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창업생태계의 양적 성장과 구조적 한계

유니콘기업 지역과 업종의 다양성 실종

by 지역이음이

1. 서론 : 14마리 유니콘이 말하지 않는 것


한국의 창업생태계는 긴 기간 동안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정책 지원을 통해 양적으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벤처캐피털 자금 조성, 기술보증기금, 창업진흥원을 통한 다양한 창업 지원 프로그램 등 정부의 체계적인 지원 정책이 오늘날 한국이 글로벌 유니콘 기업 보유 국가 11위라는 성과로 이어졌다.(국제 비교를 위해 CB Insights 자료 준용)

유니콘기업이 창업생태계를 모두 대변할 수 없다. 함축적인 결과 중 하나로 보고 글을 쓴다.


CB Insights의 2025년 6월 기준 데이터에 따르면, 한국은 14개의 유니콘 기업을 보유하여 전 세계 1,281개 유니콘 기업 중 1.1%를 차지하고 있으며, 총 기업가치는 약 334억 달러에 달해 12위를 기록했다. 이는 분명 의미 있는 성과다.


그러나 숫자를 옆으로 눕혀 보면 다른 풍경이 드러난다.

도시 다양성 0 : 14개 기업 전부 서울

인구 100만 명당 유니콘 0.269개 : 세계 23위

유니콘 평균 기업가치 23.9 억 달러 : 세계 22위



데이터 분석 결과에 따라 구분했을 때 한국은 싱가포르, 네덜란드와 함께 'Hub Model(고집중형)'에 속한다. 이 모델은 3개 이하의 도시에 5개 이하의 유니콘이 집중된 형태로, 소수 도시의 집중과 상대적으로 적은 유니콘 수가 특징이다.

반면 미국, 중국, 영국, 인도는 'Distributed Model(분산형)'으로 10개 이상의 도시에 유니콘이 분산되어 있으며, 독일, 프랑스, 캐나다는 'Balanced Model(균형형)'으로 4-9개 도시에 적절히 분산된 구조를 보인다.



2. 서울 한 점에 찍힌 14개의 점


오늘날 한국 유니콘의 주소를 지도 위에 찍어 보면 놀라운 광경이 펼쳐진다. 모두가 서울에만 몰려 있기 때문이다. 비슷한 인구 규모(3,000만 ~ 8,000만)의 국가들을 보면, 프랑스·영국·캐나다조차 최소 3~4개의 도시가 유니콘을 품는다. 한국만이 “One City = All Unicorns”라는 유일한 사례다.

14개 유니콘 기업이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 도시당 유니콘 밀도가 14.0개로 세계 2위를 기록했다. 이는 1위인 싱가포르(16.0개)와 비슷한 수준이지만,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집중도는 더욱 극단적이다.


인구 규모가 비슷한 국가들(3천만-8천만 명)과 비교했을 때, 한국과 같이 한 도시에 모든 유니콘 기업이 집중된 사례는 전무하다. 영국(4.6개), 프랑스(4.3개), 태국(3.0개) 등은 모두 한국보다 낮은 도시당 집중도를 보인다.

‘숫자’는 늘었지만, 분포와 깊이는 아직 오지 않았다.



한국의 인구 백만명당 유니콘 기업 수(UpM)는 0.269개로 23위에 그쳤다. 이는 이스라엘(2.6개), 영국(0.82개), 프랑스(0.43개), 독일(0.36개) 등과 비교할 때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의 창업생태계가 아직 인구 규모 대비 충분한 유니콘 기업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국 유니콘 기업의 평균 기업가치는 23.89억 달러로 20위권 밖에 위치한다. 이는 중국(43.37억 달러), 미국(40.63억 달러), 영국(34.89억 달러) 등 주요국들과 비교할 때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유니콘 기업의 개수뿐만 아니라 개별 기업의 성장 잠재력과 시장 가치 창출 능력에서도 개선의 여지가 크다.



3. '편식형 업종구조'의 위험


한국의 유니콘 기업은 업종별로 뚜렷한 편중 현상을 보인다. Consumer & Retail 분야가 57.1%(8개)로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며, Financial Services와 Enterprise Tech가 각각 14.3%(2개씩)를 차지했다. 이는 글로벌 평균인 Enterprise Tech 33.3%, Financial Services 17.8%와는 상당한 차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미국이 Enterprise Tech(41.7%), 중국이 Industrials(30.9%)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과 달리, 한국은 상대적으로 기술 집약도가 낮은 소비재 및 유통 분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창업생태계의 기술적 깊이와 산업 다양성 측면에서 한계를 시사한다.


글로벌 평균: Enterprise Tech 33 % > Fin Tech 18 % > Consumer & Retail 16 %

미·독·중 사례: DeepTech 비중이 평균 20 % 내외


4. 정책적 시사점과 개선 방향


1) 지역 창업생태계의 다양성 확보


한국의 창업생태계가 한 단계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서울 중심의 극도로 집중된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별 특색과 맥락을 살린 다양한 창업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지역 창업은 레거시 산업, (자연)인프라, 문화자산, 지역문제 해결과 깊이 엮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더 긴 숨을 들이마실 스케일딥(Scale‑Deep) 패러다임이 요구된다.

업종 다변화 없인 스케일딥도 없다. 서울 집중 문제를 풀더라도 업종 포트폴리오가 소비재 중심이면 지역 창업은 다시 ‘속도전’에 끌려간다.


2) 지역 기반 인내자본의 확충과 스케일딥 성장 모델


현재 한국의 창업 지원은 수도권 중심의 자본과 빠른 확장(스케일업) 중심의 성장 모델에 집중되어 있다. 하지만 진정한 창업생태계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서는 지역에 기반한 인내자본의 확충이 필요하다. 지역의 맥락이 있는 창업은 해당 지역의 레거시 산업, 자연 인프라, 지역 고유의 문제, 그리고 무형자산(전통 기술, 지역 문화 등)을 깊이 있게 활용하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맥락적 창업은 수도권의 빠른 확장 중심 모델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과 문제를 깊이 이해하고, 지역 커뮤니티와의 신뢰 관계를 구축하며, 지속가능한 해결책을 개발하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따라서 단기 성과보다는 장기적 관점에서 지역의 깊이 있는 가치를 발굴하고 발전시키는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금융기관, 지역 기업, 지자체가 연계된 지역 특화 펀드 조성과 함께, 지역 문제 해결과 자원 활용에 특화된 창업 지원 프로그램이 확충되어야 한다. 수도권의 논리가 아닌 지역의 시간과 리듬에 맞춘 인내자본이야말로 진정한 지역 창업생태계 활성화의 핵심이다.


3) 지역 자원 연구와 창업 인재 발굴 체계 구축


지역 기반 창업생태계의 성공적인 구축을 위해서는 두 가지 핵심적인 기반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첫째, 지역 차원에서 관계자들의 체계적인 지역 자원 스터디가 필요하다. 지자체, 지역 대학, 연구기관, 기업,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지역 자원 연구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해당 지역의 유형·무형 자산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분석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자원 목록화를 넘어서 각 자원의 창업 활용 가능성, 연계성, 지속가능성을 깊이 있게 연구하는 작업이어야 한다. 예를 들어, 생선 대구 껍질을 활용해 의료용 피부를 만들어 아일랜드 최초의 유니콘 기업이 된 Kerecis, 오레건 주의 특수한 자연환경과 토양을 파악해 미국 대표 와이너리 산업을 일군 Willamette Valley 등이다.

둘째, 지역 창업 인재의 체계적인 발굴과 확산이 필요하다. 미국의 지역 비즈니스 일간지들이 운영하는 '30 under 30', '40 under 40'과 같은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하여(Portland Business Journal(https://www.bizjournals.com/portland/40-under-40), Forbes(https://www.forbes.com/30-under-30/2025/), 각 지역의 유망한 창업가들을 조기에 발굴하고 이들의 성공 사례를 지역 내외로 확산시키는 체계적인 플랫폼이 구축되어야 한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지역 내 창업 롤모델을 제시함으로써 창업 문화 확산에 기여할 뿐만 아니라, 지역 간 창업가 네트워크 형성과 상호 학습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5. 결론


공간(서울)·업종(소비재) 모두에 편중된 지금의 생태계는 “불안한 단일 탑”이다. 지방의 인내자본이 딥테크·레거시 융합형 스타트업까지 품어야 숫자·깊이·다양성이 함께 자라는 진짜 스케일딥 곡선이 그려질 것이다.


속도에서 지속성으로, 편식에서 균형식으로.

이것이 한국 유니콘이 다음 10년을 준비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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