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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엘 Feb 26. 2023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나다.

내 그림자 발견하기

"저는 ㅇㅇ님이 정말 싫었어요."


한 회사에서 3년을 일하고 안식월을 떠나기 전 내가 정말 싫어했던 분에게 이렇게 고백했다. 정말이지 나는 이 분과 안맞았다. 그 이유는 감정 기복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신입사원 때 모든 일을 잘하지 못했다. 이따금 실수가 있으면 나는 그분의 감정 기복을 피부로 느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상한가와 하한가를 왔다 갔다했다. 마음에도 거래정지가 있었다면 나는 그분을 그렇게까지 싫어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루는 그분의 발걸음 소리에 심장이 밟히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깊게 생각해봤다. 이게 이렇게까지 느낄 일인가? 나는 왜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싫을까? 왜 그분의 감정 기복이 내게 벼락처럼 꽂힐까? 어쨌거나 같이 일을 하고 성과를 만들어야 하니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어떤 사람이 너무 싫으면 사실 그 모습이 자기 모습인 경우가 많아요."


싫은 사람 만났을때 봐야 하는것 (정신과의사 정우열 2부)

그러던 중 정신과의사 정우열님의 인터뷰 영상을 봤다. '싫은 사람을 만났을 때 봐야 하는것' 이 제목은 딱 내 상황아닌가? 싫은 사람을 만나면 만난거지 도대체 무엇을 봐야할까? 실마리를 발견했을 때 머릿속에 반짝이는 느낌을 품고 영상을 빠짐없이 봤다.


영상은 융의 그림자 이론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림자는 의식적인 측면에서가 아니라 무의식적인 측면에서의 개인 인격을 말한다. 

융 심리학에서 그림자(shadow) 또는 "그림자 측면"은 의식적인 자아 자체가 식별할 수 없는 성격의 무의식적 측면을 뜻한다. 왜냐하면 그림자는 크게 부정적이거나 무의식의 전체, 즉 사람이 의식하지 않는 모든 것이기에 한 쪽 면은 거부하거나 성격의 바람직한 면만 안 채 있으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그림자에 긍정적인 측면이 숨겨져 있을 수 있다. 그림자의 프로이트식 정의와는 달리, 융의 그림자는 외부에서 드러날 수 있고 긍정적 또는 부정적일 수 있다. 융은 "모든 사람은 그림자를 지며, 개인의 의식 생활에서 구현이 적을수록, 그것은 검어지고 어두워진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의식하는 마음에 의한 유아기 동안 대체되는, 원시적인 동물의 본능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위키백과 : https://bit.ly/3kmSin2


그림자 이론 관점에서 내가 싫어했던 분의 감정 기복을 생각해봤다. 어쩌면 감정 기복이 내가 꽁꽁 숨겨왔던 그림자 아닐까. 그리고 그 그림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사실, 나는 낯가림이 심하고 다양한 사람을 두루 알기보다 한정된 사람을 깊게 아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다 보니 아주 깊은 관계가 아니면 인간관계를 맺을 때 항상 내 감정 변화를 안 들키려고 노력한다. 이를 보고 어떤 분은 관계 초반에 약간 로보트 같다고 오해했다고 한다. 


가만 보면, 나는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감정을 상대방에게 투사하지 않으려고 부단히 '감정 기복 없는 척'을 잘 해왔던 것 같다. 우리 학급, 팀, 조직, 상대방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어서 부정적인 감정이 들어도 그것을 꽁꽁 싸매서 마음속 깊은 구석에 쳐박아놓기 일쑤였다. 


이런 패턴은 어머니와의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우리 어머니는 일찍 결혼해 나를 낳아 아주 어려서부터 일을 하셨다. 지금도 아버지와 맞벌이를 하신다. 어렸을 적 집에 혼자 있으면 나는 퇴근하시는 어머니의 감정 변화를 살피며 눈치를 봐야했다.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라도 있으면 말의 높낮이에서 날카로운 떨림이 그대로 느껴지곤 했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 것이다. 상대방의 감정을 피부로 느끼고 휘몰아치는 내 감정을 꽁꽁 숨겨 괜찮은 척했다. 


우리 어머니도 힘들었을 테고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나는 어머니를 존경하고 사랑하지만 한켠으로는 어머니의 감정 기복에 반항심과 적대감도 컸다. 이러한 옛날의 적대감은 현재까지 그림자로 남아 생각을 비틀고 편향되게 만들었다. 


"나는 엄마처럼 감정적인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이 말을 스스로 다짐하며 무의식 서랍 한켠에 넣어두며 살았나 보다. 그리고, 회사에서 싫어하는 사람의 감정 기복을 보니 나도 모르고 있던 무의식 서랍이 열려 의식에 투사되어 얼굴을 내밀었나 보다. 


생각을 다듬고 그 분을 회사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다지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그 분이 싫은 게 아니라 그 분의 감정 기복안에 있는 나의 감정적인 모습과의 직면이 두려웠나보다. 



진심 어린 사과와 반성


"그런데, ㅇㅇ님의 모습 안에서 저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그 모습은 제 어머니의 모습과 같았고요. 그래서 싫었나 봐요. 제 마음 깊은 곳에 감정 기복이라는 촉매제가 있었어요. 죄송해요. 제가 정말 미성숙했어요."


진심으로 사과드렸다. 내가 ㅇㅇ님을 싫어하면서 정말 미성숙하게 대처했다는 부분을 인정했다. ㅇㅇ님도 그 마음을 느꼈을 것이고 불편했을 것이다. 나의 감정 기복을 그분께 투사하며 나 스스로를 지키려 했다. 다행스럽게도, ㅇㅇ님은 그림자 이론에 대해 공감해주셨다. 나도 이러이러한 그림자가 있는 것 같다며 여러 인간관계 이야기를 나누고 면담을 마쳤다. ㅇㅇ님을 싫어했던 일은 내 그림자를 발견하게 해준 인생의 큰 의미로 다시 꽃폈다. 


 

그림자를 돌보는 삶을 살자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니
모든 탐험의 끝은
시작하였던 곳에 도착하여
비로소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되는 것이리라.
- T.S 엘리엇, <네 개의 사중주> 중에서

엘리엇의 싯구를 읽고 인생은 직선이 아니라 나선이고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연결. 지난 3년간 디지털 PR 에이전시에 3번째 사원으로 들어가 고군분투하며 배운 의미이다. 


정말로 누군가를 싫어했지만 그 안에는 내가 연결되어 있었다. 

반대로 누군가를 우상화했지만 그 안에도 내 그림자가 있었다.

싫어했던 일은 새로운 커리어의 도전 제목과 연결되어 있었다. 


의식적인 가면은 반드시 어두운 그림자와 연결되어 있다. 

내 그림자를 인식하고 돌보며 사과하고 반성하고 깨지고 다치면서 

꽁꽁 숨겨놨던 나의 잠재력과 가능성이 진정으로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 


내 앞에 놓인 생.

그림자를 돌보며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삶에 도전해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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