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디두아는 모르는

설국열차의 꼬리칸 탑승객이 아닌 권력의 주체를 유지하기 위한 설계자

by 구십구 퍼센트 E

선택이 주는 권력. 이 달콤한 권력을 누리기 위해 고객은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고, 나는 그 권력이 유효해 보이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무대를 제공한다. 럭셔리 매장에 발을 들이는 순간, 고객은 단순히 물건을 구매하러 온 소비자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를 스스로 정의하고 통치하는 주인공으로 변모한다. 그들에게 제품은 그 통치력을 증명할 우아한 수단일 뿐이다.

최근 화제를 모은 드라마 <레이디두아>를 보고 있으면 실소가 터져 나온다. 화면 속 럭셔리 업계는 마치 로스 상품을 사비로 변제하며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낡은 관습에 박제된 공간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시스템 안에서 전문성을 존중받는 설계자들이다. 회사는 직원의 실수를 현금으로 환전하는 가혹한 지주가 아니며, 우리는 설국열차의 꼬리칸 탑승객처럼 생존을 구걸하며 하루를 버티지 않는다. 우리는 이 열차의 쾌적한 운행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선택의 의식’을 책임지는 당당한 운영진이다. 물론 화장실도 가까운 곳으로 언제든지 갈 수 있다.

이 설계자들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고객에게 단 하나의 정답을 서둘러 내미는 것이 아니라, 무한에 가까운 ‘과정’을 선사하는 것이다. 고객의 눈앞에 수십 가지의 옵션을 펼쳐놓고, 미세하게 채도가 다른 컬러 스와치와 각기 다른 무게감의 장식들을 끊임없이 대령하는 행위는 결코 그들을 번거롭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무수히 많은 옵션 사이에서 고객이 직접 참여하여, 자신만의 영혼과 닮은 ‘옥석’을 가려내게 하기 위한 정교한 무대 장치다. 스스로 하나하나 만져보고, 거울에 비춰보고, 고심 끝에 수많은 ‘석(石)’들을 탈락시켰을 때 마지막에 남은 ‘옥(玉)’의 가치는 비로소 완성된다. 이 치열하고도 고귀한 선택의 과정이야말로 고객이 지불한 비용에 포함된 가장 값비싼 경험이다.

하지만 때때로 세일즈의 온도가 과하게 달궈져 고객의 권력을 침범하는 비극이 발생하곤 한다. 어느 브랜드의 사원이 고객이 방문하기도 전에 날짜를 지정하고, 심지어 입어볼 옷까지 완벽하게 정해두었다는 에피소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객님을 위해 미리 빼두었습니다”라는 호의는 언뜻 달콤해 보이지만, 럭셔리의 문법으로는 고객에게서 ‘발견의 설렘’과 ‘주도적으로 옥석을 가릴 권력’을 강탈한 무례함에 가깝다. 드라마 속 비현실적인 고통보다 더 현실적이고 치명적인 문제는 바로 이런 ‘여백 없는 통제’다.

결국 세일즈의 온도는 고객이 스스로 왕관을 쓸 수 있도록 적절한 거리를 유지할 때 가장 우아하게 빛난다. 우리는 정답을 대령하지 않는다. 고객이 수많은 옵션이라는 숲을 유영하며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설계자여야 한다.

드라마 작가들은 결코 모를 진짜 럭셔리의 온도는 바로 그 ‘존중된 여백’에서 피어난다. 그리고 그 여백을 지탱하는 힘은, 시스템 안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무대를 설계해 나가는 전문가의 자부심에서 나오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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