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치료자도 흔들릴 때가 있다
상담실에 앉아 있는 사람은 내담자만이 아니다. 내담자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 너머에는 ‘평가자’로서의 나, ‘치료자’로서의 나, 그리고 때로는 ‘공감하는 한 인간’으로서의 내가 함께 존재한다.
나는 정신건강임상심리사로 일하며, 중독과 범죄심리 평가, 상담치료를 수행한다. 내담자의 감정을 해석하고 마음의 구조를 분해하고 그것을 언어로 정리하는 일은 내 일상의 일부다.
숫자와 문장으로 감정을 설명하고, 비언어적 표정과 몸짓 속에서 무의식을 포착한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너무 익숙해졌다. 익숙함은 내게 능숙함을 가져다주었고, 동시에 무뎌짐도 함께 데려왔다. 하지만 문득, 그 익숙함의 균열 속에서 나는 흔들린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감정이 나를 덮칠 때가 있다. 내담자의 이야기가 아닌, 그 이야기를 듣고 있는 ‘나’의 감정이 먼저 앞설 때. 이 일이 고통스러울 만큼 의미 있고, 감정적으로 몰입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전문가이기 이전에, 얼마나 솔직한 인간이었는가?”
익숙함이라는 가면 아래 정신과 병원, 경찰청 진술녹화실, 중독 회복 클리닉, 군 병원 상담실, 민간 심리상담센터 등 나는 수많은 공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왔다. 때로는 처절했고 때로는 무표정했으며 때로는 연극처럼 과장되기도 했다. 하지만, 형태가 어떠하든 그 안에는 감정이 있고 나는 그 감정을 읽어야 한다.
공황장애, 외상후 스트레스, 분노, 우울, 죄책감 등 이러한 감정들은 낯설지 않다. 그것들은 단지 ‘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있는 것들이다.
한번은, 청소년 내담자가 있었다. 부모의 기대와 통제 속에서 우울과 무기력을 반복하던 아이였다. 상담실에서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손끝을 만지작거리는 그 작고 초조한 행동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나 역시 학창 시절, 늘 좋은 아이였고, 착한 학생이었지만 내 안에는 설명되지 않는 분노와 고립감이 자라고 있었다. 그 아이를 바라보며, 나는 그때의 나를 함께 떠올렸다.
나는 상담자였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같은 감정을 겪었던 한 사람’이었다.
객관화된 언어 속, 주관의 파편들
심리검사는 과학적 절차이다. 검사를 실시하고 반응을 기록하고 점수를 산출하고 프로파일을 분석한다. 나는 평가자의 입장에서 매뉴얼에 따라 판단한다. 그러나, 늘 그 과정이 그렇게 냉정하지는 않다.
몇 해 전, 한 중년 남성의 법정심리평가를 맡았다. 그는 가정폭력 가해 혐의로 수감되어 있었고 법원의 의뢰로 심리검사를 진행하게 되었다. 그는 검사 내내 방어적이었고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했다. 하지만 로르샤흐 검사에서 그가 말했다.
“여기 두 사람이 서로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다치지 않으려는 것처럼요.”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너무도 인간적이었기 때문에,, 그의 폭력성 너머에는 ‘애착’이 있었다. 어쩌면 그는 폭력을 통해서라도 관계를 붙잡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판단과 해석 사이, 나는 잠시 흔들렸다.
이후 보고서를 작성하며 나는 멈칫했다.
“이 문장이, 정말 이 사람을 설명할 수 있을까?”
보고서의 마지막 문장을 쓰는 일은 언제나 가장 어렵다. 한 문장 안에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이 담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해석이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이 한 사람의 치료 여부를 결정하기도 하며 수감이나, 평생토록 정신장애를 남기기도 한다. 평가자는 평가받지 않는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가장 날카로운 자기 성찰을 요구받는 자리다.
사례 1: 중독 재활 클리닉에서의 흔들림
얼마 전, 알코올 중독 재활 클리닉에서 만난 40대 남성이 떠오른다. 그는 여러 차례 금주에 실패하고 가족과의 관계도 극도로 단절된 상태였다. 그날 그는 상담 내내 울먹이며 말했다.
“술을 끊고 싶은데, 혼자서는 너무 무섭고 외로워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내 마음 깊숙이 파고들었다. 나는 중독 현장에 오래 있었기에 ‘의존과 회복’의 순환고리를 익히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단지 ‘중독자’를 바라보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나 역시 개인적인 상실과 외로움을 경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상담이 끝난 후에도 그 감정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마다 그와 나누었던 대화를 되새겼고, 때로는 눈물이 났다. ‘치료자가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절감했다.
그 흔들림 덕분에 나는 그에게 더 진심으로 다가갈 수 있었고, 그의 회복 과정에 함께 머무를 수 있었다.
사례 2: 군 병원에서 만난 PTSD 환자
군 병원에서 복무 중인 장병 한 명이 PTSD 진단을 받았다. 선임으로 하여금 군 생활 중 겪은 극심한 외상 경험 때문에 그는 종종 악몽과 과민 반응에 시달렸다. 상담실에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대신 침묵과 굳은 표정으로 일관했다. 나는 그의 말보다 표정, 손의 떨림, 그리고 미세한 눈동자 움직임에 집중했다. 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흔들렸다. 나도 군 생활 중 겪었던 외상과 두려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누르려 애쓰던 그 장병과 내 과거가 겹쳐졌다.
상담 후 나는 그를 어떻게 도울지 고민하면서도 내 감정에 솔직해지려 노력했다. ‘치료자도 상처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였을 때, 오히려 그는 더 깊은 신뢰를 보였다.
흔들리는 감정이 알려주는 것들...
나는 흔들릴 때마다 자문한다.
“이 흔들림은 부적절한 것인가? 아니면 인간적인가?”
지금껏 배워온 심리학은 내게 ‘전문가의 거리두기’를 가르쳤지만, 나는 때로 그 거리를 좁히는 것이 진짜 공감이라고 느낀다. 감정이입이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것 없이 이루어지는 상담은 메마른 보고서와 다르지 않다.
흔들림은 부정해야 할 결함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 나는 전문가이자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다.
흔들림을 받아들이는 힘~
흔들리지 않는 치료자는 없다. 치료자가 감정을 통제한다고 해서 감정이 사라지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룰지를 아는 것이 치료자에게 더 중요한 능력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상담실에서,, 진술 분석을 하며,, 또는 심리평가보고서를 쓰며. 그러나 그 흔들림 덕분에 나는 내담자의 감정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나는 오늘도 다시 자리에 앉는다. 전문가로서, 그리고 사람으로서. 흔들리는 마음이 나를 이 자리에 있게 만든다.
✒️ 작가의 메모
흔들림은 내 약점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진심이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다. 흔들릴 수 있는 감정이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공감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 다음 화 예고
“진술은 언제나 진실일까?”
거짓과 진실 사이, 심리분석가의 눈으로 보는 진술의 심리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