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식품을 살 때 우리는 으레 포장지의 날짜부터 확인한다. 오랫동안 익숙했던 표시는 ‘유통기한’이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그 날짜가 지나면 곧바로 먹을 수 없는 식품이 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은 같은 뜻이 아니다. 유통기한은 제품을 판매할 수 있는 기한이고, 소비기한은 표시된 보관조건을 지켰을 때 소비자가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기한이다. 다시 말해 유통기한은 판매 중심의 기준이고, 소비기한은 섭취 안전 중심의 기준이다. 정부도 이러한 차이를 반영해 2023년 1월 1일부터 소비기한 표시제를 시행하고 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일은 단지 용어를 아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는다. 식품을 언제 버릴 것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유통기한은 통상 품질안전 한계기간의 60~70% 수준에서, 소비기한은 80~90% 수준에서 설정된다고 정부는 설명한다. 즉 많은 식품은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즉시 위험해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보관 상태가 유지되었다면 일정 기간 더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가 유통기한을 사실상의 폐기 시점으로 받아들이면, 아직 먹을 수 있는 식품까지 버리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통기한의 오해가 식품 낭비로 인해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식품을 유통기한만 보고 버리면 첫째, 이미 구입한 식품값이 그대로 손실이 된다. 둘째, 같은 식품을 다시 사야 하므로 가계 부담이 한 번 더 발생한다. 셋째, 버려진 식품은 수거·처리 비용까지 만든다. 다시 말해 유통기한을 섭취 가능 한계로 오해하는 순간, 우리는 음식만 버리는 것이 아니라 돈도 함께 버리고 있는 셈이다. 정부 역시 소비기한 제도 도입 이유 중 하나로, 유통기한을 소비기한처럼 오인해 불필요한 폐기와 가계 부담이 커졌다는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소비기한 표시제 도입의 경제적 효과를 추정하면서, 가공식품 폐기율이 평균 1.3%에서 0.7%로 0.6%포인트 감소할 수 있다고 추정한다. 이 감소분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3,301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결국 가정에서 아직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덜 버리게 되면 그만큼 새로 사야 하는 비용도 줄고, 기존에 지출한 식품 구매비의 낭비도 감소한다는 뜻이다.
경제적 이익은 가정에만 그치지 않는다. 소비기한 표시제가 시행되면 식품 제조·가공 및 유통업체의 반품·폐기 비용이 연간 262억 원 줄어들 수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또 연간 농식품 폐기량과 처리 비용을 기준으로 계산했을 때, 폐기물 처리 비용도 연간 68.3억 원 절감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를 합치면 소비기한 도입에 따른 총편익은 연간 3,631.3억 원으로 평가되었고, 포장재 동판 교체 등 제도 전환 비용 1,606.41억 원을 제외해도 순편익은 약 2,024.89억 원으로 추정되었다. 물론 이 수치는 정책 도입 효과를 가정한 추정치이므로 실제 효과는 소비자가 제도를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행동을 바꾸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소비기한 제도의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소비기한은 단순히 날짜 표시를 바꾸는 행정적 조정이 아니다. 그것은 식품을 더 오래 팔기 위한 제도가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폐기를 줄이고, 소비자와 사회 전체의 비용을 아끼기 위한 제도에 가깝다. 실제로 정부도 소비기한 표시제를 식품 폐기물 감소, 식량 낭비 완화, 탄소중립과 연결되는 정책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소비기한만 믿고 무조건 안심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소비기한은 어디까지나 표시된 보관조건을 지켰을 때 의미가 있다. 냉장식품을 오래 상온에 두었거나, 개봉 뒤 위생적으로 관리하지 못했다면 날짜가 남아 있어도 안전성은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날짜는 기준이고, 실제 판단에는 보관상태, 개봉 여부, 냄새, 색, 포장 팽창 여부 등을 함께 살펴야 한다. 결국 현명한 소비자는 날짜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날짜가 무엇을 뜻하는지 읽을 수 있는 사람이다.
정리하면, 유통기한은 판매 기준이고 소비기한은 섭취 가능 기준이다. 그리고 이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생각보다 실질적이다. 유통기한만 보고 식품을 버리면 우리는 식품 하나를 잃는 것이 아니라, 그 식품을 사는 데 쓴 돈, 다시 사야 하는 추가 비용, 그리고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할 폐기 비용까지 함께 늘리게 된다. 반대로 소비기한을 올바르게 이해하면 안전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가계 부담을 줄이고, 식품산업의 손실을 낮추며, 사회적 폐기 비용까지 절감할 수 있다. 결국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를 아는 것은 식품을 아끼는 일이자, 돈을 아끼는 일이며, 더 나아가 사회적 자원을 덜 낭비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