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롱을 축제로 바꾼 지혜, 지방도시의 생존법

김밥천국에서 충주맨까지, 콘텐츠가 바꾼 지역의 운명

by 상식살이

영화 한 편의 흥행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파동을 일으킨다. 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관객을 끌어모으자 여러 지방자치단체가 기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배경과 연결된 지역은 물론 연관성이 낮은 도시들까지 각자의 방식으로 이 흐름에 올라탔다. 단순한 홍보를 넘어 하나의 참여형 놀이처럼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름의 재발견, 언어유희가 만든 축제


과거의 지역 홍보가 정제된 보도자료와 카드 뉴스에 의존했다면 지금은 대중의 시선을 끄는 '반응 속도'가 생명이다. 콘텐츠의 완성도보다 공감 요소가 중요해진 환경에서 김천시의 사례는 독보적이다. '김밥천국'이라는 단어에서 착안해 김밥축제를 기획한 것은 신의 한 수로 평가받는다. 도시 이름이 가진 고정관념을 역이용해 실제 방문객을 끌어모으는 콘텐츠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대중문화와의 결합도 정교해지고 있다. 특정 아이돌 팬덤의 이름과 지명이 같은 점을 관광 자원으로 연결하는 시도는 치밀한 전략적 판단의 결과다. 지역의 역사나 자연환경을 설명하기보다 대중이 이미 호감을 느끼는 요소를 지역 경험으로 전환하는 방식이 한층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행정의 틀을 깨는 공무원 인플루언서


콘텐츠를 만드는 주체도 달라졌다. 공무원이 직접 카메라 앞에서 망가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상황극과 패러디로 정책을 설명하는 방식은 기존 행정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 충주시의 '충주맨'은 이러한 파격이 어떻게 전국적인 인지도로 이어지는지 증명했다. 이후 여러 지자체에서 유사한 시도가 쏟아졌고 공공기관 간의 댓글 협업 같은 상호작용도 자연스러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캐릭터를 활용한 브랜딩도 가속화된다. 진주시의 '하모', 부산의 '부기', 용인시의 '조아용' 같은 마스코트는 이제 독립적인 지식재산권(IP)으로 기능한다. 대전의 '꿈돌이'는 단순한 행사용 인형을 넘어 실제 상품 매출로 이어지는 경제적 자산이 되었다. 일본 구마모토현의 '쿠마몬'이 지역 브랜드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것처럼 캐릭터는 경험을 파는 강력한 수단이 된다.


생존을 위한 처절한 '관심 경쟁'


이러한 변화의 이면에는 소멸 위기에 직면한 지방 도시들의 절박함이 깔려 있다. 인구 감소와 산업 기반 약화는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관광객 유치와 기업 투자 확보를 위해 홍보는 단순한 이미지 관리를 넘어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핵심 병기가 되었다. 현장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정책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무관심을 가장 큰 위험 요소로 규정한 지자체들은 'B급 감성'과 파격을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인다. 짧은 주목도를 위한 경쟁이 과열되면서 콘텐츠의 깊이가 얕아진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기획과 제작을 동시에 맡는 담당 공무원들의 업무 부담과 단기 화제성에만 치중하는 흐름은 해결해야 할 숙제다.


도시의 표정이 사람을 부른다


지자체 홍보는 이제 하나의 거대한 콘텐츠 산업처럼 움직인다. 도시가 스스로를 어떻게 표현하고 대중과 소통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이동과 선택이 결정된다. 눈길을 끄는 형식은 시대에 따라 변하겠지만 그 중심에는 언제나 사람의 관심이 자리한다. 관심을 끄는 기술과 전달해야 할 행정 가치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은 앞으로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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