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생각

1. 나의 꿈, 나의 파라다이스

by 김건일

그 곳은 파라다이스였다. 언제나 초록빛 물결로 일렁거렸다. 지금은 기억조차 아스라한 ‘알팔파’, 혹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와 같은 사료작물들이 뿜어내는 향기만으로도 황홀함이 넘쳐났다. 발바닥을 간질이며 달려드는 쇠똥구리 떼, 사방가득 흐드러지게 피어난 들국화며 언제나 반가운 쑥부쟁이, 미국에서 귀화했다는 털별 꽃 아재비, 그 사이로 신명나게 춤추는 호랑나비의 날개 짓은 부챗살처럼 부서지는 가을 햇살을 받아 금빛으로 반짝거렸다. 초록바다를 유영하듯 풀을 뜯는 누렁이 떼의 느린 걸음은 그야말로 평화 그 자체였다. 가끔씩 살 오른 조랑말에 올라 타 그 너른 목장을 휘휘 내달릴 때면 나는 서부영화의 주인공이 되는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40여 년 전 내가 다녔던 농업고등학교 목장의 가을 풍경이다.

그 때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한 여름, 뙤약볕이 치렁치렁 걸려있는 학교목장에서 실습이란 명목으로 혹사당하면서도 훌륭한 농부를 꿈꿨다. 목장 언덕바지에 서면 목장은 나의 소유나 다를 바 없었다. 탁 트인 하늘과 시원한 초원 사이를 흐르는 맑은 햇살과 싱그러운 공기, 시야가득 들어오는 쪽빛 바다, 바다건너 또 다른 세상은 나의 꿈을 더욱 부풀렸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꿈속에는 인간에 대한 동경과 자연을 흠모하는 사랑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국어선생님은 문학이 꿈꿀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셨다. 책을 읽고, 생각하며, 글을 쓰도록 끊임없이 다그치셨다. 원고지가 넉넉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선생님은 등사기로 만들어 낸 원고지를 지긋지긋하게도 주셨는데 그것은 나의 꿈을 담는 그릇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그 분량의 원고지만큼 독후감을 쓰느라 애썼던 기억도 선명하다. 한국문학에서부터 중국과 러시아, 영국의 문학을 넘나들면서 우리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만났고, 어렴풋이 문학가에 대한 꿈도 키웠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그 시절의 꿈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크고 굵게 반영됐는지를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비록 훌륭한 농부가 된 것도, 불멸의 작품을 써낸 문학가가 된 것은 아니지만 방송기자로 현장을 뛰어 다니면서, 방송토론의 진행자로 지역의 현안을 다루면서 나는 비로소 그때 꾸었던 그 많은 꿈들이 내 삶속에 살포시 묻어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쓰는 기사 한 줄, 내가 읽어 내려가는 리포트 문장 하나하나에 제주의 아름다운 자연과 제주사람들의 올곧은 혼을 심으려 했던 것은 그 꿈의 현시에 다름 아니다.

얼마 전 그 목장부근을 지나면서 그 시절의 추억을 다시 떠 올렸지만 나는 끝내 그 목장을 찾지 못했다. 초록빛 목장을 누비던 누렁이 떼도 사라졌고, ‘축산입국’의 기치아래 풍요를 꿈꾸던 젊은 농부들도 만날 수 없었다. 40여 년 전 성냥갑처럼 옹기종기 살아가던 산동네 마을은 어느새 도시로 뒤바뀌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별장과 분양안내 현수막이 한라산을 가렸다. 도란도란 이야기 하듯 앞 다퉈 내달리던 실개천의 시냇물도 예전 같지 않다. 돈내코의 맑은 물을 머금은 채 반짝이는 이슬을 담아냈던 한란은 어디로 숨었을까, 늘 푸르른 빛으로 온갖 새를 품었던 숲속은 포크레인 소리로 시끄럽다. 호텔인지 리조트인지는 모르겠지만 개발의 광풍에 묻혀 버린 것이다. 숲 건너 저편에서는 골프공이 부서지는 듯 금속성의 날카로운 소리가 귓전을 스치고 나이스 샷을 외치는 캐디의 서글픈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새들은 날아갔고 소중하기만 했던 나의 추억도 산산조각이 된 것 같아 아쉬움이 크다.

모두가 변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것은 학창 시절의 추억이다. 언제나 떠 올릴 수 있는 은사님들에 대한 고마움, 변함없이 제자에게 베풀어주는 그분들의 사랑과 격려는 지치고 피곤한 나의 삶을 다독여주는 힘이기도 하다. 이제 다시 꿈을 꾸려한다. 제주의 자연과 인간에 대한 꿈, 거기에다 평화를 위한 꿈을 담아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그래서 언제 만나도 정겨웠던 나의 벗들과 함께 꿈꾸었던 파라다이스를 이 땅에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