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잠재력과 실전 양산 능력의 충돌, 동북아 무기 시장의 거대한 재편
전쟁의 먹구름이 짙어지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이 60년 동안 굳게 닫았던 방산 수출의 빗장을 풀기 시작했다. 1967년 이후 유지해 온 ‘무기 수출 3원칙’의 틀을 사실상 해체하며 살상 무기 수출이 가능한 국가로 체질을 개선하는 중이다. 구조나 수송 같은 비살상 장비를 넘어 전투기와 미사일 같은 공격용 무기까지 세계 시장에 내놓겠다는 선언은 동북아시아 방산 지형을 흔드는 거대한 변수다.
일본 정치권은 미·일 정상회담 이전에 제도 정비를 마무리하겠다는 구체적인 일정표를 제시했다. 안보 정책의 대전환을 선포하며 방위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가 명확하다. 오랜 기간 자국 자위대 수요에만 의존해 온 폐쇄적 생태계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의 직접적인 경쟁자로 뛰어드는 모양새다.
일본 방위산업의 정점에는 미쓰비시 중공업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부터 항공기와 함정을 자체 설계했던 기술적 뿌리는 미국과의 안보 협력을 통해 첨단 부품과 체계 통합 기술로 진화했다. 전투기, 헬리콥터, 지대공 미사일, 잠수함에 이르는 폭넓은 포트폴리오는 한국의 주요 방산 기업들과 직접적인 경쟁 구도를 형성한다.
항공기 분야에서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과, 미사일과 엔진 영역에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및 LIG넥스원과 맞붙는다. 수상함 부문은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일본 업체들과 수주전을 벌여야 할 대상이다. 최근 호주가 발주한 대형 호위함 사업에서 일본 업체가 선정된 사례는 일본이 단순한 기술 보유국을 넘어 실제 계약을 따낼 수 있는 실전 경쟁자로 부상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2024년 자료에 따르면 세계 무기 수출 시장에서 일본의 비중은 0.1%에 불과하다. 3.3%를 기록한 한국과 비교하면 수치상의 격차는 뚜렷하다. 일본은 지난 20년간 내수 의존도가 높았던 탓에 100여 개 업체가 산업을 떠나는 등 생산 기반이 위축된 상태다. 대량 양산 체계와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 본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도 일본이 넘어야 할 산이다.
반면 한국은 지정학적 특수성 덕분에 상시 대비 태세를 유지하며 무기 체계의 설계부터 양산, 군수 지원까지 효율적인 시스템을 구축했다. 폴란드와의 대규모 계약이나 중동 지역으로의 방공 체계 수출은 빠른 납기와 검증된 성능, 가격 경쟁력이 결합된 결과물이다. 현지 생산과 기술 이전을 포함한 유연한 금융 패키지 제공 능력은 한국 기업들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독보적인 자산이다.
일본은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고급 기술을 축적해 왔다. 차세대 전투기 공동 개발이나 미사일 방어 체계 통합 경험은 향후 수출 시장에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미국산 부품 의존도가 높은 구조는 제3국 수출 시 미국의 승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제약이 따른다. 독자적인 수출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공급망 자립도와 외교적 조율 능력이 동시에 요구된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 세계 방위비 지출은 급증하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국방비를 GDP의 2% 이상으로 증액하고 있으며 인도·태평양 지역의 군비 경쟁도 심화되는 추세다. 이러한 시장 환경 변화는 일본에게는 산업 재편의 기회를, 한국에게는 격차를 유지해야 하는 시험대를 제공한다.
방위산업은 단순한 상업적 거래를 넘어 외교와 안보 전략이 결합된 고차방정식이다. 무기 수출은 국가 간 동맹을 강화하는 수단이자 국제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지렛대 역할을 한다. 일본의 정책 전환은 경제적 이익 창출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의 역할 확대를 염두에 둔 선택이다. 향후 한국과 일본은 특정 영역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면서도 안보적 필요에 따라 공동 개발이나 공급망 협력을 병행하는 복합적인 관계로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
향후 10년은 아시아 방산 시장의 판도가 결정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일본이 산업 생태계를 얼마나 빠르게 복원할지, 한국이 누적된 수출 경험을 바탕으로 어떤 차별화된 전략을 선보일지에 따라 승패가 갈린다. 기술력과 생산성, 외교력이 총동원되는 이 새로운 게임에서 진정한 승자는 단순한 무기 판매를 넘어 지속 가능한 안보 파트너십을 제안하는 국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