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폐천?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
무한한 하늘에 비하면 작디작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이다. 하지만, 경우에 따라 손바닥으로 하늘이 가려지기도 한다.
바로 달이 해를 가려서 일식이 일어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달과 태양의 크기는 대략 400배나 날 정도로 큰 차이를 보이지만, 태양이 달보다 400배나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눈으로 보이는 이 둘의 크기는 마치 같은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각도로 표현하자면 두 천체의 겉보기 각도는 0.5도로, 하늘 전체가 360도니까, 이의 1/720 크기로 동일하게 보인다.
이로 말미암아, 지구와 달과 태양이 일직선을 이루는 시기에, 달이 자기보다 400배나 큰 태양을 완벽하게 가려 개기일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한 뼘 손바닥만으로도 넓디넓은 하늘이 가려지는 원리도 이와 같다. 손바닥을 점점 눈앞으로 가져오다 보면 눈의 시야각 전체에 손바닥이 가득 차며 결국은 하늘이 가려지는 것이다.
결국 거리가 문제인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랴”란 격언은 우리 선조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침이었다.
반면 예술가들, 특히, 3차원의 세상을 2차원으로 담아내는 미술가들은 본질대로 그려서는 눈에 보이는 것과 달라 보인다는 반대의 문제를 두고 오랜 고민을 해 왔다. 달과 태양의 본질적 크기가 400배 차이 난다고 그림에서 400배나 큰 태양을 그려서는 오히려 초현실주의 그림이 되어버리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던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르네상스 시기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 등은 선원근법을 발명하게 된다. 직육면체라는 본질과는 다르게 소실점을 중심으로 기울어진 건축물이 오히려 제대로 된 입체감을 가진 건물로 보인 것이다. 이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가장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최후의 만찬’에 까지 계승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청출어람이라 해야 할지 거인의 어깨 위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선 원근법을 넘어선 새로운 원근법 기법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그의 또 다른 명작 ‘모나리자’에서 나타난 공기 원근법이 바로 그것이다. 신비로운 미소를 띤 모나리자의 뒤로 저 멀리 보이는 신비로운 배경은 조금은 흐릿한 윤곽을 보이고 있다. 멀리 있을수록 공기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점을 이용한 새로운 시각의 원근법인 것이다.
때로는 눈속임에 속지 않을 통찰이 필요하기도 하고, 또 때로는 본질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풀어 보여줘야 하기도 하다.
결국 시각과 본질 모두를 이해해야만 화사로운 이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