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냄새
- 오늘부터 시작된 장마는 2주간 지속될 예정입니다
TV는 늘 그렇듯, 한 번도 미리 맞춘 적 없던 장마의 시작을 선언했다. 장마철이 되자 회사 엘리베이터는 덜 마른빨래냄새로 머리가 어질어질할 지경이다. 그러나 우리 팀에는 그보다 더 어질어질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으니, 바로 집에서 온갖 동물을 키우는 김 씨의 냄새다.
김 씨의 자리에서는 빨래가 덜 마른 냄새에 스며든 소농장이나, 동물원의 낙타 구역에 가면 날법한 냄새들이 났다. 평소에도 그다지 기분 좋은 냄새가 아니었는데, 장마가 시작되며 몇 배나 증폭한 것이다. 사람들은 코를 찡그렸지만 차마 냄새난다고 김 씨에게 말하진 못했다. 그저 서로 눈빛만 교환하며 분노를 나눴다.
문제가 공론화된 건 장마가 시작된 지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사람은 김 씨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아닌 다른 팀 사람들이었다. 회의를 하러 지나가던 길에 있는 김 씨 주변의 자리의 냄새가 너무 심해 일부러 돌아서 간다며, 경영지원팀에 해결을 요청한 것이다. 경영지원팀은 냄새의 근원을 찾아 탐문수사를 시작했다.
몇 번의 수사로 범인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신의 몸에서 냄새가 납니다’라는 사실을 직접 전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머뭇거리며 시간이 지나가는 동안, 냄새는 흡사 곰팡이을 첨가한 듯 더 이상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진화하고 있었다. 이제 김 씨에 대해서 알아보자.
김 씨는 주변인과 교류가 별로 없고 밤늦게까지 일만 하다 퇴근하는 성실한 회사원이다. 크리스마스에도 나와서 일을 하다가 같이 나온 동료가 만들어준 소개팅 자리에서 만난 사람과 바로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다시 휴일 야근을 계속했다. 뛰어난 재능이 있지는 않았지만, 엄청난 끈기로 일을 하는 탓에 납기일을 놓친 적이 없는 믿음직한 인재였다.
김 씨는 사내에 친한사람은 적었고, 박 팀장을 유난히 존경했다. 둘 사이의 관계는 팀장 팀원의 관계라기보다는 흡사 교주와 신도에 가까웠다. 그 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르지 못했다. 박팀장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박팀장의 이야기는 나중에 길게 할 것이다. 간단히 말하자면 회식자리에서 인턴에게 성추행을 해서 징계를 받은 일이 있던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박팀장의 충동적이고 권위적인 성격을 간략하게 전달하겠다. 다시 김 씨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김 씨는 가끔 자신이 키우는 동물들을 주변인에게 자랑했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소수만 알고 있는 그의 반려동물의 목록은 이러했다. 고슴도치, 토끼, 뱀, 개구리 등등 몇 종류가 더 있었다. 이런 이유로 휴식시간에 그는 다양한 사료들을 검색하며 시간을 보냈다. 일할 때와는 달리 즐거워 보였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경영지원팀은 본인의 옷에서 냄새가 난다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김 씨에게 전달했지만 옷의 냄새는 나아지지 않았다. 장마는 이제야 1주일이 지난 시점이었다. 세계화 시대에 다양한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다양한 냄새도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인가? 그저 지구가 허락한 냄새라고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주변인들은 탈취제를 뿌리고 향수도 가져다 놓았지만 점점 더 근본 없는 역한 냄새가 만들어질 뿐이었다. 갈등하던 사람들은 결국, 회사에서 선임이고 김 씨와 친분이 있던 사람이었던 내가 직접 강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나에게는 소정의 간식들이 배달되었다.
“빨래가 좀 잘못된 거 아냐?”
같이 담배를 피우러 올라가면서 이야기를 전했다. 침묵 속에서 이야기를 꺼내면 더 진지하게 들릴 듯해서 계단을 오르는 도중,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말을 전했다. 하지만 뒤에 누군가 시끄럽게 하는 바람에 회심의 문장은 전달되지 않았다.
“응?”
이 타이밍을 놓치면 더 말하기 힘들 것 같아서 빠르게 다시 전달했다.
“아니 빨래가 좀 잘못된 거 같다고!”
간신히 해냈다. 의도치 않게 큰소리로 말하니 얼굴이 조금 화끈거렸다. 잠시 침묵이 있길래 분위기를 만회할 다른 이야기를 꺼내려했다. 그러는 나에 앞서 김 씨는 조용히, 요 근래 경영지원팀에서 냄새난다니, 뭐랬다니 하며 털어놓았다. 나는 놀란 듯 반응했고 그러게 옷 좀 잘 말려 입으라며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더이상 강하게 말하는건 힘들었다.
하지만 어설프게 전달된 말은 효과를 보지 못했고, 냄새는 멈추지 않으며 제갈길을 갔다. 깊어가는 장마로 더욱 진해진 냄새는 더 넓은 범위로 퍼져가며 사람들의 분노는 커져만 갔다. 이제는 차라리 근처 옷가게에서 옷을 사 입혀 와야 한다는 격분한 목소리까지 나왔다. 이제 진짜 어떻게 해야 하나. 냄새와 마음의 무게로 머리는 두배 어지러웠다.
극에 다른 분노로 경영지원팀이 김 씨의 자리를 폐쇄된 구석으로 옮기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을 때, 장마는 갑자기 끝나버렸다. 기상청의 또다시 틀린 예측으로 2주로 예상되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을 3일 앞당겨 마무리했다. 쨍쨍한 날씨는 퀘퀘한 냄새들을 바삭하게 말려냈다. 냄새가 나지 않기 시작되니 사람들은 이 소동을 완전히 없었던 일로 지우기로 했다. 냄새가 난다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마음에 담아두기 쉬운 일이 아니다. 그 미워했던 마음을 지우려는 태도들은 김 씨 자리에 간식들을 채웠다.
평온한 몇 주가 지나고 무더위는 절정으로 가고 있었다. 뉴스에는 다다음주쯤, 장마가 다시 시작될 거라는 예보를 전했다. 우리는 장마가 시작되면 확실해질 그 냄새에 대응하지 못할 것이다. 또다시 분노하고 또다시 미안해질 것이다. 언제나 틀렸던 기상청이 이번에도 틀렸기만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