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것
내게 글을 쓰는 행위는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물론 그 반대인 사람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사실, 말과 글은 언어로 관념을 전달하는 도구라는 점에서 같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전혀 다른 언어를 쓰는 것도 아닌데 유독 두 행위의 난이도가 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왜, 글 앞에서 이토록 작아지는 걸까.
출근하자마자 동료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입니다."
지긋지긋한 자리로 향하면서도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미소를 띄워본다.
사무실에서 맞는 이른 아침을 진심으로 좋아할 이는 아마 없겠지.
하지만 우리 모두 그 미소가 관성과 위안 그 사이 어디쯤에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출근과 동시에 퇴근을 꿈꾸면서도, 숨을 고르며 여느 영화 속 멋진 직장인을 떠올려본다.
이따금 내가 멋진 직장인이라는 자기 최면이 성공이라도 하는 날엔 묘한 고양감이 밀려든다.
‘아아, 오늘은 여유롭게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멋지게 일과를 시작해야지.’
하지만 여유로운 커피 한 잔의 환상은 요란한 전화벨 소리에 금세 깨지고 만다.
"안녕하세요, OO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나는 말을 자주, 그리고 많이 한다.
무엇이든 많이 하면 실력이 늘기 마련이다.
그 관계가 꼭 선형적으로 비례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자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그래서 내가 말을 하는 것보다 글 쓰는 걸 어려워 하는걸까?
왜냐면 나는 글쓰기보다 말을 많이 하니까.
만약 누군가 내 말을 그대로 받아 주거나, 혹은 말을 그대로 글로 바꿔주는 기계가 있다면, 글쓰기가 쉬워질까? 거울을 앞에 두고 말을 하며 이를 그대로 받아 적으면, 글을 쉽게 쓸 수 있게 되는 걸까? 반대로, 글 쓰는 걸 더 수월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말보다 글을 더 자주 쓸까?
오늘 했던 말들과 생각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글로 옮겨 적어본다.
어렵다.
아마 이건 아닌가 보다.
말은 휘발된다. 누군가의 머릿속에 잠시 머물다 금세 사라진다.
심지어 청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다.
반응이 안 좋으면 수정한다.
실언이 나오면 고친다.
무엇보다 말은 내 앞에 몇명에게만 전해진다.
만약 내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해야 한다면, 아마 내가 할 말을 글로 정리하겠지.
아아, 알겠다.
내가 왜 글을 쓰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지.
남들에게 나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 두려운가 보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니까.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닐 뿐.
사실 나도 잘 모르겠다.
말과 글엔 모두 '나'라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묻어난다.
묻어난 '나'를보고 얼마나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문제는 그 너머를 꿰뚫어 보는 시선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문제라기보다는 우려에 가깝겠다.
내가 쏟아내어 채운 생각의 연못에 사람들이 들어와 헤엄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헤엄치는 저들 중 아르키메데스가 있으면 어쩌지.
누군가는 그저 수영을 즐기겠지만, 어떤 이는 그곳의 바닥까지 들여다 보며 "유레카!"를 외칠지도 모른다.
그럴 때면 나는 간절히 말하고 싶어진다.
"혹시 무언가를 보았더라도 못 본척해주실 순 없나요. 유레카는 마음속으로만 외쳐주세요."
"여기는 나의 연못이지 당신의 목욕탕이 아니에요"
"혹여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것 같다면 속으로만 간직해주세요. 그것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더더욱요."
내 글을 읽고 공감해주길 바라면서도, 내 밑천까지는 들키고 싶지 않은 이 마음.
이 얼마나 모순적인가.
이런 비겁함이 느껴질수록 글쓰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생각의 굴레에 갇힌다.
누군가 나의 이런 모순마저 눈치채고 미간이 찡그려지는 상상을 해본다.
나의 멈칫거림이 더욱 잦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쓰자.
명쾌한 해답이 떠올라서 그런 건 아니고.
어차피 내 안에 없는 걸 꺼낼 수는 없으니 이런 고민이 무의미하다는, 혹은 솔직해지는 것이 어려운 것 중 제일이라던데, 이런 고민이 내가 꽤 솔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면 조금 대견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구차한 핑계를 대자.
모두를 설득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저 나를 설득하는 데 집중하자.
내가 쓴 글을 나조차 이해하지 못할 바엔, 스스로 납득했다면 곧 넘어가자.
그렇게 열심히, 많이, 즐겁게 쓰자.
말과 글은 도구일 뿐이다.
비유하자면, 열역학 제2법칙처럼 어차피 일말의 왜곡이나 손실 없이 관념을 전달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러니 무엇을 전달할지 정해져 있다면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할 시간에, ‘얼마나 진솔하게 전달할까’를 고민하자.
장인은 도구를 탓하지 않는다고 하던데,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 고민할 시간에, 무엇이든 더 많이 다뤄보자.
언젠가 나의 생각이 왜곡 없이 누군가에게 닿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