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나를 위해 쓰고 있는가?

by 이가든

하루 종일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인 날이었다.

아침부터 밤까지. 까이고, 까여 처리해야 하는 일과 해결해야 하는 일 사이에서 녹초가 되어 온 날이었다. 사실 이런 날이 하루 이틀은 아니지만 아들의 전화도 받지 못하고 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돌아온 그런 날이었던 것 같다. 무슨 일이었는지, 왜 욕을 먹었는지, 사실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기억이 나질 않는 거 보면 그게 아마도 대단한 잘못이 아니었을 것이 분명하며(일을 하며 잘못이라니… 초등학생도 아닌데) 그런 일은 굳이 기억하지 못할 만큼 빈번하게 일어나기도 한다.


억울했다. 새삼스럽게 나의 하루가. 나의 시간이. 오늘 나는 한 시간 아니 10분조차 나를 위해 한 것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자 진짜 억울했다. 그날은 나를 위한 아무것도 하지 않았았다. (아마도 점심도 거른 것 같다)


10년 전쯤이었다.

11시 출근 새벽 2/3시 퇴근을 정말 밥먹듯이 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떤 몸과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던 건지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내가 잘 그려지지가 않는다. 심지어 그때 나는 돌이 지난 아들까지 있었다. 그냥 그렇게 일을 무식하게 하던 때였다.

해도 해도 일이 쌓여있었고, 일이 쌓여있지 않은 날에는 만들어서 일을 하고 매일매일 버려지는 아이디어를 내고, 그런데 또 그러다가 얻어걸린 아이디어라는 게 나오고, 마치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이 진리인 것처럼 정답인 것처럼 야근을 안 하면 무능한 것처럼 일을 하던 때였다.

그때 나는 영혼이 없이 아이디어를 내고 레이아웃을 잡고 일을 했다. 무능한 사람처럼 보이기 싫어서, 여기서 포기하면 도태되는 것 같아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 그게 맞는 건지도 옳은 건지도 모른 채. 그래서 내 아이디어에는 진짜 하고 싶은 인사이트나 아이디어 같은 건 없었고 (마음속으론 오늘 몇 시에 집에 갈 수 있을지만을 궁금해 한 채) 계속 나의 무능함을 마주하며, 그렇지 않은 척 회사를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집으로 돌아가는 새벽 택시가 강변북로를 질주했다. 기사 아저씨가 1분이라도 나를 집으로 빨리 데려다주려는 건 감사했지만, 몇 번의 차선을 이리저리 변경하며 카메라를 피해 몇 번이고 브레이크를 밝아대는 차 안에서 안전벨트를 붙잡으며 생각했다. 이렇게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가 무언가를 들이박고 그 차가 뒤집히고 그 안에서 내가 죽으면 나 진짜 억울할 것 같아.

그날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그런 생각을 하며 택시를 타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왔고, 나는 아직 잘 살아있다. (아마도 우리 아버님의 하나님을 위한 간절한, 우리 엄마의 부처님을 위한 정성스러운 기도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금 52시간 제도가 생겨나고 우리는 그렇게 야근을 하지도 않고 그렇게 야근을 시키면, 고발을 당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시간을 적게 쓰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미션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디어는 근데 정말로 엉덩이 싸움이다. 시간을 적게 쓰고 좋은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는 건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인데, 나도 그때처럼 야근을 시키지도 않으며 야근을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또 자책한다. 그래서 내가 만드는 광고가 아이디어가 구린가? 우리가 그때처럼 목숨을 걸고 아이디어를 내지 않아서? 그때의 CD님이 옳았던 건인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가? 또다시 나의 무능력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목숨을 걸고 일할만큼 가치 있는 일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광고는. (자신의 목숨을 매번 걸고 다른 사람을 구하러 불길에 뛰어드는 소방관 같은 사람들 빼고 말이다)

어느 누구도 일 때문에 목숨을 걸지도 잃지도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나는 일 따위를 위해 목숨을 걸지 않는다. 절대로. 그런데, 내 하루는 일을 위해 다 쓰고 있다. (세상에서 유일하게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진 게 시간인데) 목숨만 걸지 않았을 뿐이다. 결국 전부를 다 주고는 있었다.

우리 하루에 꼭 하나씩은 날 위한 무언가를 했으면 좋겠다. 몇 줄의 책을 읽던, 1분간 플랭크를 하던, 한 끼와 맘먹는 가격의 딸기타르트를 사 먹던, 하루에 꼭 하나씩 날 위한 무언가를 하자.

그렇게 지친 날,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를 보거나, 무한정 쇼츠를 넘기거나, 아이쇼핑을 하다가 계획에도 없던 걸 결재하거나, 공허하게 넷플릭스 버튼을 돌리는 일 말고.


나를 위한 무언가를 단 10분이라도. 딱 한 가지 만이라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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