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시

by 부러진 연필

자꾸만 신발을 바닥에 대고 이리저리 긁어본다.

아직 다 알지도 못하는 한글로 친구 이름을 썼다가 지우고 동그라미, 세모, 네모도 그려본다.

동네 아이들이 학교와 유치원에 가 있는 동안 나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오후 내내 동네를 돌아다니다 어제처럼 버스 정류소 벤치에 앉아 발장난을 하고 있다.

한 시간마다 지나가는 버스를 두 번이나 보내고 나니 짧은 해가 금방 붉어진다.

발밑 동그라미 안에 엄마 얼굴이 보인다.

지우고 다시 지워도 똑같은 얼굴이다.

참는다 생각도 못하고 절로 눈이 아파와 결국은 엉엉 울고 말았다.

산꼭대기에 꽂힌 주황색 해가 차갑고 길게 어깨를 비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바람에 눈물이 마른다.


"아가 어데 가따오노?"

"춥따. 어서 드가자. 밥 차리나따"

나는 백열등은 어쩌면 방을 더 어둡게 만드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밥상 앞에 앉았다.

하얀 밥과 된장찌개, 무 장아찌와 대접에 홍시가 담겨있었다.

'할무이 홍시 먼저 무도 대나?'

나는 숟가락을 들지 않고 할머니 얼굴과 홍시가 든 대접을 번갈아 바라본다.

"하므, 무봐라"

할머니는 단번에 알아듣는다. 내가 속으로 무슨 말을 하든.

옆집 오래 자란 감나무는 이때가 되면 집 뒷마당에 서늘한 홍시로 가끔 인사를 한다.

한 입 베어, 아니 빨아먹으니 달다.

할머니가 웃는다.

할머니는 엄마고 아빠다.


'맛있다. 할무이도 좀 무라'

대접을 두 손으로 들어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할무이는 차서 밸로라“

홍시가 점점 더 달지 않았지만 씨를 둘러싼 아삭하고 쫄깃한 부분까지 다 먹었다.

의기양양 빈 대접을 할머니에게 보여줬다.

나는 할머니도 주황색이 차가울 수 있다는 걸 아는 것 같아 신기했다.

아까 저녁 햇빛도 홍시처럼 붉고 서러웠는데.

하지만 괜찮다.

엄마만 오면 저녁 노을도 홍시도 할머니도 더는 슬퍼 보이지 않을테니까.

나는 아직 말을 못한다.

함묵증인 건 한참 후에 내가 말을 잘하게 된 후에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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