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유능한 바보라는 자책

자기비난과 수치심의 심리

by 흔들리는 전문가

지훈의 책상 위에는 지난달 ‘핵심 인재’로 선정되며 받은 크리스탈 상패가 놓여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투명한 상패를 스치며 반짝였다. 누군가에겐 성취의 증표였겠지만, 지훈에게 그것은 심문등처럼 느껴졌다. 사람들의 칭찬이 들릴수록, 그의 내면에서는 언제나 같은 목소리가 고막을 긁었다.


“속이고 있는 거야. 넌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잖아.”


지훈에게 유능함은 기쁨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 사회에서 추방당하지 않기 위해 매번 갱신해야 하는 생존 자격증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 사소한 실수조차 낙인이 되던 환경 속에서 그는 배웠다. 잘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규칙을. 그 결과 성취는 축제가 아니라, 잠시 수치심을 마비시키는 진통제가 되었다.

하지만 약효는 짧았다. 프로젝트를 성공시켜도 안도감은 금세 사라졌고, 그 자리를 채우는 결론은 늘 같았다.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이야. 다음엔 반드시 들통날 거야.”

지하철 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볼 때면, 그 유리 너머에는 여전히 여덟 살 옥상 난간 위에서 떨고 있는 아이의 눈동자가 겹쳐 보였다. 지훈이 견디는 고통의 핵심은 죄책감이 아니라 수치심이었다.

죄책감이 “내가 한 행동이 잘못됐다”는 신호라면, 수치심은 “나는 잘못된 존재다”라는 판결에 가깝다. 수치심은 자아를 소리 없이 잠식한다. 회의실에서 겪은 셧다운 역시 단순한 실수의 당혹감이 아니었다. 자신의 결함이 모두에게 드러났다는 감각, 사회적 무대에서 벌거벗겨진 듯한 공포였다.


이때 지훈의 뇌가 선택한 방어는 자기비난이었다. 타인이 때리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더 세게 때리는 방식. “역시 넌 안 돼.” 이 가혹한 목소리는 조언자의 탈을 쓰고 나타났지만, 칼끝은 언제나 지훈 자신을 향했다. 그는 이 자기 공격이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 믿었다. 예측 가능한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지훈의 고통을 증폭시키는 또 하나의 필터는 자기중심적 왜곡이었다. 팀장의 한숨은 나에 대한 실망이 되고, 멀리서 들리는 웃음소리는 나를 비웃는 소리로 변한다. 모든 상황이 자신을 심문하는 장면으로 재편된다. 그러나 그 밑바탕에는 통제감이라는 환상이 있다. 전부 내 탓이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더 완벽해지면 막을 수 있다’는 착각이 생긴다. 지훈은 진실보다 통제를 택했다.


이 악순환은 이렇게 반복된다.
실수의 가능성 감지 → 수치심 폭발 → 완벽주의 가동 → 과부하 → 동결 → 자기비난 강화.


이 회로를 끊는 열쇠는 더 유능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불완전함을 허용하는 데 있다.

“나는 실수할 수 있다.”
“모두를 만족시킬 필요는 없다.”


이 문장은 지훈에게 위협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처음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얼어붙어 있던 신경계에는 미세한 온기가 스며든다. 수치심은 어둠에서 자라고, 빛에서 약해진다.


지훈은 더 이상 스스로를 유능한 바보라 부르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흔들릴 것이다. 회의실에서 다시 말이 막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제 그는 자신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는 불완전한 인간이다. 그리고 그래도 괜찮다.”


그 말은 도피가 아니라 존재의 승인이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공격해야 했던 오래된 전략을 내려놓는 순간. 바로 그 지점에서, 지훈의 회복은 시작된다.


이 글은 『뇌의 배신』 Part 1의 기록입니다. Part 1 전문은 유페이퍼 무료 공개본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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