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금 계좌번호가 지워버린 애도의 본질을 다시 찾는 법
"마음이라 쓰고 돈이라 읽는다"는 표현은 요즘 장례 문화의 민낯을 예리하게 찌른다. 모바일 부고장에 적힌 계좌번호로 부조금을 송금하는 행위는 애도보다 금융 거래에 가까워졌다. 관계의 깊이와 상관없이 정해진 금액을 이체하는 풍경이 익숙해진 시대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죽음을 단절이 아닌 관계로 재해석하려는 시도가 눈에 띈다. 가정사역 단체 하이패밀리를 이끄는 송길원 목사는 자신을 '엔딩 플래너'라 명명한다. 임종 관리를 넘어 삶의 마지막을 설계한다는 의미다. 그는 죽음을 끝내는 'Ending'이 아니라 다음 세대로 이어주는 'Anding'이라 정의한다. 죽음은 관계의 정리를 통해 공동체로 건너가는 과정이라는 시각이다.
그는 1990년대 초 미국 교회의 체계적인 가정 상담 프로그램을 목격한 뒤 한국에서 금기시되던 이혼 상담, 부모 교육, 죽음학을 공론화해 왔다. 삶의 전 과정에서 관계를 다루어 온 통찰은 자연스럽게 장례 문화 개선으로 이어졌다.
경기도 양평의 한 공간에서는 기존의 틀을 깬 '작은 장례식'이 열린다. 빈소에는 일률적인 국화꽃 장식 대신 고인의 손때 묻은 안경, 즐겨 읽던 책, 직접 그린 그림이 놓인다. 조문객은 줄을 서서 형식적인 절만 하고 떠나지 않는다. 메모지에 고인을 기억하는 문장을 정성껏 적어 유가족에게 전달한다. 유가족은 이 문장들을 읽으며 깊은 위로를 얻는다.
육개장과 수육으로 상징되던 음식 문화도 간소화됐다. 간단한 다과만 준비하며 식사가 필요한 조문객에게는 인근 식당을 안내한다. 삼베 수의 대신 고인이 평소 아끼던 옷을 입혀 드리고, 탄소 배출을 줄이는 한지 관과 유골함을 사용한다. 화장 후 수목장으로 마무리되는 이 과정은 죽음을 한층 경건하고 친환경적으로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사후 장례의 대안으로 '엔딩 파티(생전 장례식)'가 부상하고 있다. 의식이 또렷할 때 지인들을 초대해 감사와 사과를 전하는 자리다. 배우 박정자가 강릉 해변에서 연 생전 장례식이나 탤런트 신애라 부친의 엔딩 파티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닌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로 받아들이는 축제 같은 작별 방식이다.
생전 유품 정리 또한 중요한 흐름이다. "죽고 나서 주는 것은 선물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평생 아껴온 자개농이나 패물을 자녀에게 미리 나누어 주는 부모들이 늘고 있다. 이는 자신의 마침표를 스스로 찍겠다는 주체적인 의지의 표현이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슈카쓰(終活, 종활)'가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다. 고령화 사회의 필연적인 결과로, 장례 방식 결정과 유언장 작성이 보편화됐다. 대형 장례 기업들은 소규모 가족장을 기본 상품으로 내세우며 비용을 낮추고 절차를 간소화하는 추세다.
한국의 화장률이 90%를 넘어서면서 수목장과 해양장 같은 자연장 선호도 급증했다. MZ세대는 장례를 소비의 관점에서 재해석하며 과도한 허례허식을 거부한다. SNS에는 소박한 가족장 후기나 온라인 추모 공간을 꾸민 사례가 활발히 공유된다. 코로나19 시기 경험한 비대면 장례는 장례 형식의 유연성을 한층 넓히는 계기가 됐다.
의료 기술의 발달로 임종 장소가 병원으로 옮겨지면서 죽음의 자기 결정권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다. 연명의료결정법 시행 이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 건수는 매년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삶의 마지막을 기계에 의존하지 않고 존엄하게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이다.
장례는 결국 남은 사람들을 위한 시간이다. 형식을 바꾼다고 본질이 달라지지는 않으나, 정교하게 설계된 형식은 슬픔을 극복하는 마음을 돕는다. 고인의 사진 앞에서 웃으며 추억을 나누는 시간, 살아 있을 때 건네는 진심 어린 감사, 미리 나누어 준 유품 한 점이 헝클어진 관계를 정리해 준다.
준비하지 않는다고 해서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장례를 타인의 영역으로 밀어두지 않고 삶의 일부로 끌어안는 태도가 요구된다. 엔딩은 끝이 아니라 연결이라는 믿음이 확산될 때 우리 사회의 성숙도 또한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