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 수난 백서 - 4
최 기사는 모처럼 아내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며 오만가지 상념에 빠져들었다.
예전의 고운 모습이 별로 안 보여. 디지털카메라에 잡힌 아내의 얼굴에 잔주름이 선명하게 나타나자 최 기사는 울컥 가슴이 미여 왔다.
운전하는 남편 뒷바라지하고 두 애들 교육시키느라 억척스럽게 살아오면서도 자신을 위해서는 일절 돈 쓰는 법이 없는 아내였다.
“저쪽 하늘 보면서 자세 좀 잡아봐.”
“이렇게요?
”
최 기사는 아내의 굵어진 허리를 감춰주려고 옆으로 세워놓고 셔터를 눌렀다.
“이번엔 턱을 고이고….”
“그만 찍어요, 갑자기 웬 사진을 찍는다고 법석이에요.”
그러면서도 아내는 턱을 괴고 동편 양떼구름에 시선을 던졌다. 맞아, 저거였어. 아내가 처녀일 때 바로 저 포즈에 반해서 끈질기게 쫓아다녔었지. 그땐 참 예뻤었는데.
“좋았어. 한 장만 더.”
이번엔 카메라 렌즈에 다른 사람의 아내가 잡힌다. 바람난 여편네. 그녀는 색이 진한 잠자리 안경을 끼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호텔을 나서더니 부리나케 차에 오른다.
짙게 선팅이 된 고급 승용차. 그 차의 운전석엔 그녀의 남편이 아닌 다른 사내가 앉아있다. 찰칵, 찰칵… 찰칵. 최 기사는 연신 셔터를 눌러댄다.
“오늘 일 안 나갈 거예요?”
아내의 성화에 그제야 최 기사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카메라를 닫았다. 최 기사는 평소보다 느긋하게 아침까지 챙겨 먹고 집을 나섰다.
“운전하는 사람이 카메라는 왜 들고나가는 거예요?”
“너무 일에만 매달리다 보니 유일한 취미 생활마저 제대로 못 하고 살아왔잖아. 후후! 취미 생활 좀 다시 해보려고.”
아내의 물음에 그렇게 얼버무리고는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곧바로 K 대학 앞으로 갔다.
운전을 직업으로 삼다 보면 종종 새로운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반복되는 일상에 피로가 가중될 때마다 권태로움에서 벗어나고픈 충동을 느낀다.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개인택시 일을 해온 지 10년, 최 기사는 모처럼 만에 특별한 일을 맡게 됐다.
오늘이야말로 그런 매너리즘을 날려버릴 수 있는 날이다. 수입도 보통 운행할 때보다 훨씬 짭짤하다.
그저께 늦은 오후. 최 기사는 K 대학에서 막 나오는 교수 한 사람을 태우게 됐다.
“기사님은 가정이 편안한 편이세요?”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겸연쩍게 웃으며 물었다. 뜬금없는 질문에 최 기사는 잠시 갸웃거리다가 “그저 그런 편이죠, 뭐.”라고 대답했다.
편안한 편이다. 밖에 나와 일하면서 가정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편안한 거라고 여겼다. 아내 덕이다.
안암동에서 서초동까지 가는 동안 그는 많은 얘기를 했다. 그의 얘기는 대부분이 신세 한탄 같은 것이어서 최 기사는 약간 부담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민망스럽기도 했다.
3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그는 박사학위를 딴 후 모교인 K 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다.
건강도 좋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편인데 딱 한 가지, 여자 복이 없다면서 씁쓰레한 표정을 지었다.
오래 유학 생활을 하느라 여자를 모르고 지내다가 귀국해서 지금의 아내와 중매로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는데 아직 애가 없다면서 고개를 흔들기까지 했다.
“조금 늦는 경우도 많죠. 저도 5년이나 지나서 첫애를 얻었는걸요.”
최 기사는 손님에게 위안의 말을 건네면서도 속으로는 별걸 다 걱정거리로 끌어안고 산다고 생각했다.
- 하긴, 이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먹고사는 문제 따위로 골머리를 썩이진 않을 테니까.
“단순히 애가 들어서지 않는 거라면 이렇게까지 신경 쓰겠습니까.”
황 교수는 창밖에 시선을 내던지고 혼잣말처럼 웅얼거렸는데, 얼핏 보니 세상 근심 다 끌어안은 표정이다.
“허허! 작은 일에 너무 민감하신 거 아닙니까?”
최 기사는 그렇게 말해놓고 슬쩍 황 교수의 눈치를 살폈다. 본의는 아니지만, 자신의 말에 약간은 비아냥거림 같은 게 섞여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쓸데없이 기사님께 푸념을 늘어놓았나 봅니다.”
“아, 아닙니다. 그런 뜻으로 말씀드린 게….”
“괘념치 마십시오.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보니까 제가 그만 경솔했던 거 같네요.”
황 교수가 그렇게 말하니까 최 기사는 괜히 미안스러워졌다. 그래서 묻지 않아도 될 말을 물었다.
“혹시 사모님께서도 교수님이신가요?”
“미용실을 운영합니다.”
“미용실이요?”
대학교수와 미용실 사장. 최 기사는 영 밸런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더는 말을 잇지는 않았다.
“저랑 열세 살 차이가 납니다. 너무 젊어선지….”
황 교수는 자신의 아내가 너무 젊어서 여러모로 인식 차이가 크다는 걸 말하고 있었다. 최 기사는 그의 아내가 대략 20대 중반쯤일 거라고 짐작했다.
“거기다가….”
말을 끊은 황 교수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미간을 좁힌다. 그다지 멀지 않은 목적지의 손님에게 듣기에는 좀 거북한 대화가 이어지는 것 같아 최 기사는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
혹시나 했지만 역시 추측했던 대로 외도로 귀결된다.
“이럴 땐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한 겁니까?”
“그걸 제가 어떻게….”
“운전하시면 많은 걸 깨우친다고 들었죠. 일리 있다고 생각해왔습니다. 한 수 가르쳐 주시죠.”
황 교수가 멋쩍게 웃었고, 최 기사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겸연쩍어했다.
그런 일이 나한테 일어났다면? 최 기사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연놈을 붙잡아 사지를 절단하거나 간통죄로 집어넣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의 일이니까 대수롭지 않게 듣고는 있지만, 자신이 당사자라면 그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는 게 최 기사의 평소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답변할 수는 없었다. 역시 다른 사람의 문제다.
“허허, 글쎄요.”
최 기사가 대충 넘기려는데 그는 “전, 다 참아도 그것만은 못 참습니다.”라며 눈에 힘을 주고 결연하게 단정하는 것이었다. 나도, 그래요. 사내가 인내할 수 없는 몇 가지 중에서도 그건 특히 참을 수 없는 경우지요.
황 교수의 표정으로 봐서 이미 결단이 선 것처럼 보였으므로 최 기사는 그저 입을 늘어뜨릴 뿐이었다.
동호대교를 건너는 동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운전하면서 침묵이 이처럼 껄끄러운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라디오를 틀을 수도 없다. 동호대교를 건널 즈음 황 교수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드리면 기사님한테 큰 결례인 줄 알지만.”
그러나 결례 여부를 따지며 말을 가릴 것 같지 않은 태세다. 최 기사는 정중하게 말을 받았다.
“괜찮습니다. 편하게 말씀하시죠.”
“기사님! 저를 좀 도와준다고 생각하시고 하루만 시간을 내주실 수 없을까요?”
“네?”
“물론 충분히 사례하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심부름센터에 의뢰할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여러 가지 부작용이 생길 소지가 있더라고요.”
최 기사는 대략 감을 잡기는 했는데 그의 말을 더 들어보기로 했다.
“저한테 기사님의 하루를 파십시오.”
“하하하!”
황 교수의 표현이 재미있어 웃음을 만들었는데 그도 따라 웃었다.
황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차를 하루 대절하겠다는 것이었다. 차를 전세하는데 그치지 않고 부탁, 아니 요구대로 이행해달라는 것이다.
미행 혹은 추적, 바람난 아내의 뒷조사. 흔히 있는 그런 일을 제안하며 한편으로는 부끄럽고 미안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보수는 섭섭하지 않게 드리겠습니다.”
황 교수는 경제학과 교수답게 무척 합리적인 편이었고 계산도 빨랐다. 그래서 그가 제시한 하루의 대가도 가감 없이 받아들일 만큼 명쾌했다.
“선금 이십만 원입니다.”
그는 서초동 자신의 집까지 나온 요금 외에 선뜻 현금 20만 원을 내주며 이틀 후의 일정을 설명했다.
황 교수는 이틀 후, 자기 아내가 분명히 누군가를 만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남자다.
“조금 전, 제가 가리킨 미용실 있잖습니까. 거기가 아내 사업장입니다.”
최 기사는 황 교수를 내려준 후 사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대로변의 ‘H 헤어숍’ 앞으로 다시 지나가며 슬쩍 내부를 살펴보았다.
얼핏 보아도 여느 미용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넓고 화려했다. 많은 사람이 있어서 그중 누가 황 교수의 부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최 기사는 황 교수에게서 들은 그의 아내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정리했다.
‘검은색 제네시스’
최 기사는 메모를 펼쳐 제네시스의 차량번호를 외웠다.
“제 판단이 맞는다면 내일모레, 그자가 아내를 태우러 올 겁니다.”
그자. 얼핏 보았지만, 아내와 비슷한 또래의 젊은 남자라고 했다. 황 교수는 얼마 전 그자의 제네시스를 쫓아가다가 신호위반에 걸려 딱지 떼인 걸 상기하며 씁쓸하게 웃었다.
누군가를 추적하는 일은 새롭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흥미를 일으킨다. 몸을 수축시키는 긴장감에 한 가지에만 전념할 수 있는 몰입도. 최 기사는 현역 시절 수색대에서 근무할 때를 상기하며 한껏 흥미를 만끽하기로 맘먹었다.
서초동의 ‘H 헤어숍’으로 차를 몰며 최 기사는 콧노래를 불렀다.
조수석의 가죽 가방 두 개에 눈을 던졌다가 빙그레 웃었다. 젊었을 때의 취미 생활을 이럴 때 써먹을 줄이야. 가방 하나에는 16밀리 캠코더가 들어있다. 그리고 카메라와 망원렌즈를 준비했다.
수도 없이 사진을 찍었어도 피사체를 통해 돈을 벌려고 한 적이 없었고, 더더욱 돈이 된 적도 없었다.
그런데 아주 우연히 충분한 대가를 받고 카메라를 조준할 기회가 생겼다. 금상첨화로 짜릿한 스릴까지 곁들일 수 있는 게 아닌가.
“하루 수고비로 오십만 원을 드리면 될까요? 만일 동영상이나 사진 같은 걸 확보할 수 있다면 최하 백만 원을 맞춰드리겠습니다.”
황 교수는 이혼을 원했다. 확실한 증거를 포착해서 아내가 군말 없이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게끔 하려 했다. 깔끔하게 현재의 생활을 정리하고 새 출발을 하려 한다.
좋아. 내가 도와주지. 잘못된 결혼이라면 길게 가지 않는 게 나아. 최 기사는 그렇게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시키며 오늘을 실컷 즐기기로 했다. 최 기사는 미용실에서 적당히 떨어져 차를 정차시켜놓고 황 교수가 일러준 인상착의의 여자를 머릿속에 그렸다.
168㎝, 짧게 커트한 생머리에 쌍꺼풀이 선명한 눈. 아침에 전화를 걸어온 황 교수는 그녀가 오늘 연한 청색 재킷에 비교적 짧은 스커트 차림으로 나갔다고 했다. 다시 황 교수의 말이 들린다.
“기사님! 눈치채지 않게 잘해주세요. 아마 미용실 부근 어딘가에서 놈은 검은색 제네시스를 몰고 와서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실수 없이 미행해서 불륜의 현장을 고발해달라는 다짐. 최 기사는 목을 한 번 비틀고 선글라스를 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