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일 작물 경작과 클래식 음악

대체 둘이 무슨 상관이길래?

by Joon Yoon 연준

불과 몇 개의 대기업으로 이뤄진 ‘다국적 농업 기업’이 전 세계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결정한다. 당신이 먹는 음식도 (심지어 내가 먹는 음식도) 그들이 결정한다. 그리고 대형 농업 기업들은 단일 작물 경작을 사랑하기 때문에 식량 공급의 안정성을 크게 위협한다. 식품 활동가 Dena Rash Guzman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우리가 먹는 농작물은 거의 모두 단일 작물 경작으로 생산되며, 우리가 코스트코 같은 대형 슈퍼마켓에서 만나는 상품도 죄다 단일 작물이다. 하지만 단일 작물은 농사가 아니다. 그것은 환경을 해치는 노천 채굴과 같다. 폭력적인 행동이다. 우리가 먹는 고기는 공장식 축사에서 생산되며, 우유도 대부분 그런 축사에서 공급된다. 과일과 채소도 광활한 땅에서 재배되며 환경에 입히는 피해는 고려되지 않는다.


단일 작물 경작은 화학 비료와 살충제 같은 화학 물질에 많이 의존한다.


농부들은 해마다 끝없이 넓은 땅 전체에 똑같은 작물을 재배한다. 대부분은 상업용 곡물이지만 딸기와 양조용 포도 같은 작물도 더러 있다. 토종 식물들은 잡초 취급을 받아 멸종되고, 화학 성분의 살충제는 이로운 곤충들까지 죽인다. 건강한 생태계의 중요한 부분인 균류가 소멸되고 있다. 단일 작물 재배는 땅에서 필요한 것을 얻기만 하고 땅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마틴 코언의 음식에 대한 거의 모든 생각 중 295-296 페이지. (옮긴이 안진이)



단일 작물 (Monocropping​)

매년 같은 밭에서 한 종류의 작물만 기르는 것을 말한다.


농업에 관해 전혀 모르는 피아니스트에게 이 농작법이 눈에 띈다. “클래식” 음악이라는 하나의 작물만 길러온 나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클래식(고전) 음악의 다양성은 끝이 없다.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면 클래식 음악 교육 시스템이다. 클래식 음악 교육은 서양 음악사와 이론에 기반됐다. 바흐, 하이든, 모짜르트, 베토벤 등 독일(프루시아 왕국)/오스트리아 작곡가들의 작품이 성경과 같이 숭배된다. 클래식 음악 하면 떠오르는 리스트, 베르디, 쇼팽, 드뷔시, 라벨 등의 비독일/오스트리아 작곡가들도 물론 그 기반을 이루고 있다. 편리성을 위해 미국의 줄리아드, 예일, 영국의 길드홀, 그리고 독일의 한스 아이슬러 음대에서 배웠던 음악이론 책들을 생각하면 독일/오스트리아계의 음악 이론가들의 교과서가 생각난다. 예를 들자면 피아니스트 Murray Perahia​가 신봉하는 Heinrich Schenker​가 떠오른다.


학창 시절 그럭저럭 괜찮은 학생이었다. 그러나 음악이론은 중요한 것 같으면서도 매번 너무 지루했다. 연주와는 거리가 먼 듯 느껴졌다. 그래도 이것이 답 이겠지라 생각하며 악보에 충실하고 학교에서 배워 온 방식(Heinrich Schenker의 분석법​도 그중 하나다)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그것의 목적이 무엇인지 항상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그 깊이를 즐기지 못하는 내가 부족한 것인가? 그런 생각에 휩싸여 자책했었다. 나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에 대해선 고민을 해보지 않았다. 음악의 밭에서 나온 단일 서양 음악 교육 작물과 같다는 느낌이 든다. 공장식 축사를 지나 수많은 소떼 중 한 마리인 느낌이다. Pink Floyd의 Another Brick in the Wall​(수 많은 벽돌 중 하나)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물론, 이것도 나의 편향이다. Heinrich Schenker의 분석법과 그에 따른 연주법을 사랑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에게서 10대와 20대 시절을 배워왔고, 감사하다. 이제 새로운 것을 갈구하는 것 일뿐.)


서양 음악 분석법에 따라 악보에 충실해야 함은 화학 비료와 살충제 같은 화학 물질 같이 느껴진다. 이 세상에는 광활히 다양한 음악과 문화가 있지만 고전 음악이 최고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는 서양 이론이라는 화학 비료를 이용해야 한다. 근데 그래야만 할까? 팝, 락, 펑크, 재즈, 세계 음악(World Music)등 클래식 음악이 아닌 것들은 질이 떨어지는 음악인가? 아니, 그렇지 않다. 그저 다를 뿐. 음악 장르는 하나의 community(공동체)일 뿐 이라고 한 재즈 피아니스트 Vijay Iyer​의 말이 생각난다. 하나의 공동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공동체와 공존할 수 있는 이가 될 수 있을까?


위에 언급된 마틴 코언의 책 중 298페이지의 구절이 생각난다.


단일 작물 재배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보여 주는 최고의(최악의) 사례는 19세기 유럽에서 발생한 아일랜드의 ‘감자 대기근’이다. 1845년과 1852년 사이에 아일랜드 인구는 25퍼센트 가까이 감소했다. 그 직접적인 원인은 질병과 기근과 집단 이민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감자의 병충해가 있었다. 감자가 아메리카 대륙에서 처음 전해진 이후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줄곧 한 가지 품종만 재배했는데, 바로 그 품종이 지독한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모든 감자가 동일한 품종이었으므로 병충해의 확산을 막을 길이 없었다. 자연스러운 해결책은 몇 가지 작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회전시키면서 재배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업화된 농장에서는 자연스럽게 그런 방법이 채택되지 않는다.


오랜 해외 생활을 잠시 접어두고 군 입대를 위해 귀국해 있다. 제대 후 무엇을 할지 고민이 깊다. 하나는 확실하다. 음악계의 ‘감자 대기근’에 일조하고 싶지 않다. 몇 가지 ‘작물’을 일정한 간격으로 회전시키면서 재배할 수 있을까? 공동체를 넘나드는 음악을 탐구하고 가르치는 것에서 시작하면 될까? 기업화된 농장 속에서도 그런 이상적인 것을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 농장을 벗어나야만 할까.


끝으로 칙 코리아의 모짜르트 연주에 영감을 받아 녹음한 혹자의 모짜르트 소나타 K.332 느린 악장 연주와 작년부터 음악을 연주자로서 새로이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져다준 재즈 피아니스트 Barry Harris의 “재즈 이론” 영상을 공유하고 싶다. 이것도 이론이지만, 개인적으로 호기심을 유발하고, 지루하지 않았다.

2022년 2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