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떠올리면
먼저 마음을 스치는 것은 고요함이 아니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버티는 숨소리 같은 것이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몇 해 동안
어머니의 삶은 쉼 없이 뒤바뀌었다.
누나와 형을 따라 마산으로 나갔다가,
다시 우리를 데리고 오고,
우리가 또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던 시간.
마산의 낯선 방에서 몇 달을 함께 지냈던 날들도 있었고,
군북으로 내려와 다시 한 식구가 되던 날들도 있었다.
그 와중에 어머니는 몸을 앓아
두 달을 누워 지내야 했고,
어머니가 겨우 일어서자
이번에는 아버지가 자리에 눕게 되었다.
그해 겨울,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고향 가까운 이모님 댁으로 가
몇 달을 머물렀고,
결국 그곳에서 아버지를 떠나보냈다.
22년의 부부 생활이 그렇게 끝났다.
그때 어머니의 나이는 겨우 마흔이었다.
그 모든 날들 속에서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아이들의 마음속 불안을 먼저 읽어내느라
자신의 심장은 늘 뒤로 밀려나 있었다.
아버지를 보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봄날,
학교 뒷동산으로 올라갔던 기억이 있다.
햇살은 따뜻했지만
바람만은 아직 차가웠다.
어머니는 나와 여동생을 데리고
큰 소나무 그늘 아래 조용히 앉았다.
잠시 웃기도 하고,
잠시 말없이 바람을 들었다.
그때 나는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할까’
어린 마음에 혼자 고민을 쌓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마 그 마음을
내 눈빛에서 먼저 읽으셨을 것이다.
바람이 멎던 순간,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는 포기하면 안 된다.”
그 말은
아버지를 잃고 삶이 흔들리던 한 가족에게
어머니가 마지막 힘을 짜내어 건넨
하나의 기둥 같은 말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날 어머니는
잠시나마 바람을 쐬고 싶은 한 여성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조차
자식들의 앞날이
자신의 슬픔보다 먼저였다.
어머니의 삶은 그렇게,
말하지 못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긴 숨 같은 시간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