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2023
*모든 것은 글쓴이의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한국의 힙합 아티스트인 스카이민혁의 정규 2집 「해방」입니다. 호불호 갈리는 스타일이란 이유로 힙합씬에서 오랫동안 환영받지 못하던 암흑기를 거쳐 예술에 대한 투지, 성공을 향한 갈망을 담아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데요.
현재 많은 커뮤니티에서 찬사를 받고 있고 역시 올해 발매된 다른 앨범들 - NOWITZKI, 저금통, BEIGE 등 - 에게도 밀리지 않는다는 평가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자타공인 그는 사람들의 미움과 무시를 받아왔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올라갔던 '쇼미더머니'의 무대는 단두대가 되었고, 스카이민혁에게는 수많은 악플과 조롱이 쏟아졌는데요.
정말 모두가 나를 싫어하는구나. 이거 몰카인가?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영화 「트루먼 쇼」가 많이 겹치는 음반이었습니다. 트루먼처럼 한 명의 인간 곳곳을 들어차는 세상의 시선. 그 시선은 시간이 갈수록 딱딱하게 굳어 스카이민혁이라는 음악가 자체를 기억에서 수장시켜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좌우명인 '느려도 꾸준히'. 바이럴도, 대형 기획사도 없이 순수 음악성으로 빚어낸 스카이민혁의 「해방」은 힙합씬 내 언더 - 오버의 벽과 매너리즘, 또 견고한 카스트 같던 시장에 '노력'이라는 근본적인 가치를 들고 등장한 바 있습니다. 자신만이 알던 진실을 사실로 증명해 내 하늘처럼 꾸며진 벽을 열고 나가죠.
1. 14-23
2. 식사 (Feat. 필리)
3. Outcome (Feat. Kundi Panda)
4. 아버지 (Feat. 권기백)
5. 현주소
6. XXK NEXT LEVEL (Feat. XXK)
7. 내 방에서 나가
8. 파이트 (Feat. KOR KASH)
9. 해방
10. 공생
11. 진실
12. 욕심
https://www.youtube.com/watch?v=hrwGVagadMg&pp=ygUG7ZW067Cp : FULL ALBUM
자신의 이야기를 표현해 내는 성향이 강한 힙합은 작가주의적인, 흔히들 바닥부터 시작한 성공 스토리를 담은 음악들을 많이 배출해 왔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주의적 앨범인 본 작품 속 스카이민혁은 1번 트랙 '14-23'에서 인간 이민혁에 대해 설명합니다. 도통 적성에 맞지 않았던 공부에 뭐라도 되어 돌아오겠다 결심해 출가한 뒤 고깃집에서 숙식하며 했던 아르바이트. 친구들과 방세를 나눠 살았던 옥탑방.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하며 뜨기 위해 했던 디스들과 치기 어린 마음에 좋아라만 했던 '쇼미더머니' 본선 진출. 그 이후로 어린 청년이 짊어진 미움.
날 보고 비웃던 놈들보다 위로 가기 위해 난 밑으로 더 내려갔었지
덜 익은 놈이 받은 조명의 대가는 비싸 칼 같은 여론에 마음은 X창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회상은 여기까지 우린 앞으로 가야 하지 더 가야 하니
이 앨범을 끝까지 듣고 나면, 왜 제목이 해방인지 알게 될 거야.
라는 그의 가사를 보면 '14-23'에서 스카이민혁은 자신의 패를 청자들 앞에 내려놓고 시작합니다. 뭣도 아닌 덱이지만, 특별할 것도 없겠지만 꿋꿋이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버티겠다고 말합니다.
이후로 자신의 노력으로 이겨먹겠다는 투지 - 식사, OUTCOME - 와 독불장군이었지만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 그의 강인한 아버지 - 아버지 - 에 대한 트랙, 그리고 자신이 열정을 갖고 뛰어든 힙합의 현 상황, 더 이상 힙합이 힙합이 아니게 된 씬의 현주소에 대해 '우린 힙합을 잊어야 한다'며 - 현주소 - 에서 지적합니다.
개그맨들 뒤에서 알랑방구 뀌는 게 최정상 국힙의 현주소
너넨 찾지 더 빨리 더 빨리 더욱더 빨리는 거 넌 대기업의 톱니바퀴뿐 더욱더
HIP와 HOP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어
우린 힙합을 잊어야 돼
한국 힙합 시장은 최근 몇 년간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왔습니다. 현역 힙합 아티스트들 사이에서도 어떤 게 '힙합'인가에 대해서 의견이 모두 다르고, 또 '어디까지' 힙합인가에 대해서도 음악의 경계선을 가지고 논쟁을 벌이기도 합니다. 스카이민혁 역시 이에 대해 한 마디 하는데요.
JM의 전성기, TAKEONE의 컨트롤 디스, 일리네어의 11:11.
내가 그걸 어떻게 잊냐.
아무래도 본토와 국가 문화, 환경이 다를 수밖에 없는 한국에는 힙합이 들어오며 큰 문화적 과도기를 맞았습니다.
범죄와 여성비하, 기믹(Gimmick) 등의 가치를 내세우는 장르적 특성을 부정적이게 바라보는가 하면 단지 본래 장르에 충실할 뿐, 많은 예술 장르가 그러하듯 하나의 '페르소나'라고 반박하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그저 '한국적인 것'에 집중을 하기도 하고요.
스카이민혁은 다 필요 없고, 내가 새로운 멋을 가져올 테니 힙합을 잊을 수 없을 거라며 자신의 포부를 드러냅니다. 힙합이 별거 있냐는 듯한 그의 패기는 인과가 바뀌었음에도 결과로써 증명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죠.
목숨을 걸고 만든 작품에 자신의 승리를 점쳤던 스카이민혁은 자신이 생각하는 멋의 안 어울리는 부분들을 쳐냅니다.
- XXK NEXT LEVEL, 내 방에서 나가, 파이트 - 특히 7번 트랙 '내 방에서 나가'에서 잃을 거 없다는 듯 사리지 않고 당당히 내뱉는 디스들은 '14-23'에서 그가 말한 '뜨기 위해 했던 발악'과 대비되며 큰 인상을 줍니다.
우리 팀 모여 어벤저스는 아니고 가오갤
부려 기묘한 곡예를 건방진 이 무뢰배들
- XXK NEXT LEVEL -
인맥 힙합을 욕하지만 이 세상 인맥이 전부지
외힙이 하는 걸 눈치 못 채게 먼저 베끼는 게 네 숙제
멋있나 봐 30살 처먹고 마약 파는 게
근데 넌 힙합은 아니야 여기서 나가
- 내 방에서 나가 -
어디에 있어 넌 어디에 있어 죽을 각오를 하고 적진에 있어
바퀴벌레는 의심 없이 죽이면서 왜 X랄인지 생명의 무게는 공평 벌레든 너든 다 죽여
- 파이트 -
이 정도까지만 들어도 「해방」은 붐뱁과 멤피스 스타일로 무장한 '무난한 랩 앨범인가?'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나 그 누구보다 이 앨범이 힙합스러웠던 이유는 이제 등장하는데요.
이내 「해방」은 앨범의 정수이자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네 개의 트랙. [해방 - 공생 - 진실 - 욕심]으로 진입합니다. 바로 앞까지의 트랙에서 그는 씬에 느끼던 염증들을 해소하고 터진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죠.
X까 알겠고 과거는 집어치워 아빠가 못한 거 내가 다 해
고조부부터 증조할아버지까지 성공 못한 거 내가 다 해
돈에서 해방감 느낄래 새같이 날 거야
부자들의 발끝도 못 가거나 실패한다면
나 같은 애들이 꿈이란 걸 제대로 가질 수 있을까 과연
스카이민혁은 이 트랙에서 '어차피 세상은 돈이 지배했고, 난 돈으로부터 해방감을 느끼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칩니다. '돈을 버는'이 아닌, '돈을 벌 필요'가 없는 삶을 살고 싶어 하죠.
성공에 대한 갈망과 부자가 되고자 하는 야망. 그러나 이 해방이란 트랙의 의미에 대해선 후술 하겠지만 스카이민혁은 이 해방을 위해 한 가지를 더 해결해야 합니다.
온통 뉴스엔 소상공인들 더럽게 힘들다는데
신촌역 라멘집은 웨이팅을 조지네
스카이민혁은 '해방'까지 고조되는 긴장을 공생에서 잠시 풀어줍니다. 신촌역에 도착했음을 안내하는 지하철 음성이 나오고, 이내 살고자, 부자가 되고자 같은 목표를 가졌던 사람들과 공생하며 느껴온 회의감을 털어놓는데요. 나 같은 놈들이 한 트럭은 쏟아지는 세상과 한 줄 세우기, 그 '줄' 조차도 꼭 공정하지만은 않고.
겉보기엔 그럴싸한 네 속셈같이 다 그렇게 사는 거지 뭐라 하기엔 너무 뻔한 결말이
넌 뭔데 넌 뭘 챙겨 너도 More Chain, More Cash 난 모르겠지 뭐를 Focus 그냥 공생이야 공생
언제나 이해가 끝나면 오해가 찾아옵니다. 공존을 위해, 너도 나도 살기 위해 다 그렇게 살았던 거 아니냐고요. 어느새 성장한 스카이민혁은 다음 트랙 진실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해방해야 했던 것은 무엇인지, 스스로의 열등감을 헤집어 찾아내려고 합니다.
화자는 폭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진실을 마주한 화자의 거울은 부서지고 그의 분노를 잠자코 들어주던 이는 연인도 힙합도 아닌 스스로였음을 깨달으면서요.
옆 사람이 네 목 조르는 척, 정신 좀 차려 널 죽이는 건 너잖아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속내는 끓으며 목에는 가래가 끼는 삶입니다. 화자의 머리를 짓누르고 그를 끌어올려줄 사람들의 손목을 자르며 이렇게 된 건 괄호 속의 무언가 때문이라고.
날 가둔 건 나였으며, 해방하려면 스스로를 먼저 풀어줘야 했음을 깨닫습니다.
이 트랙은 꼭 직접 가사를 보며 들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해방」의 마지막 트랙이자 해방을 위해 제일 먼저 해야 했던 것. 앨범명과 제목이 똑같은 '해방'을 표출하곤 스카이민혁은 잠시 멈춰 서서 '해방'이란 이름의 욕심과 욕심이란 이름의 해방을 시작합니다.
힘을 쭉 늘이며 잔잔하지만 청자를 깊게 집어삼키며 비트가 시작되는데요. 돈이고 뭐고, 나를 가둔 건 나였다고 시인한 뒤에.
내 꿈들의 꽃들 전부 지고 있는 것 같아요
다 욕심이겠죠
내 과거의 복수 그저 내 모든 욕심이겠죠
다 욕심이겠죠
나눠주기보단 뺏는 게 훨씬 자연스러웠나
돈과 인기만 좇지 않고 더 중요한 가치를 보게 해 주소서
나와 의견이 다르다 해도 배우는 태도를
좀 더 나은 인간이 되기를
감정보다 현명해지기를
꼭 해방해 내기를
모든 것을 얻었다가 모든 걸 잃고
진흙 속에 피는 꽃은 피고 또 지고
떨쳐 버리기 힘든 아쉬움과 미련
결국 날 일으켜 세워주시죠
결국 날 일으켜 세워주시죠
결국 날 일으켜 세워주시죠.
특히 마지막 부분 '결국 날 일으켜 세워주시죠'의 반복은 날 다시 일으켜달라는, 등을 토닥여달라는 처절함에서 이미 먼지를 털고 찌뿌둥한 몸을 피며 일어나는 중인 화자가 중얼거리는 의미로 변화하며 깊은 여운을 줍니다.
아티스트 스카이민혁이 가진 강점과 노력이 보완한 것들은 모두 이 앨범에 담겨 있습니다. 씬에 대한 분노, 열등감, 의지, 노력, 끈기, 야망. 어떻게 보면 힙합 앨범의 클리셰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만 힙합에 목숨을 걸었던 그는 삶 자체가 그러한 야마로 다가갈 수밖에 없죠.
단순히 앨범의 서사와 메시지 외에도 멤피스와 서태지와 아이들 느낌의 올드스쿨 붐뱁 비트. 또 불호 요소로 지적받던 하이톤을 연마해 적재적소에 넣으며 타격감과 음악성을 동시에 챙기고 있습니다.
단순히 듣는 것으로만 생각했을 때도 고개를 까딱이게 되는 음악이라고 볼 수 있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내면의 것들을 멜로디와 비트, 랩으로 변환해 스피커 너머의 사람들을 설득시키며 '명작'의 반열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만큼 그의 개안開眼이, 해방이 씬에 어떤 흐름을 가져올지 궁금합니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 마이크를 쥐고 예술에 목숨을 건 예술가.
동시에 성공하며 살고자 하는 청년의 모습이자 클래식으로 돌아온, 스카이민혁의 「해방」은 청자들로 하여금 노력의 결실을 다시 한번 증명합니다. 클래식과 노력과 해방. 일맥상통하는 키워드들은 진흙 속에서 피어난 예술가를 기념하는 듯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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