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 중독의 언어: 반복되는 행동에 숨겨진 감정의 메시지
중독은 단순히 끊지 못하는 습관이 아니다. 그것은 말로 표현되지 못한 감정의 반복, 감정의 언어다. 알코올, 니코틴, 게임, 쇼핑, 음식, 관계… 대상이 무엇이든 중독은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이며, 자기조절이 무너진 감정의 언어화다.
중독을 다룬 상담 장면은 대체로 비슷한 흐름을 보인다. 상담자는 “왜 그걸 반복했는지” 묻고, 내담자는 “그냥요. 멈추고 싶었는데 안 됐어요”라고 말한다. 이 간극은 의지력이나 습관의 문제가 아니다. 감정의 언어를 읽지 못하면, 중독은 결코 해석되지 않는다.
한 30대 남성 내담자는 매일 밤, 의미 없는 야식 폭식을 반복했다. 건강에도, 체중에도 해로웠지만 그가 멈추지 못한 이유는 ‘감정’이었다. “늦은 밤, 혼자 있으면 공허하고 답답해서 무언가를 먹어야 좀 살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먹는 것이 문제 같지만, 실은 감정을 달래는 방식이었다. 그는 자신이 우울하거나 불안하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니, 표현할 언어가 없었다. 감정이 말이 되지 못할 때, 행동은 더욱 반복된다.
게임에 중독된 중학생 내담자는 늘 ‘짜증이 많다’는 지적을 받았다. 아침이면 학교에 늦고, 수업 중 졸거나 집중하지 못했으며, 집에서는 부모와의 대화가 거의 없었다. 하루 종일 게임만 했다.
하지만 심리검사 결과에서는 예상 외의 반응이 나왔다. 정보처리 시도가 과도하고 관계와 애착 욕구가 매우 높은 상태로 나타났다. 그는 내면적으로 관계에 굶주려 있었지만, 정서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몰랐다. 대신 그는 ‘게임 속 캐릭터’를 통해 자신을 투사했다. “게임에서는요, 내가 나를 증명할 수 있거든요. 인정도 받고, 팀원도 있고…”
게임은 단지 도피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식이었다. 이처럼 중독은 감정을 감춘 게 아니라, 감정을 드러내는 ‘왜곡된 언어’일 수 있다.
중독자들은 종종 자신이 중독되었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것이 무엇과 관련 있는지를 모른다. 이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감정 단어의 부족 : “기분이 나빠요”, “그냥 싫어요”와 같은 말 외에는 자신의 상태를 세분화할 수 없다.
회피적 대처가 많다 : 감정이 올라올 때 정면으로 마주하기보다는 도망치거나 다른 것으로 덮는다.
감정을 신체화하거나 행동화한다 : 불면, 폭식, 분노폭발 등 신체와 행동으로 감정이 나타난다.
이러한 특성은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감정조절 기능이 미성숙하거나 손상된 상태라는 심리학적 근거를 가진다.
많은 사람들은 중독을 의지력의 문제로 여긴다. 그러나 그것은 일종의 생존 방식이다.
한 40대 알코올 중독 남성 내담자는 말했다. “술 마시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나인 것 같아요.” 그에게 있어 술은 현실에서 도피가 아니라 ‘자기를 확인하는’ 도구였다. 심리검사 결과에서 그는 자신의 감정을 인지하거나 언어화하지 못하고, 본능적 충동에 의해 반응하는 특성이 강했다. 중독은 그런 사람에게 유일한 감정표현 수단이자 존재의 확인 방식일 수 있다.
중독을 가진 내담자를 만날 때, 나는 늘 한 가지를 먼저 묻는다.
“그 행동을 할 때 어떤 감정이 들었나요?” 이 질문에 처음부터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신 “그냥요”, “습관이에요”라는 말이 돌아온다. 하지만 이 ‘그냥’이라는 말 안에는 수많은 감정이 뭉쳐 있다. 불안, 고립감, 자존감 저하, 죄책감, 혹은 의미 상실.
중독은 그 자체로 진단명 이전에, 감정의 단서이다. 반복된다는 것은 ‘말해지지 못한 감정’이 계속 고장 난 신호처럼 울려대는 것이다.
중독을 가진 사람을 바라볼 때, 그 행동을 끊으라고 말하기 전에 묻고 싶다. “당신은 지금, 무슨 감정을 말하고 있나요?” 그것이 중독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중독은 실패가 아니다. 감정을 말하지 못한 사람들이 내놓은, 절박한 말투일 뿐이다.
� 다음 화 예고
9화 – ‘남겨진 시간’의 심리학
죽음, 이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상실을 감정으로 살아낸다는 것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