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도 좋을
정신없는 학부 생활을 마무리함과 동시에 추운 겨울 어느 날 국가고시를 마치고 겨우 수의사가 되었다. 수의응급중환자의학, 남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과, 하지만 잘하면 어려운 케이스들에 익숙해지면서 빠르게 실력을 키울 수 있는 과. 이곳을 선택한 뒤 교수님의 지도 하 어느덧 6월이 되었고, 나는 겨우 4개월 차 수의사였다.
항상 많은 환견이나 환묘들이 응급실을 찾아온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안락사를 결정하게 되는, 혹은 DNR(do not resuscitate ; 더 이상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지 않음)를 보호자가 결정하면서 이제 그만 놓아주는 아이들을 여럿 보게 되었다. 아직까지 아이들의 이름이 하나하나 다 기억나는 것을 보니 그 수가 많지는 않은 것 같다.
하루는 AKI(급성신장손상)로 onset(증상의 개시)보다 많이 늦게 왔다가 입원 중 보호자의 선택으로 안락사를 진행했고, 그때가 나의 두 번째 안락사였다. 슬프긴 했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마르고 무딘 감정만 남길 바랐다. 반대라면 이 직업은 오래 못할 일이다.
그 후 한 번은 Addison's crisis(부신피질기능저하증의 응급상황)으로 내원하여 CPA(심폐기능정지)가 왔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하여 가까스로 ROSC(자발순환 회복 ; 심폐소생술 후 심폐기능을 회복)가 왔지만, 결국 소생 후 발작이 제어되지 않다가 다시 CPA가 와버린 환견의 주치의였던 적이 있다. OO이에게는 두 번째 CPR(심폐소생술)을 보호자 요구로 1시간을 넘게 진행했다. 젊은 부부와 여자분의 어머니까지 모두 보호자였고, 두 번째 CPR 때는 어머니분께서 제발 살려달라고 내 팔을 붙잡고 오열했던 것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남는다.
OO이의 예후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발작이 오기 전까지는 혹시나 의식과 기능을 회복해서 우리 응급실을 보호자와 함께 빠져나가는 상상을 했었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유일하게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던 남자 보호자님 마저 오열하며 OO이의 관을 차에 싣는 모습을 뒤로하고 진료실로 돌아왔다.
그다음 나에게 온 또 다른 중증 환견은 XX이였다. IMHA(면역매개성 용혈성 빈혈)였지만 처음부터 공격적인 처치를 하지는 않았다. 감염이 배제되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다. 수혈도 진행했지만 수혈부작용으로 다소 늦게 TRALI(수혈 관련 폐손상)가 왔고 아직까지도 케이스를 리뷰했을 때 그 당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고 생각한다. 3일 동안 입원한 환견이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XX이는 활력이 낮아도 사람이 가까이 오면 꼬리는 꼭 흔들어주는 귀여운 환견이었다. 기력이 너무 떨어져 옆으로 누워있지만 꼬리 힘만은 남겨둔 것처럼 사람이 근처만 와도 철제 입원장 바닥에서는 드럼소리가 났다.
그러다 결국 IGIV(면역억제제의 종류) 투여 후 몇 시간 뒤 양쪽 폐침윤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졌고 그날도 이미 잠은 포기할 각오는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교수님께서는 나를 집에 잠깐 보내 쉬고 오게 하셨다. 잠이 오지 않은 나는 운동을 하러 갔다가 오랜만에 근처에 온 이미 졸업하고 인턴 생활을 하고 있는 동기들을 잠깐 보고 올 생각이었지만 학교를 빠져나가려는 찰나 교수님으로부터 부재중 전화가 온 것을 확인하고 다급하게 병원으로 향했다.
처치실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것은 이미 눈을 뜨고 죽어있는 XX이였고 아마 그때가 내 인생에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었던 것 같다. CPR을 진행했지만 결국 살지 못했고 이미 늦은 채로 도착한 것이었다.
기관 내 튜브 관강 내에서는 혈액이 보였고 그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폐출혈이네, TRALI가 뒤늦게 왔고 악화되어 ARDS(급성호흡곤란 증후군)까지 온 것일까? 그렇다면 적어도 HFNT(고유량 비강 내 산소 치료법)라도 시작하고 그동안 기계환기를 고려해야 했을까? 아니면, 스테로이드라도 빠르게 썼어야 했을까?
하지만 XX이는 이미 죽었다. 절망적이고 슬픈 감정을 억누른 채로 XX이의 털을 빗기고 관에 담을 준비를 했다. 하지만 관을 보호자에게 넘겨준 뒤 보호자가 눈물 없이 멍한 표정으로 XX이의 털을 조용히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창가 너머 본 순간 버튼은 눌려버렸다.
아, 못할 짓이다.라고 생각했다.
갖가지 감정과 생각이 들었지만 당연히 변할 것은 없었다.
누구는 이미 죽을 아이였다고 쉽게 말하지만, 내가 주치의가 된다면 각오가 달라진다. 중증환견, 환묘를 보는 수의사라면 ‘혹시나’라는 생각으로 온갖 책과 논문을 뒤져보게 된다. 앞으로 수의응급중환자의학를 계속할 것이라면 그것이 내 삶이 될 것이다.
이미 어둑해진 퇴근길을 걷다 보면 가끔씩 드는 생각이다.
내가 직업을 잃더라도 그 어떤 동물들도 아프지 않는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