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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Mar 11. 2024

나쁜 고양이

고양이는 불러도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경험상 녀석은 열 번 정도 부르면 여섯 번 정도는 온다. 물론 녀석이 이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 내가 불렀을 때의 경우이고, 남편이나 아이들이 불렀을 때는 횟수가 확 떨어진다. 녀석은 자기 이름을 알고 있고, 이름이 불린다는 것이 곁으로 오라는 뜻임을 알고 있다. 다만 항상 응하지는 않을 뿐이다. 알지만 모른 척하기. 이것이 녀석의 주특기다. 저만치 내가 보이는데도 녀석은 내 부름에 답하지 않는다. 그럴 때면 나는 내가 녀석의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녀석을 마음을 완전히 가질 수는 없다. 




사람에 따라 개를 선호하는 쪽과 고양이를 선호하는 쪽으로 나뉜다. 물론 둘 다를 좋아하기도 둘 다를 싫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개가 주인에게 보여주는 강한 애정과 높은 충성심에 큰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만으로도 녀석들을 이미 흥분의 도가니다. 반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양이 특유의 독립성과 도도함을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다 한나절 내내 밖에서 보내고 집에 돌아왔던 날, 녀석은 캣타워에 무심히 앉은 채 창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한참 뒤 내게 다가와 하품을 한 번 하고는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제자리도 돌아간다. 




원래 있어야 하던 것이 사라져서 왠지 신경이 쓰였는데,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마음이 놓인다, 뭐 이 정도가 녀석의 본심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지만 나는 대체로 녀석의 반응에 크게 실망하지는 않는다. 요란스레 반기는 개들보다 "어이, 왔나?"하고 고개만 꾸벅하는 녀석이 더 좋다. 아무리 내가 녀석과 오래 살며 교감을 나눈다 한들 녀석은 내게 속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을 것만 같다. 




동물이라면 대부분 무서워하지만, 그래도 내가 고양이 특유의 도도함과 독립성을 호의적으로 보게 된 데는 장 그르니에의 산문 <고양이 물루> 영향이 컸다. 글의 마지막 부분이 꽤나 충격적이어서 끔찍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없지 않을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은 모두 덮을 만큼 그르니에게 묘사하는 물루는 더할 나위 없이 근사하다. 내가 물루에게서 받았던 인상은 자유였다. 물루는 사람과 함께하지만 자신의 동물성을 가장 아름다운 형태로 보존하고 있는 존재였다.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자기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는 함부로 답할 만한 쉬운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만일 그런 것이 있다면, 즉 자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자신의 모습이 있다면 아마 물루는 그런 형태의 삶을 살고 있었던 게 아닐까? 인간과 너무 가깝지도 않고, 그렇다고 인간에게서 너무 멀리 달아나지도 않는다. 나는 그저 멋지다고 감탄한다. 




하지만 딱지와 함께 지내는 동안 나는 나의 이중적인 면을 발견한다. 열 번을 부르면 열 번 다 내게 달려왔으면 싶다. 아이들이 고양이를 귀찮게 만지작거려도 발톱을 세우거나 이빨을 드러내지 않기를 바란다. 밤이 되면 우리가 마련해 준 자기 자리에 누워 조용히 잠만 잤으면 한다. 병원에서 적정체중을 유지하라 하니, 가능한 사료는 정량만 먹고, 간식에도 너무 탐을 내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저기 자기 냄새를 뿌리지도 않았으면 한다. 빗질을 하거나 양치질을 할 때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았으면 한다. 배변 후 모래로 거실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도 그만두었으면 한다. 무엇보다 마음이란 것이 있다면 그게 우리에게 투명하게 다 보였으면 한다. 아무 비밀도 없이 우리에게 완전히 의지하는 순종적인 동물이 되기를 원한다. 




얼마 전 녀석이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이름을 불러도, 최후의 수단으로 간식통을 꺼내 흔들어도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여기저기 구석구석 뒤지다 마침내 포기하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안방 화장실 세면대장에는 구석에 휴지를 넣어두는 작은 칸이 있다. 거기 몸을 숨기고 있었던 가 보다. 손을 씻으려고 물을 틀었더니 물소리에 놀란 녀석이 획 하고 튀어나왔다. 놀란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순간 내 입에서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요런 나쁜 고양이




녀석은 벌써 거실로 달아나고 없다. 내 말을 알아들었을 리도 없다. 하지만 나쁜 고양이라니. 스스로 내 말이 우습다. 사람 말을 잘 들으면 착한 고양이고 그렇지 않으면 나쁜 고양이인가? 어둡고 구석진 공간을 좋아하는 건 고양이의 습성이다. 생각해 보면 그런 곳을 잘 찾아내는 것은 고양이의 세계에서는 미덕일 지도 모른다. 그런 행동이 어디 하나 둘인가? 빗질이 되었든 귀청소가 되었든 자신을 귀찮게 하는 녀석에게 하악질을 하고 발톱을 세워 위협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배변 후 모래로 덮어 냄새를 지우는 것도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발각되지 않게 하려는 행동에서 비롯된 것이니 역시나 당연한 일이다. 맛있는 음식이 내일 또 나온다는 보장이 없으니 있을 때 많이 먹어 두려는 것, 이 역시도 당연한 일이다. 모르긴 몰라도 딱지는 고양이다운 고양이가 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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