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의 남성, 도쿄 지하철의 침묵이 깨지다

통계가 드러낸 불편한 진실과 성별의 경계를 넘는 안전의 과제

by 상식살이

도쿄도에서 실시한 최근 설문조사 결과는 우리 사회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여성 응답자의 54.3%, 남성 응답자의 15.1%가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과거 조사와 비교해 남녀 모두 피해 경험 비율이 눈에 띄게 높아진 수치다. 수치의 상승은 범죄의 급증이라기보다 성폭력을 인식하는 사회적 기준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시사한다.


발언을 가로막던 사회적 낙인


일본 대중교통 내 성추행은 오랫동안 여성만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남성 피해자는 존재했으나 스스로를 피해자로 규정하거나 외부로 알리는 일이 불가능에 가까웠다. 사실을 말해도 믿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신, 조롱거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약한 존재로 비칠 수 있다는 부담이 신고를 가로막는 견고한 장벽이었다.


변화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시작되었다. 유명 산업 내부의 장기적 성적 학대가 폭로되며 일본 사회 전반에 피해를 말하는 행위에 대한 저항감이 낮아졌다. 대중교통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발생하는 접촉이 명백하고 의도적인 폭력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남성 피해자에게까지 확장되었다.


세계적인 추세와 가시화의 도구들


성별을 가리지 않는 성추행 문제는 일본에 국한되지 않는다. 영국 런던 교통국은 지하철 내 성추행 신고 중 상당수가 남성이라는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프랑스 파리는 성별 구분 없는 신고 캠페인을 전개해 숨어있던 사례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피해 경험을 익명으로 공유하는 온라인 플랫폼의 확산은 통계 시스템 밖의 현실을 가시화하는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가해자 성별에 대한 인식은 피해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복잡하게 얽혀있다. 임상 연구는 가해자의 다수가 남성이라는 점을 지목한다. 일부 피해자가 가해자를 여성으로 인식하거나 특정하지 못하는 현상은 심리적 충격을 완화하려는 무의식적 방어 기제로 설명되기도 한다. 성폭력은 단순한 개인 간의 충돌이 아닌, 사회적 낙인과 인식 구조 속에서 경험되는 복합적인 문제다.


모두를 위한 안전의 재정의


대중교통 내 성폭력은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보편적 위험이다. 피해를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환경 마련이 우선이다. 신고 이후의 2차 피해를 방지하는 제도적 장치와 성별 고정관념을 타파하는 교육이 동시에 작동해야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일상적인 공간에서의 안전은 개인의 주의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공동체가 어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고통을 존중하는지가 곧 그 사회의 안전 수준을 결정한다. 통계 수치의 상승은 그동안 말해지지 못했던 수많은 경험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는 긍정적인 징후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용기가 모두를 위한 안전의 출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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