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관 이야기(11)

시민 과학실험

by 유만선

얼마 전 국내 한 대기업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관과 파트너십을 맺고 서울에 대형 과학관을 짓겠다고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해당 과학관은 1969년 프랭크 오펜하이머(Frank Oppenheimer)가 설립한 ‘익스플로라토리움(Exploratorium)’이다. 그는 미국의 핵개발 프로젝트인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동생이자, 형과 마찬가지로 물리학 박사였다. ‘Explora-’는 ‘탐구하다’ ‘더듬어 보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익스플로라토리움은 방문객들이 전시장에 나열된 지식을 소비하는 ‘관객(audience)’에 머물지 않고 전시물을 대상으로 실험과 관찰을 수행하는 ‘탐구자(explorer)’로 참여하게 하는 전시로 유명하다. 국내 과학관에서도 체험형 전시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러한 전시 방식의 원형을 제시한 곳이 바로 익스플로라토리움이라는 점에서 그 위상은 남다르다.


이러한 점에서 익스플로라토리움은 기존의 박물관과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박물관의 역사는 고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설치된 지식의 창고 ‘무세이온’에서 출발한다. 근대에는 유럽 귀족들이 전 세계에서 수집한 물품을 전시한 ‘호기심의 방(cabinets of curiosities)’이 그 원조가 됐다. 이러한 배경에서 박물관 전시의 핵심은 ‘유물’이며, 유물의 조사와 수집, 연구 활동은 좋은 박물관의 필수 역량이다. 반면 익스플로라토리움은 유물 수집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이 과학 현상을 관찰하며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느낄 수 있는 전시물을 개발하는 데 역량을 집중한다. 즉, 발굴하고 복원하는 유물과 달리, 이곳의 전시는 과학자와 디자이너·제작자가 협업해 만들어 내는 과학을 소재로 한 ‘작품’에 가깝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박물관의 유물은 원형이 잘 보존될수록 가치가 크며, 오래될수록 문명의 깊이를 보여준다. 반면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전시물은 기획자 혹은 개발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과학적 메시지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지 끊임없이 점검받고 평가된다. 의도대로 기능하지 못할 경우에는 수시로 보완되거나 폐기된다. 이는 과학자들이 이론을 세우고 실험을 통해 입증하며, 실패할 경우 이를 수정하거나 폐기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image.png 익스플로라토리움의 전시물 제작


수년 전 방문 당시 만났던 그곳 개발자의 말에 따르면, 하나의 전시물을 개발하기 위해 다섯 번 이상의 시제품 제작 과정을 거치며, 전시된 이후에도 방문객의 반응을 분석해 상시 개선한다고 한다. 이러한 철학을 반영해 익스플로라토리움 개관 50주년이었던 2019년, 한 국제행사에서 기관장은 이 공간을 시민과 함께하는 ‘거대한 실험실’로 설명했다. 그는 경영진의 운영 방향을 바꾸거나 기획자가 대규모 행사를 여는 것 뿐만 아니라, 현장 해설사의 설명 방식 변화, 기술자의 전시물 보수 작업까지 모두 ‘연구(research)’라고 불렀다. 과학자의 손에 의해 민간 주도로 만들어진 익스플로라토리움과 달리, 우리나라의 과학관은 그동안 정부 주도로 설립돼 왔다. ‘산업보국’을 기치로 과학기술 인력을 양성하려 했든, 과학을 ‘문화’로 승화시켜 시민의 삶의 일부로 만들려 했든, 1960년대 서울 혜화동의 국립서울과학관을 시작으로 전국 150여 개 과학관이 조성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노력은 분명 큰 역할을 했다.


민간 경제의 성장으로 경제 시스템 내에서 정부의 역할이 변했듯이 이번 대기업과 익스플로라토리움의 협력 사례는 그동안 정부가 도맡아 온 과학문화사업에 신선한 자극과 도전 과제를 안겨 줄 것이다. ‘과학관의 아버지’라 불리는 익스플로라토리움처럼, 과학자와 예술가, 지역 커뮤니티가 함께 과학을 탐구하고 연구하는, 그리하여 시민들에게 높은 가치를 인정받는 공공의 문화공간으로서 새로운 과학관 모델이 탄생하길 기대한다.


image.png 서울시립과학관의 과학X예술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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