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라고 말해도 괜찮아요
1학년 담임은 깜빡이 없이 치고 들어오는 학생들의 수많은 행동에서 바람직한 행동은 칭찬해 장려하고, 부정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규칙을 상기시켜 줄여나가는 고독한 심판이다. 교실 상황이 두더지 게임이라면 1학년 담임은 별 생각 없이 올라온 두더지를 붙잡고, 여기서 올라오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납득시키려는 순간 다른 두더지가 뿅 하고 나오는 반복을 하교할 때까지 반복하는 사람이다. 아이들이 하교한 오후에는 흐물해진 뇌가 다시 모양을 잡을 때까지 멍을 때려야만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복직하기 전에는 1학년을 하리라 생각지도 못했지만, 핸드폰 사용 시간을 줄이는 삶의 방식이 이 일을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핸드폰 없이 워치만 가지고 있어도 전화 통화가 되는 셀룰러 워치를 구입하고, 워치 요금제를 사용할 수 있는 알뜰폰으로 통신사도 바꾼게 결정적이었다. 핸드폰이 꼭 필요한 경우와 주말에만 핸드폰을 들고 다니고, 나머지는 서랍 속에 넣어둔 채로 다니니 외부 자극에 좀 더 여유가 생긴 느낌이다. 핸드폰 없이도 급한 전화와 카톡은 오니까 핸드폰 사용 시간이 주당 3시간 내외로 획기적으로 줄었고, 교실 밖 풍경을 보면서 뇌가 쉬는 시간도 늘었다.
정신 없는 업무 환경에 지치지 않는 체력과 정신력을 갖기 위해 출근길에 학교 근처 수영장에 들려 1회 평균 1km, 한 달이면 10km 정도 수영을 했다. 수영하러 놀러 가는 길에 가까운 학교도 들려서 일도 하고 온다고 생각하면 출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에너지를 쓰고 간 덕분인지 학생들에게 좀 더 너그럽고, 예민해지기 쉬운 환경에서도 에너지를 이미 많이 써서 화도 잘 안 났다.
오전 수영을 하지 못할 때는 출퇴근길에 자전거를 탔다. 일주일에 평균 3회, 10km씩 타니 1학기 누적 400km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했다. 7월이 되어 어쩔 수 없이 지하철 출근으로 바꾸고 추석이 지나서야 다시 자출을 시작했지만 자전거 역시 내가 운동한 김에 일도 한다는 새로운 연결 고리를 만드는데 효과적이었다.
기후 위기로 추석까지 반팔을 입었지만 계절은 변했고, 꽃이 피는 강변을 달리며 탁 트인 길을 달리면 비좁은 지하철에서 설 자리를 지키느라 들어갔던 어깨힘은 빠졌다. 나만 마음 상하는 거친 운전자도 만날 일 없이 내 다리의 힘으로 속도를 조절하다 보면 삶의 속도도 조절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거의 매번 출근 시간 직전에 교문을 통과했지만 내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느낌에 첫 부장의 시간도 예상만큼 나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영어 선생님께서 공부로 지친 우리들에게 옆에 있는 친구나 사소한 것에서 학교에 올 이유를 찾아보라고 권유하셨던 게 무엇이었는지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야 조금은 알 것 같다.
P.S. 2023년 7월 유명을 달리하신 서이초 선생님을 기억하며 부족한 첫 책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23년 7월 22일 종각에서 열린 첫 집회에 나갔던 마음으로 학교라는 직장에서 허락된 제 시간을 제 옆 그리고 멀리 떨어진 약자를 위해 마음은 포개고, 글은 써보겠습니다.
- 24년 10월 27일, 이태원 참사 2주기 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