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울 자리를 찾아 헤매다

영화 <부르탈리스트>를 보고

by 김막스

#들어가며.

오스카 수상작 영화 <부르탈리스트(The Brutalist)>의 주인공 라즐로는 미국으로 이민 온 유대인이자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영화 줄거리를 주인공 라즐로의 입장에서 각색해보았다.



#1.

배 안에서 몇 시간이 흘렀을까. 눈을 감으면 아직도 나치에 잡혔던 시간들이 생생하다. 아내와 조카는 살아있을까? 사람들의 환호성 때문에 잠에서 깼다. 갑판에 나오자 자유의 여신상이 반겨준다. 드디어 도착한 미국. 나는 유럽에서 깨나 잘 나가던 건축가지만, 지금은 다름 아닌 유대계 이민자일뿐. 자유를 찾았다는 격한 감동도 잠시. 이제 어디서 자고 무얼 먹고 살아야하나. 고민이 된다.

거꾸로 뒤집힌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땅을 밟은 라즐로를 반겨준다


사촌 아틸라가 필라델피아에서 가구점을 운영한다고 들었다. 만나보니 왠걸 완전 미국인 다 됐네. 말투하며 행세하며. 비지니스맨이 따로 없다. 얼씨구 게다가 아내의 종교는 카톨릭? 아이고 내일 시나고그(유대인 회당)에 가서 회개할 일이 하나 더 생겼네. 그래도 덕분에 이 낯선 땅에 머리를 누일 곳이 생겼다. 화장실도 없는 단칸방이지만 소중한 내 보금자리다.

사촌 아틸라(좌)와 재회하는 라즐로(우)

#2.

아틸라의 가구점에서 일하던 어느 날. 부자집 도련님이 인테리어 상담을 왔다. 아빠(헤리슨)의 서재를 멋지게 바꿔달라는 것. 기껏 공들여서 멋지게 만들어줬더니, 정작 들이닥친 당사자 헤리슨은 화를 낸다. 해명을 해도 막무가내로 내쫓는다. 돈 한 푼도 못 받고. 그 길로 아틸라와도 틀어지고, 하루 아침에 길바닥에 나앉았다.

헤리슨의 서재를 멋지게 바꾼 아틸라와 라즐로


따르르릉. 아침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다. 여기는 카톨릭 재단(또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노숙인 쉼터. 남녀노소할 것 없이 다닥다닥 붙어잔다. 요즘은 다리를 놓는 막노동을 하고 있다. 헤로인에 중독된 것 같긴하지만 (쿨럭) 그래도 좋은 친구 고든을 만나서 다행이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게 된 라즐로


어느날 헤리슨(서재 수리비 떼먹은 그 부자집 주인놈)이 날 찾아왔다. 어떻게 수소문했는지 내가 유럽에서 잘나갔던 건축가라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리고 미안하단다(돈도 쥐어준다). 헤리슨이 가져온 내 작품 사진들을 보자니. 눈물이 나온다. 아 참 이래뵈도 나 건축가였지. 잠시 잊고 있었던 소중한 내 정체성. 나치의 활보에도 건재한 건물들을 보니. 참 다행이다. 그리고 뿌듯하다. 새삼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다. "이 사진 내가 가져도 되나요?" 두툼한 돈봉투보다 진심 어린 사과보다, 내겐 더 큰 선물이다.

헤리슨이 건내준 자신의 건축물 사진을 보며 복잡한 심정에 쉽싸인 라즐로


#3.

헤리슨이 내게 묻는다. "왜 건축을 하게 됐습니까?" 나는 답한다. "정육면체 만들어버리는 것보다 정육면체를 설명하는 데 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Is there a better description of a cube, than that of its construction?)" 추상의 구체화. 그게 바로 건축이다. 말이 필요 없다. 헤리슨은 내게 일자리를 주었을 뿐 아니라, 아내(에르제벳)와 조카(조피아)가 미국에 넘어오는 일을 도와주었다. 살 곳도 함께.


요즘 아내 에르제벳을 보면 나보다도 더 미국 생활에 적응을 잘하는 것 같다. 영국에서 공부해서 나보다 영어를 더 잘 하는 것은 알았지만, 헤리슨 가족과 편하게 농담도 하고 즐기는 걸 보면. 뭐? 엘리자베스든 다른 이름이든 편하게 불러달라고? 헤리슨에게 미국식 Elizabeth가 아니라 유대식 Erzsébet라고 지적하지는 못할 망정. 나 참.


몇 년이 흘렀을까. 헤리슨이 다시 나를 고용하겠단다. 나는 그의 건축물 설계하고 짓던 와중에 쫓겨났었다. 마을 사람들 모두가 이용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달라는 건 이해한다. 근데 기독교인들의 특별한 장소로 만들어달라고? (나 유대인인거 몰라?) 그래 그것까진 참는다. 잘 되던 공사가 건축물 배달 중 기차사고로 중단되자, 괜히 나한테 화풀이하며 내쫓았잖아. 그런데 이제와서 다시 맡아달라고? 언제 또 쫓겨날 줄 알고 잘 다니는 직장을 그만두나. 하지만 왠지 가야할 것 같다. 브루탈리스트(Brutalist) 양식으로 지은 나만의 건축물. 영원히 변하지 않을, 구체화된 나의 아메리칸드림을 완성해야 한다.

건물 설계도를 보며 설명하고 있는 라즐로

하지만 왜? 스스로에게 묻는다. 유대인인 나는 왜 이 곳 미국에서 버티며 살아가고 있을까. 언제 어디로 또 쫓겨날지 모르는 이민자 신세로. 난 왜 이 건물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나. 이걸 세우면 그리고 유명해지면, 나는 이 사회에서 주류로 받아드려질까?


미국 땅을 밟은 첫 날 본 자유의 여신상이 떠오른다. 갑판에 누운 나에게는 거꾸로 뒤집힌 여신상의 이미지. 미국의 자유는 사실은 그럴싸하게 포장된 자본의 구속이라는 사실을 신이 내게 귀뜸해줬던걸까. 내가 지을 건물에는 거꾸로 된 십자가를 구현할 것이다. 석양이 질 때 드러나는 그 뒤집혀진 상징이 아메리칸 드림이 무얼 놓치고 있는지 모두에게 밝혀줄 것이다.



#나가며.

영화는 모든 면에서 감탄을 자아낸다. 배우의 연기, 카메라 구도, 영화 스토리, 그리고 사운드트랙도 빼놓을 수 없다. 링크를 아래 걸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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