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날은 생장에서 도착지까지 약 30km에 달하는 거리. 다들 새벽부터 서둘렀는데 모르는 게 약이라고 어제 설명해 준 코스를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터라 8시가 넘어서 겨우 출발했다. 브라칠 친구는 혼자 걷고 싶다는 말을 전하고 길을 걷기 시작하며 헤어졌다. 이해했지만 조금 두려웠다. '혼자 갈 수 있겠지.'
날씨가 참 우중충 했고 비가 올 수도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시작한 지 1시간도 안되었는데 내 구글지도는 앞으로 8시간을 더 가야 한다고 했다. 애써 부정했다. 아니겠지 ^^ 첫날은 에스파냐 국경을 넘어 피레네 산맥을 넘었다. 내 발로 타국의 국경을 넘는 기분은 참 묘했다. 피레네 산맥은 안개가 자욱했고 양과 말 그리고 각종 동물들이 자유로이 다녔다. 데이터가 터지지 않아 구글 맵이 아닌, 산티아고의 시그니처인 노란색 화살표를 찾아 걸어갔다. 잘 보이지 않아 이상한 길을 헤매고 있을 때, 이 길이 아니라며 친절히 가야 할 길로 데려다준 사람도 있었다. 참 내 인생 같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첫날의 길에서 만난 대 자연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배가 너무 고팠다. 사실 6km 정도 걷고 바가 있었지만 혼자 식당에 들어가 주문할 자신이 없었다. 카타르에서는 그렇게 손짓 발짓을 해서 아아를 주문하던 내가 아닌가. 그렇지만 이 외국인들 틈에서 필기체로 적힌 메뉴판을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는 내가, 저들 틈 사이에서 주문을 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금 더 가면 푸드 트럭이 있다는 정보를 위안 삼아 계속 걸었다. 그러나 아무리 걸어도 푸드트럭은 나오지 않았고 나중에 안 소식이지만 365일 휴무가 없기로 유명한 트럭이지만 날씨가 너무 좋지 않아 쉬었다고 한다. 나는 결국 숙소에 다다를 때까지 아침 이외에 먹은 것이 없었다. 길을 걷다 스틱을 빌려주기도 했고 반창고를 내어주기도 했는데 내가 먹을 간식 하나가 없다는 사실에, 15kg에 육박하는 내 가방을 보며 이 무게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에 잠겼다. 보통은 10kg 내외로 짐을 싸야 걷는데 큰 무리가 없다고 하는데 저 거대한 짐을 바라보며 내 가방은 내 인생의 실체이구나 싶었다. 당장 필요한 것은 없고 앞으로 필요할지 모르는 걱정으로 싼 짐이 가득했다. 숙소에 도착하면 필요 없는 물품을 정리해야겠다. 가방을 비워야 한다. 그리고 내 삶에 가득한 타인의 가치도.
두 번째 숙소에 도착했다. 도착 시간은 오후 다섯 시. 총 9시간을 걷고 겨우 도착한 나는 수백 개의 베드 중 남아있는 2개의 베드 중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다. 이것도 예약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지 내 뒤에 도착하는 사람들은 바깥에서 침낭을 덮고 자거나 택시를 타고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했다. 안도하며 씻고 미리 신청한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순례길에서 내가 참 좋아했던 문화 중 하나는 순례자들이 한 테이블에 모여 함께 하는 저녁 식사 시간이다. 이 날 내가 앉은 테이블은 한국인 중년 남자분과 캐나다출신 칠레 할머니였다. 우리는 어쩌다 각 나라의 연금제도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다. 인상 깊었던 것은 캐나다의 연금제도였는데 나라가 지원해 주는 것보다 회사에서 지원해 주는 비율이 크다는 점, 우리나라처럼 정년을 채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내용은 흥미진진했으나 소통은 참 힘들었다. 파파고와 바디랭귀지와 중년 분과 내가 이해하는 단어를 총동원했다. 여유로운 삶을 원한다면 캐나다에 꼭 살아보라는 할머니의 마무리로 식사는 종료되었다. 잠들기 직전 내 옆 베드에 있는 할아버지가 너무 귀여워서 계속 시선이 갔다. 눈이 마주치자 인사를 건넸고 그는 내일 블링블링을 해도 되냐고 나에게 물어봤다. 블링블링이 뭐지? 다시 되물었더니 알람이라고 했다. 당연히 된다고 답했고 이때부터 이탈리아 아저씨는 나만 보면 머리를 잡아당기고 모른 척을 하거나 내 가방이 크다며 자신의 가방과 비교샷을 찍으며 장난을 쳤다. 여기에서 만난 사람들은 나이와 상관 없이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싶었다. 즐거운 순간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