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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비서 Oct 23. 2021

정이 사라졌다

‘정’과 나, 우리는 고등학생 티를 막 벗어나 성인이 된 기쁨을 맞이한 시기 대학 1학년 때 만난 사이다. 공통점이라고는 그저 같은 학교 학생이라는 거 외에 전공도 성격도 외모도 달랐다. 그럼에도 친구가 될 인연이었는지, 같은 동아리에 봉사활동에 그리고 학교에서 하는 각종 행사에서 마주치다 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친구가 돼 있었다.      


“야 내가 재밌는 거 보여줄까?”

“뭔데”     


야심한 밤, 사람 많은 대학로 한복판에서 정은 차 뒤꽁무니를 열심히 밀어댔다. 이미 막걸리 1병과 소주 1병을 원샷한 뒤였다. 온 힘을 다해 차를 밀어대는 정의 기세에 진짜 차가 움직일 것만 같았다.       


“미쳤다 정말”        


결과는? 물어보나 마나 당연히 정의 완벽한 패배였다. 사이드브레이크까지 걸려있는 육중한 차를 어떻게 사람이 밀어 내겠는가. 이런 장난을 즐기는 그녀를 나는 악마라 불렸다. 악마라 그런지 가끔 종잡을 수 없는 면이 있었는데 어느 날은 공무원이 되겠다고 갑자기 휴학하고 지방의 촌 동네로 숨어버려서 연락이 끊기기도 했다.      

정은 나의 첫 해외여행을 함께 한 사이기도 하다. 상하이로 여행을 갔는데, 중국에 왔으니 짝퉁 하나는 사가야 한다는 생각에 무작정 버스를 타고 짝퉁으로 유명한 마을에 갔다. 중심가와는 전혀 다른 시골 풍경에 갑자기 긴장이 됐다.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자면 쫄았다. 당시 중국은 영어로 물어보면, 나보다 더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던 시절이었고 만에 하나 잘못하면 이대로 중국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증폭됐다.

        

“야야 뭐라고 말 좀 해봐”

“아 정신없어”

“니하오. 여기 어떻게 가요? 짝퉁. 짝퉁”      


손짓과 한국어, 중국어가 적당히 뒤섞인 이상한 언어였다.      


“짝퉁?”      


운이 좋게도 그 중국인은 낯선 이방인에게서 나온 짝퉁이라는 단어를 캐치했다. 친절하지만 친절하지 않은 듯한 성조로 길을 설명해주었고, 나는 한국어로 추임새까지 넣으면서 알아들으려고 무진장 애를 썼다. 그 옆에서 정은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중에 정에게 들은 말로는 그 때 내 표정이 엄청 비장했단다.      


대학 때부터 수없이 밀려드는 인생의 경험을 함께 한 우리는 서울로 상경한 이후에도 그 인연을 이어졌다. 졸업하자마자 내가 서울로 먼저 올라왔고, 2년 후에 정이 왔다. 우리는 신대방 이웃사촌이 됐고, 정 집은 내 원룸과 5분 거리에 있었다. 정은 서울에 연고도 없는데 내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했다.      


사회 초년시절, 싸구려 맥주 집에 앉아 정의 연애와 회사일, 그리고 나의 방송 작가 생활을 안주 삼아 밤을 불태웠다. 가까운 거리에 친구가 산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급하게 전동 드라이버를 빌릴 수도 있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미역국을 끓여 주기도 하니까. 가끔은 서로의 집에서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잠을 잘 수도 있었다. 4년 정도를 이웃사촌으로 지내던 정은 복잡한 서울이 싫다며 일산으로 이사를 갔다. 이후엔 서로의 스케줄이 맞을 때 한 번씩 만나서 카페도 가고 한강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뭘 먹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정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니가 스케줄이 빈다. 저녁이나 먹자”

“나 쉬는 건 어떻게 알고 귀신이네. 콜!”

“그럼 김포공항에서 보자”       


그 무렵 나는 양천구에서 거주하던 때라 갑작스럽게 약속을 잡더라도 무리한 요구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약속 상대가 절친 정이라면? 하던 일을 멈추고라도 가는 게 맞다.      


우리는 김포공항의 오래된 순대국밥집에서 만났고 곁눈질로 TV도 가끔 보면서 정치 이야기도 하고 서로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수다는 계속 이어졌고 6개월 만에 만남이라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대화 도중 대뜸 정이 내게 말했다.       


“작가들은 예민하잖아”

“뭐?”

“작가들이 예민한 편이잖아”

“왜 그렇게 생각해?”


나는 순간 그러지 않아도 될 일에 정의 말처럼 예민해졌고 정은 즉시 하던 말을 멈추었다.      


“작가에 대해서 잘 모르잖아.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건 아니지”     




정의 말에 나는 갑자기 서운해졌다. 정은 갑자기 왜 이런 말을 하는 걸까. 게다가 그녀는 몇 년 전 내가 하는 방송 프로그램에 방청객으로 나온 일이 있었다. 부모님도 친구들도 직업의 존재만 알지 내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던 시절이라, 연예인도 보고 알바비까지 챙겨 준다는 내 말에 정은 방청객 알바를 무조건 하겠다고 했다.      


“야야 나는 너처럼 일하라고 하면 못 하겠어”

“응? 왜?”

“일단 정신이 너무 없어 보이고. 친구 얼굴 좀 보러 갔더니 말 걸 틈도 없더라.

좀 멋있긴 했어. 근데 나는 못해”      


정은 박봉의 월급을 버텨가며 작가로 일할 수 있는 원동력에 대해 물었고 그럴 때마다 내 대답은 항상 같았다.        

“재밌어”     





정의 말을 끊는 단호한 내 태도에 긴 침묵이 이어졌다. 1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싸운 적이 없었는데 오늘은 참 이상한 일이었다. 다시 정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그동안 너한테 연락 안 했었잖아”

“그랬어?”

“응. 왜 그런 줄 알아?”

“당연히 모르지”

“내가 말했었는데...”      


의지는 했지만 시시콜콜 전화해서 말하는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기엔 둘 다 너무 바빠서 말이 조금이라도 길어질라치면, ‘미안 나중에 연락할게’가 디폴트 값이었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갑자기 빨라졌다. 정은 나에게 무언가를 더 말하려고 했지만 참는 게 눈에 보였다.      


“불만이 있으면 그때그때 말하면 되잖아”

“내가 얘기했잖아”

“말했다고? 언제?”

“하... 됐다”      


화장실에 다녀온다며 정이 자리를 피했다. 날이 점점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이내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고, 바람 탓에 나무들이 휘청대고 있었다. 내 상황과 오늘의 날씨가 우중충하니 잘 어울렸다. 정이 돌아와 커피를 마실 때까지도 우리는 말이 없었다. 그 어색함은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이어졌고 정이 차로 집에 바래다 주겠다는 호의도 거절했다.     


그 이후로 정과 나는 어떤 연락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시간의 힘은 강했다. 정이 좋아했던 전통찻잔이나 전통차를 볼 때마다 나는 정을 생각했고, 둘이 갔던 포차를 볼 때도 그랬다. 괜찮아지면 연락하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정은 칼같이 카카오톡에서 나를 차단했다. 냉정한 면이 있다고는 생각했는데 나와의 관계도 쓰레기 버리듯 치워버렸다. 수많은 사람들과 만났고, 거쳐 갔고 다들 그렇게 산다고 하지 않나. 평생 이어질 것 같았던 끈이 사라진 지금, 이 아쉬움은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모르겠다. 그녀와의 신호등에 언제부터 빨간불이 들어왔는지 그녀가 보낸 노란불은 무엇이었는지 가늠도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이럴 때 어떻게 할까.


그렇게 1년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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