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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늦기 전에
Mar 08. 2024
요양병원에 가족을 보낸 당신에게
지나고 나서야 해 줄 수 있는 말
혹시 가족이 요양병원에 있나요?
아니면 요양병원에 보내야 하는 상황인가요?
힘드시죠?
아마도 마음이 너무 아플 거예요.
얼마나 아프실지 가늠도 되지 않습니다.
먼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아마 요양병원에 보내야 하는 가족은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겠죠. 얼마나 불효를 저지르는 것 같을지, 과연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맞는 것일지 고민하고 계신 분이 있으실 것 같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씁니다.
저도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습니다. 벌써 10년도 더 지난 일이네요.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낼 때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지금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나오기 쉽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핑계일지 몰라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긴 했습니다. 제 나이는 겨우 스물셋에 불과했고, 저희 할머니는 치매에 걸렸거든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저는 군입대를 앞두고 있었습니다. 국가에서 하는 요양원을 찾아봤지만 당시에는 치매를 인정받는 과정이 쉽지 않아서 포기해 버렸습니다. 결국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보내야 했습니다.
제 경험상 요양병원에 보내는 일은 너무나 괴롭고 힘듭니다. 그리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족을 요양병원에 보내고 나면 가슴 아픈 일을 몇 번은 겪어야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에 준비를 해두세요.
먼저, 가족의 손발이 결박당해 있는 모습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저희 할머니는 치매에 걸리셔서 처음 요양병원에 적응하시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꾸만 집에 갈 거라며 침대 밑으로 내려오려고 했고, 제지하는 간호사들에게 물건을 던지기도 했대요. 그래서 안전 상의 이유로 침대에 손이 결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어느 날,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묶여있는 손을 보고 얼마나 통곡을 했는지 모릅니다. 말 그대로 죽을죄를 지은 기분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해야 할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자꾸만 제게 '집에 가자'라고 했습니다. 마음으로는 지금 당장이라도 집에 모시고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번 할머니께 거짓말을 했습니다.
"할머니 다 나으면 가요"
"한 달만 있다가 가요"
물론 어쩔 수 없는 거짓말이었지만, 지킬 수 없는 거짓말을 했다는 죄책감은 꽤 오랜 기간 마음에 남았습니다.
세 번째는 가족을 살릴 권리를 대신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습니다.
할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신 지 2년 정도 지났을 무렵에 요양병원에서 문서 한 장을 주며 서명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DNR동의서였습니다. 말 그대로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 데 동의한다는 문서였습니다. 고령이기에 심폐소생술을 하더라도 생존가능성이 높지 않고, 오히려 그 행위 자체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할머니를 살릴 권리를 제 마음대로 포기한다는 생각에 가슴은 찢어졌습니다.
네 번째는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 할 수 있습니다.
잔인하지만 요양병원에 보내진 이상 가족의 상태가 더 이상 좋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저 매일매일 나빠질 뿐입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느 날 급격히 나빠지기도 하고 서서히 나빠지기도 합니다. 매일매일 생명의 빛이 사그라드는 할머니를 뵙는 일은 이 세상 어느 무엇보다도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만큼 가슴을 졸이며 살아야 합니다.
제게 할머니는 세상 유일한 제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너무 사랑했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실까 봐 노심초사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요양병원에서 전화만 오면 눈물을 한 바가지 쏟고서야 전화를 받았습니다. 실제로는 병실을 바꾸는 것 따위의 아무 일도 아닌 일이 대부분이었지만요. 10년을 겪었는데도 요양병원에서 전화만 오면 손발이 떨려왔습니다. 매번 너무 두려웠습니다.
혹시나 요양병원을 보내야 할 가족들이 있거나 요양병원을 알아보고 있다면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도 해드릴게요. 아마 요양병원 선택에도 많은 고민이 있으실 겁니다. 저는 사실 급하게 할머니를 모시느라 선택할 여유가 없었지만, 중간에 요양병원이 재정난으로 문을 닫으면서 병원을 옮기게 되며 여러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요양병원이라고 다 같지는 않다는 사실을요.
먼저, 무조건 미리 한 번 가보세요. 시설이 화려한지, 좋은 의사가 있는지, 검색하면 잘 나오는지 따위는 요양병원 선택에 있어 결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무조건 한 번은 먼저 가셔서 병실을 둘러보세요.
그리고 한 병실에 환자가 너무 많다면 다른 병원을 알아보세요. 할머니가 옮기신 병원은 이전과 달리 좁은데 환자들이 빼곡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명의 보조인이 케어해야 하는 환자가 너무 많았고,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할머니도 결국 욕창이 생기고서야 그 사실을 알고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했습니다.
또, 악취가 심하게 나는 병동은 피하세요. 악취가 많이 난다는 자체가 위와 같은 이유로 케어가 잘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저귀를 갈지 않았든, 목욕 서비스가 제대로 되지 않았든 무언가 잘 돌아가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 곳은 절대 피하세요.
더 중요한 건 종사자들이 인간적으로 대해 주는 곳을 가세요. 처음 할머니를 모셨던 요양병원에 종사자분들은 참 인간적인 분들이셨습니다. 보호자인 제가 가면 엄청 반가워해주시고, 할머니의 상태를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요양병원이 문을 닫아서 할머니를 이송할 때 할머니와 제게 이제 다시는 못 본다며 잘 가라고 눈물지으며 인사를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옮긴 병원에 종사자들은 간호사실에서 자신들끼리 이야기하느라 환자나 보호자는 뒷전이었습니다. 그저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처럼 보였어요. 요양병원에서 중요한 건 의사도, 시설도 아닌 요양보호사님들을 비롯한 종사자님들이세요. 그러니 종사자들이 인간적인 곳으로 모시는 게 좋습니다. 조금만 이야기해보면 티가 날 거예요.
마지막으로 자주 찾아뵐 수 있는 곳으로 모시세요. 아마 자주 다니다 보면 힘이 들 거예요. 저도 대중교통을 이용해 40분 이상 가야 하는 거리에 할머니를 모셨는데, 너무 피곤하고 지친 주말은 이런저런 핑계로 가지 않고는 했습니다. 근데 그 죄책감이 일주일씩 가더라고요. 부디 가까운 곳, 오다가다 찾아뵐 수 있는 곳에 모셔서 자주 뵈러 가세요. 괜히 핑계가 생기지 않도록, 후회하지 않도록요.
이렇게 아무리 구구절절 말씀드려도 위로가 되지는 않겠지만,
마지막으로 할머니를 10년 동안 요양병원에 모시면서 제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을 당신에게 해드리고 싶어요.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지금 가족이 어떤 상황이든, 요양병원에 보내야 하든 말든, 당신 잘못이 아니에요. 그냥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에요. 이 말 한마디가 왜 그렇게 듣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부디 죄책감 가지지 마시고 자주 찾아뵙고 가족의 마지막 가는 길을 잘 배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