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글
어떤 날
세상의 모든 중력이 나에게로 쏟아져
짓누르는 듯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날이면 고개를 툭 떨구기만 해도
눈물이 사정없이 쏟아질 것만 같아
일부러 목에 더 힘을 주고 꼿꼿이 버티려 애쓴다.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할수록
스스로가 금세 바닥나버리는 기분이다.
뭐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세상에 그저 존재하는 일만으로도
이렇게나 고될까, 힘든 걸까-
아득해지는 그런 날.
숨만 쉬어도 삶이 고갈되는 느낌이 드는 날.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 그런 날.
세상에 나 혼자 버려진 것 같은 그런 날.
그럴 때 나를 참 눈물짓게 한 글이 있다.
유독 우울과 좌절감, 무기력의 밀도가 높은 날
이 글을 보면 마음속에 다시 힘이 생긴다.
위녕,
언젠가 모퉁이를 돌며
앞날이 캄캄하다고 느낄 때,
세상의 모든 문들이 네 앞에서만
셔터를 내리고 있다고 느껴질 때,
모두 지정된 좌석표를 들고 있는데
너 혼자 임시 대기자 줄에 서있다고 느껴질 때,
언뜻 네가 보았던 모든 희망과 믿음이
실은 환영이 아니었나 의심될 때,
너의 어린 시절 운동회 날을 생각해.
그때 목이 터져라 너를 부르고 있었던
엄마의 목소리를.
네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야.
엄마가 아니라면,
신 혹은 절대자라고 이름을 바꾸어
부르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겠지.
너는 아직 젊고 많은 날들이 남아 있단다.
그것을 믿어라.
거기에 스며 있는 천사들의 속삭임과
세상 모든 엄마 아빠의 응원 소리와
절대자의 따뜻한 시선을 잊지 말아라.
네가 달리고 있을 때에도,
설사 네가 멈추어 울고 있을 때에도
나는 너를 응원할 거야
공지영 -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이 글을 읽자마자 초등학교 운동회 날이 생각났다.
달리기를 잘 못하던 나는
단거리 달리기를 앞두고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엄청 긴장을 했더랬지.
4-5명씩 출발선에 서서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데
그게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특히 잘 달리는 친구들과 같은 조가 되면
심장이 터질 정도로 두근대면서
시작도 전에 그렇게 도망가고 싶었다.
무서웠다.
경기가 시작되면 나는 잔뜩 상기된 얼굴로
목 안이 마를 정도로 힘껏 달린다.
쿵쾅 거리는 심장 박동이 온몸을 울릴 때쯤
귓가에 날카롭고 선명하게 꽂히는 소리.
“힘내, 달려! 조금만 더! 할 수 있어!!”
밖에서는 큰 소리 안 내는 고상한 성격의 엄마가
나보다 더 있는 힘껏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멀리서도 엄마의 모습은 바로 알아보듯
엄마의 응원은 그 많은 관중의 함성 속에서도
유독 내 귀에 더 크게 들렸다.
어떤 날은
운 좋게 손등에 보라색 도장이 찍히기도
어떤 날은
겨우 꼴등으로 들어와 창피함에 고개 숙인 채
텅 빈 손등을 자꾸 문지르기도 했지만
늘 도착점에서는 나보다 기뻐하고
못해도 그저 잘했다 응원해주던 엄마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다 커버린 나는 어느 순간
그렇게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엄마의 음성을, 엄마의 모습을 잊어버렸지만
이 글을 읽을 때면
어느 출발선에 서있든
그와 비슷한 힘으로, 그와 같은 마음으로
언제나 그 자리에서
나를 응원하는 존재가 있구나 싶다.
유독 힘든 하루를 보낸 당신에게,
어떤 출발선에서
어떤 긴장되는 시작을 앞둔 당신에게,
감당해야 할 일이 너무 무거워
생이 아득하게만 느껴지는 당신에게,
그냥 어떤 이유로든 너무 지쳐버린 당신에게,
당신을 위해 목이 터져라 응원하던
그 누군가를 떠올려보세요.
지금은 그 음성을, 그 모습을 잊었을지 모르지만
당신은 그 어느 순간에도
절대 혼자가 아니었을 겁니다.
지금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