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런치 작가로 이루고 싶은 나의 꿈 이야기
내게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은 내가 준 글을 떠올린다.
“그때 주신 시 지갑 속에 있어요”
“자주 보려고 냉장고 문에 붙여 놓았어요”
나는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학창 시절, 방학이 되면 오십 명 넘는 반 친구들에게 안부를 묻는 손 편지를 다정하게 썼다.
한 번도 말해보지 못한 반 아이까지도 같은 반이라는 이유로 이름을 꾹꾹 눌러썼는데 그때
내 마음 한편에는 ‘나처럼 소외감을 느끼게 해서는 안된다’는…. 그 작은 결심이 담겨 있었다.
많은 편지가 빨간 우체통에 쏟아질 때면, 나도 어디쯤 세상에 속해 있다고 느꼈다.
어떻게 보면 내 글쓰기의 시작은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한 편지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이 닿아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무엇이 있었는데 그것은 끊임없는 열등감 속에서 뒤로만 달아나려고 했던 초라한 자아였다.
사춘기 무렵부터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지 못해 마음속에는 그늘이 참 많았고 그만큼 생각의 씨앗이 알차게 자라지 못했다. 시간을 뚫고 나아가는 힘이 없어 늘 어딘가 머물러 있는 느낌이었다.
어느 날 국어 선생님께서 낭송한 김수영의 ‘폭포’가 목구멍 속에 길게 걸려있던 가시를 한 조각씩 부숴내는 것 같았다. 그날 밤부터 내 책상 위에는 시집이 놓였고, 윤동주의 ‘자화상’을 필사하며 시와 나누는 대화가 작은 위로가 되었다. 짧은 시는 긴 소설보다 더 깊은 울림으로 내 사춘기 마음을 달래주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 삶의 의미를 찾아 여기저기 살펴보는 단단한 힘이 생기게 되었다.
열정을 태울 수 있는 불씨가 생겼다고 해야 할까?
나는 국어를 잘하는 학생도, ‘공부를 잘하는 학생’도 아니었다. 대학에 진학해서도 전문지식을 모아 애써 파고드는 공부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다만 편지에 응어리를 풀어놓다 시를 잡았고 시가 좋아 시인을 동경하다 보니 국어 교사가 된 게 아니었을까? 그건 하나의 이끌림이었다.
그냥 찍은 점들이 우연히 부는 바람에 선으로 이어지듯이
교단에 서서 아이들의 삶과 글을 만났다. 시인, 소설가, 철학자, 고전 평론가—좋은 글을 읽고 직접 그들의 삶의 결을 느꼈던 순간들은, 나를 국어교사에서 진로교사로 이끄는 이정표가 되었다.
좋은 글을 만나 내 마음에 빛이 들어와 거기에서 희망을 발견한 것이었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은 수능 문제를 잘 풀어주는 날카로운 분석가이자 등급의 숫자로 갈 수 있는 대학을 찾는 것이었다. 그 속에서도 나는 시가 주는 힘을 놓지 않았다. 수업 시작과 동시에 5분은 좋은 시를 함께 읽었고 상담을 마무리할 때는 시를 주었다.
자신의 잠재력을 책을 통해 발견하고 글로 표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선생님으로 곁에 있고 싶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조그맣게 흩어진 생각들이 ‘나로와 서당’에 모이면 단단해지고 아름다운 화음을 낸다.
‘나의 길로 와, 서서히 당당하게’라는 의미로 만든 ‘나로와 서당’에서 내 글이 아이들의 마음을 다독여 각자의 빛을 한데 모아 꽃을 피우는 아이들로 성장해 나가는 그 모습이 내게는 가장 큰 위로이자 행복이다.
나 또한 계속 새로운 꿈을 향해 걸어간다. 국어교사에서 진로교사, 그리고 브런치 작가로 나아가는 내 길.
그 길이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별빛이 되기를, 오늘도 간절히 바란다.
등급의 숫자에 숨죽인 아이들에게, 잿빛 마음의 불씨를 토닥이는 따뜻한 글 한 줄을 남기고 싶다.
한 발 한 발, 아이들의 작은 걸음들이 결국은 ‘자기다운 꽃’으로 환히 피어나기를 바라니까.
- 2025. 09.10.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