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cked Problems
우리가 다루는 문제들 중에는 애초에 정답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의 감정이 얽혀 있고,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겹쳐 있으며, 하나를 풀면 또 다른 매듭이 생겨나는 종류의 문제들입니다. Jon Kolko는 이런 문제들을 ‘위키드 프로블럼(wicked problem)’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문제 앞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해결책을 바로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다시 바라보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이 말이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품을 만들고, 사용자를 관찰하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 숨겨진 욕구를 파악하려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이 말의 의미가 실무에서 얼마나 현실적인지 자연스럽게 깨닫게 됩니다.
“문제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우리는 흔히 문제를 외부에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문제는 해석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에 가깝습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어떤 사람은 그것을 정보의 문제로 보고, 다른 사람은 신뢰의 문제로 해석합니다. 동일한 데이터라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문제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제정의란 결국 어떤 관점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이 선택은 단순한 표현의 차원을 넘어서, 우리가 무엇을 우선시하고 무엇을 문제의 본질로 삼을지를 규정합니다. 관점이 달라지면 우리가 보게 되는 지점도 달라지고, 자연스럽게 이후의 해결 방향 역시 완전히 다른 길로 흘러갑니다.
“인사이트는 단순히 눈앞의 행동을 기록하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의 동기와 신념을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사용자가 어떤 말을 했는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이 왜 나왔는지, 그 행동 뒤에 어떤 믿음과 욕구가 작동하고 있는지입니다. 때로는 인터뷰를 여러 번 진행해도 “아무것도 안 보인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데이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아직 우리가 그 데이터를 바라볼 관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인사이트는 많은 자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자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해석은 사유가 충분히 깊어질 때 비로소 모습을 드러냅니다.
“프로토타입의 목적은 문제를 더 깊이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는 데 있다.”
실무에서 프로토타입은 흔히 ‘아이디어를 검증하는 과정’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보면 우리가 놓쳤던 지점이 드러납니다. 사용자가 실제로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순간에 멈칫하는지,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요소가 무엇이었는지가 보다 선명하게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실패도 중요한 실마리가 됩니다. 실패를 통해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문제가 오히려 더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프로토타이핑은 답을 확정하는 절차라기보다, 문제의 핵심에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드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디자인은 불확실성 속에서 더 나은 결정을 쌓아가는 일이다.”
처음부터 완벽한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부족한 정보와 미완성의 아이디어 속에서 선택해야 하고, 확신이 서지 않아도 결정을 내려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작은 결정 하나가 새로운 단서를 만들고, 그 단서가 또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면서 문제의 형태가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선택과 질문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어떤 방향이 더 적절한지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결국 디자인은 완벽함을 목표로 한 번에 답을 찾는 일이 아니라,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도 조금 더 나은 결정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문제정의가 곧 디자인이다.”
디자인에서 제안하는 해결책은 언제나 변동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느냐는 디자인의 방향 전체를 결정합니다. 문제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우리가 바라보는 핵심이 달라지고, 선택하는 방식 또한 크게 달라집니다. 그래서 문제정의는 단순한 출발점이 아니라 디자인의 전략 그 자체에 가깝습니다. 어떤 문제를 풀겠다고 규정하는 순간, 해결의 범위와 우선순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같은 상황도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전혀 다른 기회로 보이듯, 문제를 다시 정의하는 순간 해결의 가능성도 함께 확장됩니다. 좋은 해결은 결국 좋은 문제정의에서 시작됩니다.
디자인 문제는 단순히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사용자가 실제로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선택하고 반응하는지를 이해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화하기 어렵습니다. 사용자의 행동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계속 달라지고, 비슷해 보이는 행동도 그 이유가 전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이처럼 변수가 많은 환경에서는 해결책보다 문제를 어떻게 규정하느냐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됩니다. 문제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접근 방식과 우선순위, 해결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없다는 사실은 문제를 재구성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할 수 있는 여지를 넓혀줍니다.
그래서 디자인 과정에서는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용자가 반복해서 겪는 불편이나 드러나지 않는 제약, 선택을 좌우하는 요인들을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문제의 구조를 다시 정리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정의의 재구성은 디자인을 단순한 해결 도출 단계를 넘어, 문제 자체를 더 정확하게 이해하려는 탐구 과정으로 확장시킵니다. 정답을 찾기보다 먼저,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과정에서 디자인은 더 나은 선택과 방향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참고문헌
Kolko, Jon. (2012).
Wicked Problems: Problems Worth Solv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