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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접 Jun 20. 2022

질문에 대한 본질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

이 책은 작가 강신주가 무문관에 대해서 48개의 질문에 대해서 쓴 책이다. 먼저 난 강신주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다 상담 시리즈로 인기몰이가 있었을 때도 철학을 저렇게 가볍게 이야기해도 될까? 에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그 이후 강신주는 강신주만의 철학책을 동서양 할 것 없이 내어놓았다.

그리고 나도 중고서적에서 책을 뒤지다가 이 책을 발견했다. 그리고 난 내 오해는 풀렸고 이 책을 3번을 읽었다.


언젠가 적었던 것 같은데 좋은 책은 삼독을 한다. 첫 번째는 그냥 내용을 파악하고 두 번째는 모르는 내용을 찾기 위해 자료를 서치하고 세 번째는 직접 적는다. 그러다 보니 책을 읽었다고 하려면 시간이 좀 걸린다.

요즘 마음이 어지럽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생각이 많은 건 사실이다. 그중에서 오롯하게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가를 물으면 그것도 답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과 마주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고 이 책 이후 강신주가 쓴 동서양 철학책은 고맙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철학책은 작가의 필터링이 거쳐지면 그건 2차 이론이 되기 때문에 난 내가 먼저 원서를 읽고 이해를 하고 번역본을 보는 습관이 대학 때부터 있어서 잊고 있던 철학자를 소환하면서 덕분에 아주 오래된 철학자들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에 제목처럼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을까?, 한참을 생각했다. 예전에 나라면 난 못 할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이유라면 예전에는 집착 아집 그리고 나만의 생각이 많았다면 지금은 아닌 건 아니고 맞는 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내가 할 수 없는 건 안된다에 한 표를 주기에 난 손을 뗄 수 있을 것 같다. 그럼 이후 질문은 그게 절벽이라도?라고 묻는다면 그 역시 그렇다이다.


절벽이면 죽을 수 있잖아?라고 물을 텐데, 난 생각한다. 인생은 어차피 절벽이든 아니든 죽는다. 죽으려면 그냥 있어도 어이없게 죽을 수 있고 살려면 어떻게든 사는 건 여러 번 본 터 죽고 사는 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게 절벽이라도 난 내 것이 아니라면 난 떨어져 내릴 것 같다.

예전의 나였다면 내 중심에서 나를 봤겠지만 지금은 나는 3인칭 관점으로 나를 본다.

그러기에 다소 난 객관적이고 아니 거의 혹평에 가깝고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도 "너는 왜 이렇게 글을 못쓰니"와 함께 글을 쓰고 있다.


가장 기억나는 챕터가 있는데 <대매가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라고 묻자 마조 스님은 "마음에 이르면 부처다"라고 말했다.>라는 챕터가 있다. 사실 부처는 자신을 뛰어넘으라고 말한 장본인이다.

평소에도 제자가 오면 늘 그랬다.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냐고 물으면 자신을 뛰어넘으라 모두에게 불성이 있으니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법정스님은 일기일회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신다. 중놈 믿지 마세요, 가족도 버리고 나온 사람들입니다.라고 시작하는 법문이 있는데 꼭 중이 아니라도 중처럼 마음을 비우고 깨끗한 도량으로 살면 그게 중이라고 하신 말씀이 있다.


요즘 난 예전에 붙잡고 살았던 미련과 후회를 털어버리려고 노력 중이고 이 책을 다시 보고 있다.

거의 외우겠네, 하면서 보는데 그래도 재미가 있다.

그래서 강신주의 작가의 팬이 되었는데 다시 철학책을 보고 있다.

역시 철학은 버릴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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