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까지의 험난한 여정
4년 만에 집 앞으로 택시를 부르다
집 앞에서 택시를 탄 건 4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택시를 타는 것은 길에 돈을 버리는 거라고 일찌감치 엄마에게 세뇌를 당했으므로 나는 웬만하면 택시를 타지 않고 살았다. 그 덕분에 이래저래 늦은 적도 있지만, 수습 불가한 사고가 난 적은 없었다. 엄마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 건 아니지만, 이 집으로 이사할 즈음부터는 백수와 다름없었기에 급한 순간엔 엄마의 말을 되새겼다.
어쩌다 택시를 타면 내 눈은 매의 눈이 되었다. 이놈의 택시가 길을 돌아가는 건 아닌지, 신호에 걸리려고 일부러 천천히 가는 건 아닌지 하나하나 살피며, 시원하게 질주하지 않으면 연거푸 시계를 보고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재촉했고, 돌아가는 게 분명하다는 확신이 들면 의도적 불안 증세를 드러내곤 했다. 단언컨대, 난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법인카드가 내 손에 있을 때까지는.
택시 호출 앱은 오랜만에 접속한 탓에 업데이트를 해야 했다. 앱이 고장 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며 택시가 트렁크 두 덩이와 함께 덩그러니 서 있는 내게로 왔다. 그 트렁크들을 들어주러 기사가 혹여 내리지는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는 차 문을 굳게 닫은 채 백미러로 쳐다만 보고 있었다. 낑낑거리며 짐을 올린 나는 기본요금 정도 나오는 곳에 있는 호텔로 가 달라고 했다. 이미 앱으로 목적지를 설정했으니 말을 안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다만 그때도 10분 안에 도착해야 한다는 말은 했다.
호텔은 약간 언덕을 올라가야 나왔지만 나는 언덕 밑에 있는 공항리무진 정류장에 차를 세웠다. 정류장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으므로 몇 미터 더 간 언덕 위 호텔 정문을 목적지로 설정했고 그 덕에 약간 초과 요금을 냈으나, 그 요금을 다 쓰자고 언덕까지 가서 내린 뒤 짐을 끌고 다시 내려올 수는 없었다.
이렇든 저렇든 나는 공항리무진 타는 곳에 도착했고, 이번 여정의 절반을 해치웠다고 생각했다. 곧 리무진이 도착할 것이고 기사님이 내려서 저 택시 기사와는 다르게 여유 있고 친절하게 내 짐을 들어 올려 줄 것이다. 나는 그 옆에서 잠시 서 있다가 짐은 내가 올릴 테니 당신은 버스에 타라는 말을 들으며 못 이기는 척 올라타면 될 것이다. 리무진에서는 최대한 무표정하게 앉아 있을 것이다. 설렘이 티 나면 촌스러울 테니, 걸핏하면 비행기를 타는 사람인 양, 미소가 번지는 걸 자제할 것이다. 한 시간 정도 가서, 제1 공항인지 제2 공항인지 확인할 때까지만 긴장하면 그 이후엔 모든 게 일사천리로 해결될 것이다.
더구나 이번엔 여유 있게 출발하지 않았던가. 오늘은 눈에 띄지 않고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다. 출국 심사대에서 앞사람이나 직원에게 표를 보여주며 내 비행기가 곧 뜨니 먼저 가겠다고 요란뻑적지근하게 양해를 구하지 않아도 되고, 공항 안내 방송으로 내 이름을 듣지 않아도 될 것이며, 마지막 승객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항공사 직원 앞에 골프장 카트 같은 것을 타고 나타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의기양양하게 택시에서 내려, 역시나 손수 트렁크 두 개를 끙끙대며 내린 다음, 공항버스 노선도로 걸어갔다. 출발 시각보다 훨씬 이르게 출발한 내가 대견해 마지않던 그때 눈앞에 당황스러운 문구가 보였다.
공항리무진 운행 중단.
분명히 완벽했는데
집에서 공항까지 가는 가장 효율적이고 힘이 덜 드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호기롭게도 차로 공항에 데려다주겠다는 부모님의 호의도 거절했던 참이었다. 게다가 리무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웹사이트에 미리 접속하는 주도면밀함을 발휘했다. 그러나 역시나 중요한 정보는 놓쳤다. 그 호텔 앞을 지난다는 6XXX번의 실시간 운행 위치 정보가 웹사이트에서 보이지 않았지만 단순히 사이트 오류일 거라 생각했다. 원하는 대로 생각했나 보다. 나는 사이트에도 없는 정보를 블로그에서 찾아내고는 믿어버렸다. 그 버스가 정확히 언제 도착하는지를 알고 싶었던 거였는데, 마침내 블로그를 뒤지고 뒤져 호텔 전 역인 XX역 도착시간을 알아냈고 거기에 맞춰 정류장으로 간 것이다. 완벽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리무진이 없어진 지 3년이나 되었는데요?”
어쩔 수 없이 다시 잡아탄 택시 기사는, 그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듯 말하려 애썼으나 속으로는 원시인을 만난 게 아닌가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기사님은 대체로 친절했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내가 그 택시를 탄 건 어쩔 수 없이 그리된 일이다.
공항리무진의 부재를 확인하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데 ‘쾅’ 소리가 났고 그곳에 그 택시가 배달 오토바이에 뒤꽁무니를 들이박힌 채로 서 있었다. 택시 머리가 내게로 향하고 있었으므로, 혹여 짐 두 개를 끌고 망연자실하게 서 있는 나를 구제하러 달려오다가 그리된 것인가 생각이 들었으나, 설마 그렇다면 미안한 마음이 들 것이므로 서둘러 거기서 눈을 뗐다.
그 택시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앱으로 택시를 불렀으므로, 사고 난 택시가 내가 부른 택시인지를 얼른 곁눈질로 확인했다. 아니었다. 다행이었다. 앱으로 부른 택시가 사고를 났다면, 사고를 처리하는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나는 다른 택시를 타고 가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우엔 정말 나에게 오다가 사고 난 것이 분명하므로, 미안하기도 미안하고 또 상당히 번거로울 것이었다.
하지만 앱으로 호출한 택시의 기사는 4분만 더 기다려 달라고 전화를 했고, 기다림이 5분이 되었고 7분이 다 되어갔다. 시간은 아직 여유가 있었으나 계획이 틀어졌으므로 초조하던 차에, 차를 길가에 대고 사고 낸 오토바이 기사와 이야기하던 택시 기사가 다가오더니 택시를 기다리냐고 물었다. 앱으로 다른 택시를 불렀고 기다리는 중이라고 한 번 거절했으나, 그러고 나서도 나는 택시를 기다리며 한참 서 있었고, 그런 나를 쳐다보던 기사가 다시 한번 더 묻자 나는 곧바로 그 택시를 탔다. 앱에 응답한 택시는 아마 나에게 오기 전에 한 탕을 더 뛰고 있는 게 분명했다.
차 사고가 나서 심란할 것 같은데도 그 택시 기사는 내 짐 두 개를 모두 들어 트렁크에 실어 주었다. 나는 이번에는 기사님을 잘 만났다고 생각했다. 그는 아마 조금 멀리까지 갈 것을 기대하며 나를 태운 것 같았지만 나는 기본요금 두 배 정도만 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공항전철역에 가자고 했다. 그는 짐을 들고 있는 나를 보고 나에게로 오다가 사고 난 게 맞다고 했다. 내가 생각보다 가까운 데 가자 그는 그 사실에 실망한 티를 내지 않았지만, 인천 공항까지 택시로 가는 방법도 있다고 상기시키는 걸 잊지 않았다. 나는 그렇게 할 생각은 없었지만, 대화가 나왔으니 공항까지의 택시비는 물어보았고, 4만 원이라는 말을 듣고는, 그건 예산 밖이라 애초의 목적지까지만 가겠노라고 말했다.
내가 서 있던 곳은 공항리무진 정류장이었으므로 리무진 운행 중단이라는 주제를 피해 갈 수 없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리무진을 운행하지 않는다는 말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얼떨떨한 채로 나는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버스 운행을 중단한 것인가요, 그게 과연 효과가 있나요 하고 말했다. 기사님은 원시인에게 팬데믹 이후에 공항으로 오가는 사람이 없어서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리무진 사업을 접은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몇 년 전에 공항 리무진을 탔을 때, 하얀 와이셔츠에 정장 조끼를 받쳐 입고는 신사처럼 내 짐을 버스에 올려 준 기사님이 생각났다. 출발하자마자 짐 처치가 곤란해졌으므로 그 순간에 그는 내게 신사였다. 승객이 타자마자 출발하는 시내버스에 호되게 당해왔기에, 이동하는 차 안에서 넘어지지 않고 균형 잡으며 이동하는 법을 통달한 내게는 정류장에 멈춰 직접 내려 짐을 옮겨준 뒤에 여유 있게 걸어 다시 운전석에 앉고선, 심지어 승객이 자리에 앉았는지 백미러로 확인한 다음에 출발하는 상황에 격세지감을 느꼈다. 하루에도 수많은 정류장을 스치듯 지나며 바삐 정차했다 떠나는 시내버스에 비해, 쫓기는 것 없는 이 버스를 운전한 게 더 낫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렇지만 짐을 옮겨주는 건 조금 힘들겠다며 머릿속으로 오지랖을 부렸다.
그 성격이 어디 안 가 “그분들은 지금 뭐하고 계실까요?” 물었다. 인류애적으로 괜찮은 질문 같았는데 그는 시큰둥했다. ‘내가 알 바 뭐야, 뭐든 하겠지’라는 듯. 그러네. 그러고 보니 나도 내 코가 석 자다. 벨이 울리고 택시 기사가 전화를 받더니 상대에게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냥 일에 집중하시라고, 보험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조금 전 사고를 냈던 오토바이 기사가 전화한 모양이었다. 오지랖 레이더가 다시 가동했다. ‘오토바이 배달 기사는 보험에 가입되어 있겠지? 이 택시 기사는 세상 ‘쿨’ 한 사람처럼 말하긴 했는데, 정말 그런 거 맞아? 차에 살짝 흠나고 백미러도 깨지지 않았는데, 그냥 좀 봐주긴 그렇겠지?’
여하튼 택시 기사님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 보였다. 원래 성향이 너그러운 분인지 아닌지, 혹은 사고로 인해 보험금을 받게 된 덕분인지 아닌지, 그래서 그 오토바이 기사의 보험금은 얼마나 오를지 아닌지, 회사에서 얼마나 그걸 부담해 줄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나는 그 덕을 봤다. 연쇄 고리의 끝에서 너그러움에 얻어걸린 나. 여하튼 기분이 좋았던 기사는 목적지에 도착한 다음에도 흔쾌히 짐을 손수 내려 주고는, 내가 역에 내려갈 때까지 지켜보았다.
벌써 여행이 시작된 건가. 공항리무진 해프닝을 겪고 나니 이번 여정도 만만치 않겠다는 예감이 온다. 무슨 일들이 벌어지려고 벌써 이러는 걸까. 아니야, 별일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들었는데!! 하필 에스컬레이터 공사 중이다. 내려가는 방향의 에스컬레이터가 멈춰 있고, 두 명의 인부가 무언가를 손보고 있다. 역시 올라오는 방향은 이상 없이 잘만 돌아간다. 허구한 날 중 오늘, 하필 이 시간에, 이 출구에, 내려가는 방향 에스컬레이터만 멈췄다고?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만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낯설지 않다. 매끄럽고 자연스럽다. 머피의 법칙 같은 일들이 내게 얼마나 자주 말도 안 되게 일어나는지 친구들은 안다. 그것들은 때로 몸을 사리기도 하는데 여행할 때는 기다렸다는 듯 총출동한다. 그러므로, 벌어질 일이 벌어진 것. 당황하지 않으려 애쓰며 엘리베이터가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
사실 에스컬레이터보다 엘리베이터가 더 편하지 않은가. 역시, 행운의 신은 내편이다. 결국 무사히 일을 처리할 거면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하며 장난치는 여행의 행운의 신에게 묻고 싶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건지. 그러나 그건 한국에서 묻기로 한다. 지금은 자중할 때다. 아직 여행이 끝나지 않았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