 이미 머릿속에 야외공연장 그림을 그리고 이를 실행했다.
- 황톳길을 찾고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하는 방문객들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 바로 이 야외공연장에서 하는 악기 연주회였다.
- 황톳길을 걷고 나서 자연 속에 머물면서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과 함께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것도 한 가족 3대가 모두 즐거워하는 공연을 해 보자. 이런 아이디어로 탄생한 것이 숲속음악회 '뻔뻔(Fun Fun)'한 클래식'이라고 한다.
- 이렇게 천혜의 야외공연장이 만들어졌고, '뻔뻔한 클래식'은 계족산의 명물이 되었다.
- 역발상으로 오직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하는 순수한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4. 머리는 가슴을 이기지 못한다.
- 조회장님께서 황톳길을 걷고 있으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건네는 소리가 "길 만들어줘서 고맙습니다"하는 인사라고 한다.
- 다들 행복해하는 이 길에는 조회장님의 혼이 담겨 있다고 한다. 이 길을 조회장님의 공간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누구든지 계족산에 와서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 수 있는 그런 공간.
- 황톳길을 찾아온 사람들이 1분 1초라도 행복한 시간을 누릴 수 있다면 이 또한 조회장님의 행복이라고 한다.
- 재미있는 일은, 매일 운동하는 분들이 황톳길이 자손 대대로 유지될 수 있도록 각서를 써 달라는 농담까지 한다고 한다.
- 그분들은 농담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그런 말을 들으면 조회장께서는 가슴이 먹먹해진다고 한다. 바로 중간에 등을 돌리지 않고 초지일관 걸어온 조회장님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고.
- 그럴 때면 웃으며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하신다.
"걱정 마세요. 자식들한테 내가 죽더라도 계속 흙을 깔아라 하고 얘기해 두었습니다."
- 이것이 바로 조회장님께서 현준이형을 포함하여 자식들에게 주고 싶은 인생의 가르침이자 가장 큰 유산이 아니실까.
- 이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사랑하는 자식들에게 금은보화를 물려주는 것보다 아버지로서 남겨주고 싶은 가르침이 아니셨을까 생각이 든다.
- 나이가 들면 후손들에게 짐이 되지 않도록 건강하게 여생을 보내는 게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신다. 조회장께서는 황톳길이 모든 이에게 건강을 약속하는 최고의 선물로 영원히 남아 있기를 바란다고 하신다.
- 계속산에는 별도의 입장료가 없다. 사람들은 "이렇게 좋은데 왜 입장료를 안 받아요?"라고 한다고 한다.
- 조회장께서는 그럴 때마다 그저 웃고 만다고 한다. 애초에 입장료 받으려고 벌인 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럴 순 없다. 하지만 1년에 10억씩이나 들어가니까 입장료를 받으라고 하면 조회장께서는 농담 삼아 "예~ 입장료로 다음에 오실 땐 선양소주 병뚜껑 두 개만 가져오세요!"라고 하신다고.
- 황톳길을 만든 지 19년이니 그동안 적잖은 돈이 투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 소주 한 병 더 팔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기에 입장료를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생각해 낸 것이 '병뚜껑 두 개'라고 한다.
- 선양소주는 남들처럼 비싼 돈 주고 인기 있는 여성 연예인을 마케팅으로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 대신 '린' 소주병 오른쪽에 조회장님의 캐리커처를 넣었다.
- 차라리 그 비용으로 흙 깔고 맨발축제 하고 음악회 하는 데 쓰겠다는 것이 조회장님의 지론이라고 한다. 바로 그 돈을 고객을 위해 쓰자는 생각이었다.
- 조회장께서는 해외를 다녀도 웬만한 출장은 비즈니스석을 이용하지 않으신다고 한다. 그런 조회장님을 두고 주위에서는 "자기한테는 인색하면서 흙 까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라는 소리를 한다고 하는데 조회장님께서는 오히려 그런 당신이 더욱 좋으시다고 하신다.
- 현실적으로 지역에 기반을 둔 주류업체는 대기업의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현상 유지를 하는 데도 급급한 실정이라고 한다.
- 지역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지역민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지역과 상생하는 것이라고 조회장께서는 말씀하신다.
- 바깥에서 신뢰를 얻으려면 먼저 안에서 신뢰를 얻어야 한다. 산에다 흙을 깔고 에코 힐링을 기치로 내걸었을 때 내부에서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다고 한다.
- "그 돈 있으면 대학생들에게 소주 한 병 더 공짜로 주고, 점주들에게 선양 로고가 박힌 앞치마 한 장 더 돌리는 게 낫습니다."
- 이런 말을 들을 땐 조회장님도 힘드셨다고 한다. 하지만 리더에 대한 신뢰는 말 한마디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을 통해 굳어진다는 조회장께서는 황톳길과 에코 힐링 같은 공익적 가치를 추구하는 프로그램이 처음엔 환영받지 못했지만 지금은 내부의 신뢰도가 높아졌다고 말씀하신다.
- 계족산 황톳길의 시발점은 바로 작은 배려였다. 하이힐 신은 친구에게 운동화를 벗어준 것이 배려였고, 조회장께서 맨발로 걸어보니 좋아서 이 좋은 것을 여러 사람들이 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먹은 것이 배려였다.
- 창조의 원동력이 배려라고 한다. 계속산 황톳길이 바로 배려에서 출발한 대단한 창조물이다. 조회장께서는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 아이디어와 창조, 즐거움의 중심에는 항상 배려가 있었다고 한다. 대중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들의 마음이 무언지 읽고 헤아리는 마음가짐이 근저에 있었던 것이다.
- 황톳길에 매년 10억씩 들어가는데, '소주 몇 병 팔아야 그게 나오나?'하고 계산기 두드려서는 절대 하지 못하는 일이다.
- 조회장께서는 말씀하신다. '자기 돈 아깝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하지만 그런 마음은 단 한순간도 먹어보지 않았다고 한다.
- 가치 있는 일을 꾸준히 하면 반드시 누군가는 알아주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동안 흔들리지 않고 추구해 온 가치가 언젠가 고객의 신뢰로 이어지리라 믿었고, 그 확신은 틀리지 않았다고 한다.
- 그래서 조회장께서는 늘 '머리가 가슴 이기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신다고 한다.
5. 술을 사랑한 촌놈, 소주회사를 만나다.
- 조회장께서는 인생 자체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역발상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조회장께서는 도전을 선택했으며,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라 살아 있다는 느낌, '존재감'이었다고 한다.
- 첫 번째 사업으로 시작한, 종이로 보는 운세에서 음성으로 듣는 운세로 바꿔보자는 것이 바로 역발상이었다.
- 이후 자동응답기 사업에 뛰어들어서 실패를 겪으며, 무엇을 하더라도 돈 많고 덩치 큰 기업이 금방 따라올 수 없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 또 무슨 사업을 하든 간에 디테일을 더해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교훈을 배웠다고 한다.
- 이후 두 번째 사업으로 컬러링 사업을 하게 된다.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미 삐삐를 통해 음악을 실어 보내는 사업을 하며 축적된 기술이 있었던 것이다. 휴대폰에서도 음악을 들려줘서 사람의 사보자는 발상의 전환이 됐던 것이라고 한다.
-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700-5425'이다. 요즘처럼 SNS나 카톡 같은 게 없던 시절이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망이 없었던 과거,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음악으로 연결해 주자는 아이디어가 바로 이 컬러링 서비스가 탄생한 배경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사람과 사람 사이'라는 슬로건을 만들고 상표등록까지 했으며, 이는 현재 선양소주도 이것을 슬로건으로 쓰고 있다고 한다.
- 컬러링 사업은 날개를 달았으나 또 다른 난관을 맞이하게 된다. 본래 IT업계의 생태계가 일반 제조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화하고, 정부 정책의 변화에도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 IT환경 변화와 정부 정책의 걸림돌로 인하여 5424 서비스는 오래가지 못하게 된다.
- 이때 조회장께서는 시대가 변화하더라도 지속가능한 사업을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을 즈음 한 친구로부터 선양소주(당시 선양주조)가 새 주인을 찾고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어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 소주회사는 보수적인 제조업이며,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IT업종에서 성장해 온 조회장님으로서는 주류제조업이 생소한 분야였기에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고 한다.
- ARS 자동응답기를 개발해 첫 번째 실패를 했을 때 제품의 완성도와 경쟁력에 대한 교훈을 얻은 조회장께서는, 소주 산업은 오래 숙성된 원액을 많이 보유하는 것이 곧 경쟁력이란 것에 주목하셨다고 한다.
- 선양은 이미 적지 않은 원액을 보유하고 있었고 훌륭한 증류 제조설비가 있었기에 향후 10년, 30년 뒤에도 든든한 발판이 되고 경쟁력의 원천이 될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 종이에 적힌 운세를 소리로 듣게 하고, 음악을 들려줘 사람의 마음을 사는 사업을 했었으며, 소주회사를 인수하여 소리에서 맛으로 옮겨가는 것이었다.
- 상대는 늘 사람이었다. 소리로 대중의 마음에 다가가 성공한 경험이 있던 조회장께서는 술 역시 대중의 마음에 다가가는 것이라 생각했다. 소리나 술이나 사람의 마음을 연결해 주는 본질은 같은 것으로 여기고 이런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 오랜 고민 끝에 지금까지 걸어보지 않았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2004년 선양소주를 인수하게 된다.
-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것은 문화라고 생각한 조회장께서는 선양을 인수하고 '술에다 어떤 문화 콘텐츠를 입혀서 팔 것인가?'이 점에 주목하게 된다.
- 단순히 술을 파는 회사가 아니라 문화를 파는 기업으로 가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방향을 제시했으며, 소주회사로서는 처음으로 콘텐츠개발팀도 신설하게 된다.
- 모든 소주는 비슷비슷하다. 주정이 비슷하고, 물이 비슷하고, 첨가하는 감미료가 그렇다. 제조과정에서 약간의 맛 차이가 나지만 아주 사소한 차이일 뿐이다.
- 이렇듯 큰 차이가 없는 제품으로서의 술은 기호품이라서 고객들에게 먹힐만한 '우리만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했다고 한다.
- 계족산 황톳길이 그 대표적인 사례였으며, 맨발 걷기를 뛰어넘어 흥미로운 문화의 옷을 입히자 황톳길에서 아주 훌륭한 문화 콘텐츠가 녹아들어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키게 되었다.
- 산에다 황톳길 만들고, 바다에서 맨발축제를 하고, 해외에 나가서 마라톤대회를 연 것이 대중 속으로 들어간 문화였다.
- 그것이 자연스럽게 '선양은 사회공헌기업'이라는 인식으로 확산되어 신뢰를 받게 되었고, 이러한 신뢰가 있으므로 미래가 희망적이라고 한다.
- 때문에 선양을 믿고 격려해 주는 고객들이 늘어나 언젠가 가치소비로 이어질 날이 다가오리라 믿는 조회장께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가는 일들'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가려고 한다고 하신다.
Part2. 나는 아직도 달리고 싶다./ Part3. 맨발로 만난 사람들(feat. 마라톤)
- 이토록 마라톤을 사랑하는 조회장님께 사람들은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 사실 나도 궁금한 부분이긴 했다. 이에 대한 답으로 지난번 선양소주를 방문하여 조회장님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거기서 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 조회장님께서는 강연에 참석한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것이든 좋으니 꾸준히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아라. 그것이 나에겐 마라톤이었고 신체가 허락하는 한 끝까지 나는 뛸 것이다."
- 꾸준함이었던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한다. 고정적이지 않다. 오늘 먹은 마음이 내일과 같으리란 보장이 없다. 새해에 많은 염원하고 다짐하는 새해 바람들이 작심삼일로 그치는 일을 많이 경험하였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로 그러한 경험들을 많이 하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에 있어 작심삼일로 그치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나는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나의 마음가짐이라고 생각한다.
- 나의 이번 생의 목표이자 내가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 어릴 때부터 나는 인생의 목표를 많이 생각하였다. 눈을 떠보니 운이 좋게도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고, 이번 생을 선물 받게 되었다.
- 나는 누나가 셋이다. 물론 우리 부모님께서 아들을 낳기 위하여 넷까지 낳은 것은 아니겠지만(그 시절을 생각하면 1%의 이유도 아니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주변에서 비치기에는 '아들 낳으려고 부모님이 고생하셨네'라고 생각하며, 우스갯 소리로 막내누나가 아들이었으면 지금 나는 여기에 없을 수도 있었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막내누나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 내가 생각하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이렇듯 이번 생을 선물로 받게 되었는데 그냥 살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왕 생을 선물 받았는데 남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폐를 끼치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나아가 '기왕이면 여건이 허락하는 한 나만 잘살면 되는 것이 아닌, 주변을 살피며 주변에 도움이 되는 삶(인간으로서의 도리)을 살아보자' 하는 것이다.
- 나는 사업하시는 아버지 밑에 자라 정양SG라는 조직에 적을 두고 있기에 이를 접목한 나만의 인생 목표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
- 그것이 바로 "우리 회사의 기술인 LBN Modular(구조용 열교차단제)로 국내외 최고의 열교차단 기술을 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함께 해주는 전 직원의 물질적, 정신적 행복을 실현시키고, 더불어 인류 및 사회와 국가의 진보와 발전에 이바지하여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 하지만 이렇게 세운 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방향키조차 나의 그날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강도가 약해지기도 하고 잊혀지기도 할 때가 있다.
- 그래서 목표를 세우고 이행하는 것에 이어 중요한 것이 나는 '항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어떤 풍파가 있거나 장애물을 맞닥뜨리더라도 늘 이 마음을 유지하고 중심을 잡는 것이다.
- 그러기 위하여 나는 한 달의 한 번 절을 가서 천 배를 한다. 그것이 나에겐 흔들린 마음을 다시 다잡으며 나의 목표를 향해 '꾸준히' 정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내 나름의 '의식 행위'인 것이다.
- 그런 부분에서 아마 조회장님께서도 매일 같이 같은 길을 달리며 회장님의 어제와도 같은 마음으로 마음의 '꾸준함'을 유지하시는 '의식 행위'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 회장님이 마라톤을 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마라톤은 인간의 한계에 도전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불가능해 보이는 도전일수록 자신과의 약속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신다.
- 서두르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도 없다. 속도를 늦추어도 되고, 몸에 무리가 온다 싶으면 잠시 멈추었다 다시 시작해도 된다. '매 순간 자신과의 약속을 되새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며, 마라톤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고 조절하는 것이고, 한 번 놓친 페이스는 되찾기 어렵다고 한다.
- 이렇게 보면 마라톤은 인생과도 같지 않은가? 서두르거나 조바심을 낼 필요 없이 중요한 것은 내가 정한 목표까지 꾸준히 정진하는 것처럼 말이다.
- 조회장님께서 코로나 팬데믹 시절 국민들에게 위로의 응원을 전하기 위하여 시작한 '대한민국 국토경계 한 바퀴'는 순수 거리로만 장장 5,200km가 되는 거리이다. 이는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13번 달리는 거리이며, 마라톤으로 치면 풀코스를 124회 완주하는 거리라고 한다.
- 일 년 사계절 내내 5,20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달리며 포기하고 싶지 않았느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으셨다고 하신다.
- 그때마다 조회장님께서는 딱 잘라 "덥다고 밥 안 묵나? 춥다고 잠 안 자나?"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 조회장님께서는 왜 힘들지 않았느냐고 회상하신다. 그러나 한 번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먹은 적은 없었으며, 이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씀하신다.
-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한다. 핑계가 쌓이면 포기가 되고, 따라서 자신과의 약속(신념)을 지키려면 첫 번째 핑곗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하며, 악마처럼 속삭이는 핑계의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칠 수 있는 사람만이 목표까지 달려갈 수 있다고 한다.
Part4. 세상일을 미리 알려고 하지 마라
- 조회장님께서는 모르는 길인 처음 가는 길을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하신다.
- 처음 가는 길이라서 더 많은 땀을 흘려야 하고, 평범한 길보다 더 오래 걸리지만 처음 가는 길을 가면 성취가 크고 기쁨도 몇 배 더 크다고 하신다.
- 처음 가는 길을 가겠다는 사람들은 용암처럼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가슴이 뜨거운 열정으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조회장님께서는 말씀하신다.
- '뻔뻔한 클래식' 공연을 비롯하여 전국 곳곳을 방문 개최한 '찾아가는 힐링 음악회' 등 우리 이웃 주민들과의 상생에도 늘 힘을 쏟으시는 조회장님께서는 나눔과 배려의 중요성 또한 강조하신다.
- 나누고 배려하는 데에는 시간과 돈이 들어간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면 시간과 돈을 단순히 베푼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쌓여서 다시 돌아온다고 회장님께서는 말씀하신다.
- 나누고 베푼다는 것은 결국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며, 그러한 배려는 나를 낮추는 데서 시작되고 나눔과 배려는 우리의 삶을 더 아름답게 가꿔준다고 한다.
- 많은 2,30대가 한창 취업할 때가 되면(내 주변 친구들, 선후배 할 것 없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한다.
- 물론 그것이 본인이 이루고자 하는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라면 너무 좋은 일이겠지만, '남들도 이 정도는 갖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의 꿈과는 무관한 자격증 취득, 연수, 교육 이수 등에 열을 올린다.
- 조회장님께서는 그러한 젊은이들에게 획일화된,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려고 애쓰지 말라고 하신다.
-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원 오브 뎀'이 아닌,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는 삶을 살고, 내가 가고자 하는 나만의 길을 찾아 나의 진정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 세상일을 미리 알려고 하지 마라
- 조회장님께서는 강연에서 이렇게 강조하신다고 하신다. 세상일을 미리 알려고 하지 말고 '바로 지금 최선을 다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더 큰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다.'
- 한 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라는 것을 살면서 더욱 절감하신다고 하신다.
- "전자공학을 전공해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하던 직장인이 소주회사 할 줄은 전혀 몰랐고, 계족산 황톳길이 이렇게 유명해질지도 몰랐다. 그리고 느닷없이 60대가 돼서 대한민국 한 바퀴를 뛸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그저 하나씩 하나씩 하다 보니 무엇이 만들어졌을 뿐이다."
- 나는 위의 회장님 글귀를 보고, 24살 당시 대학을 졸업 후 소위로 처음 임관하고 OBC(초급 장교 교육) 과정에 있을 때, 우리 학교장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생각났다.
(각 병과별로 학교가 별도로 있다. 나는 상무대에 있는 공병학교에 입교를 했다. 각 학교장은 투스타가 대부분인데, 공병 병과에서는 올라갈 수 있는 최고 높은 위치이다.)
- 참고로 당시 학교장님이셨던 정종민 소장께서는 나와 같은 ROTC 출신으로 사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비육사 출신에서 공병감이 나왔다는 건 찾아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처음이지 않을까. 아무튼 대단히 입지적인 분이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위인 내가 보기에 학교장님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겠는가.
- 그 학교장님께서 한 번은 훈시로 말씀하시기를 학교장님께서 당시 우리들처럼 소위, 중위 시절에 원래는 의무복무기간만 군 복무를 하고 장기복무를 할 생각이 전혀 없으셨다고 하셨다.
- 중위시절에 복무하던 부대에서 이유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부대 내에 쇼트트랙? 스케이팅? 같은 팀이 있었고 그 팀에 감독으로 있게 됐었는데 대회를 앞두고 있어 전역을 못하고 등 떠밀려 장기복무 신청을 하게 됐고, 그렇게 '어쩌다 보니' 지금 이 자리에 서서 우리들에게 옛날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조회장님께서 말씀하신 학교장님께서는 원대한 포부를 갖고 군 복무를 하신 것이 아닌, 스케이팅 팀의 감독이면 감독으로서의 최선을, 지휘관일 때는 지휘관으로서의 최선을, 그저 주어진 역할과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였을 뿐이라는 말씀을 '어쩌다 보니'라고 우리들에게 말씀해 주신 것 같다.
- 숨은 의미로는 그러니 너희들도 어떤 임무를 수행하건, 그게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경중을 따지기 보다 매사에, 현재에 충실하여 최선을 다 하길 바란다는 의미가 아니셨을까.
- '세상일을 미리 알려고 하지 마라'라는 것도 회장님께서도 같은 의미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닐까 싶다.
- 각본을 아무리 잘 써도 각본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이다. 우리들의 인생이 잘 짜인 시나리오대로 흘러간다면 사람들은 가만히 침대에 누워 황홀한 미래를 구상하는 데에만 몰두할 것이다. 인생은 발로 뛰는 것이며, 발로 뛰는 것만이 현실이라고 회장님은 말씀하신다.
- 발로 뛰는 과정에서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도 하고, 엉뚱한 길로 잘못 들어설 수도 있고, 지나온 길에 헛된 미련을 갖지 말며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미리 걱정하지도 말고, 그저 순간순간을 축복이라 생각하라고 강조하신다.
* 맺는 글 : 걸어가는 길, 이어가는 길
- 모두가 미쳤다고 했던 계족산 황톳길, 회장님께서는 한번 더 '미쳐서' '맨발마라톤대회'와 '맨발 축제'를 열고, 숲속음악회 '뻔뻔한 클래식'까지 문화를 만들어 오셨다.
- 현재는 모두가 알다시피 온 국민의 사랑을 받는 맨발 걷기의 성지가 된 계족산 황톳길이다.
- 회장님께서는 "세상에 사람을 기분 좋게 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라고 말씀하신다.
- 돈으로 산 것은 시간이 흐르면 고물이 되고 만다. 하지만 정신이 만든 문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 보물이라고 한다.
- 어느 날 회장님의 따님과 손주가 둘이 손을 잡고 황톳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며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셨었다고 하신다.
- '19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 길이 이렇게 대대손손 이어서 가는 보물 같은 길이 되었구나, 연녹색 잎새들 사이로 햇살이 따사롭게 내려오고, 나의 딸이 엄마가 되어, 또 그 엄마가 어린 아들의 손을 잡고 저 푸르름 속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라니'
- 이 길이 세세손손 대를 이어 걷는 희망의 길이 되길 염원하시는 회장님이셨다.
- 늘 많은 사람들에게 '도전'과 '희망'의 메세지를 전하는 조회장님께 깊은 존경의 마음을 전하며, 나 또한 이런 마음도 인생의 가르침 중 하나로 삼도록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