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다섯의 세상을 기다리며
2024년이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새삼스럽다. 더욱이 올해는 여름이 참으로 길었고, 날씨 변화가 심하여 11월 후반까지도 긴 팔을 입지 않아도 될 정도의 따뜻한 날씨였으므로 마치 여름의 미적지근한 궁둥이가 보기 싫어 겨울이 가을조차 밀어내고 하루아침에 들어앉은 꼴이었다. 그러니 겨우 하루 이틀 만에 반 팔 위에 겨울 아우터를 꺼내 입고 오들 거리는 나의 모습에 실소가 나고 준비할 새도 없이 연말을 맞이하게 되니 억울해 미칠 노릇이다. 이렇게 한 살을 더 먹게 되니, 나는 이제 45살로 인생의 후반기로 들어섰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나이가 되었다. 서글프다. 나는 작년을 끝으로 일을 쉬게 되었다. 올 한 해를 꼬박 집에서 보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될 때까지 직장일과 살림을 병행했으니 뭐 일 좀 안 하면 어떠하랴 싶긴 하지만 오히려 일을 안 하니 마음이 조급해진다. 그 조급함을 상쇄시키려 올해 나는 우리 둘째의 영어공부를 전담했다. 그 결과 20년 차 영어강사로서의 자존감만 바닥났다. 자식은 그래서 가르치기 어려운가 보다. 아들놈을 가르치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르고 자꾸 부아가 치밀어서 나 좀 살자고 학원에 등록시켜 버렸다. 이제 자식의 공부도 조력자로서의 역할에만 충실하려니 또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버텨내야 하는가?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하는가도 중요한 화두지만, 나에겐 어떻게 시간을 알차게 채워 살아낼 수 있는가도 중요한 문제이다. 그럴 때면 눈앞의 과제에만 몰두하는 남편이 부럽다. 잡생각 없는 인간.. 그건 축복이다. 어쨌든 나는 뭐든 시작하고 싶기는 하다.
올해 나에겐 나름의 큰 변화가 몇 가지 있었다. 앞서 밝힌 대로 나는 온전히 살림만 하게 되었고, 독서 모임에 들어가 -다독가들에겐 애송이 수준이겠지만- 나는 유례없는 전투력을 장착하고 열심히 책을 읽었다. 올 한 해 대략 33권 정도의 책을 읽어냈다. (소리 질러!!!!) 이건 스스로에게 기특한 부분이지만, 다른 회원님들의 수준을 생각하면 어디 가서 말도 꺼내기 부끄럽다. 그저 읽어내기만 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읽은 것을 다시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단계로 올라서고 싶어졌다. 이제 독서에 관한 부분도 차근차근 풀어나가 보려 한다.
발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발레에 관심이 있었다. 어쩜 저리 아름다운가... 내 주변 모든 여성을 다 헤아려보아도 떠오르지 않는 가냘픈 단단함과, 발목 하나에 지탱했으나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ㅋ 어렸을 적 나는 내가 기억하기 전부터 통통한 체형이었으므로, 엄마 밥이 세상 맛있었으므로, 입맛 없음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으므로 발레는 내게 그저 러시아인형들의 전통무용쯤이었을 뿐. 혼자 까치발 서서 지탱해보기도 하고 (토슈즈에 대한 상식도 없었기에 발끝으로 선다는 것이 그저 타고난 이들의 기예라고 느끼면서 ), 예쁜 드레스에 대한 로망 하나쯤 가슴에 품어보기도 했지만 발레는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냥 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나이 마흔넷에 충동적으로 학원에 등록해 버렸다. 요즘은 발레도 많이 대중화되어서 이젠 누구나 하려면 하는 거지, 니 거 내 거가 어딨냐 싶어서 새로 생긴 학원에서 반값할인을 한다는 현수막을 보고 그냥 등록까지 가버렸다. 나는 첫날 수업을 듣고 아.. 임자 만났구나.. 이걸 알아버렸다. 너무 좋았다. 이런 느낌이 너무 오랜만이라 이 나이 먹고 심장이 뛰고 신바람이 났다.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결석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나는 짝사랑에 빠졌다. 짝사랑이라는 표현은 너무나 맞는 말이다. 발레는 결코 나의 것이 아니었다. 누구나 발레를 할 수 있고 니 것도 내 것도 아닌 세상이 왔지만 나의 손에는 절대 잡히지 않는다. 나이 먹고 이런 세상을 알게 된 것이 누굴 탓할 수도 없이 억울하기도 하고 (왜죠? 더 어렸을 때 시작했으면 국립발레단 들어갈 수 있었을 것 같아서요?) 시큰한 무릎과 무거운 점프에 수없이 현타를 느낀다. 아니 내가 뭐 발레리나가 되겠다는 것도 아닌데 꼭 그렇게 잘 해내야 하나 싶어 적당한 선에서 즐기면서 가자고 내려놓기를 해보려 해도 이까지 풀업, 이까짓 턴아웃 하나에 여전히 속상하고 내가 밉다. 하지만 잡히지 않는 이상향에 열정을 불사르는 것. 그게 뭐 예술혼 아니던가.. 아무것도 아닌 무지렁이 중년 여성에게도 미약하나마 예술혼이 있을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냥 계속한다. 나는 오늘도 할 거고, 내년에도 할 거다.
마지막은 고양이. 나는 애완동물에 욕심을 내어 본 적이 없었다. 내 자식도 버거운 세상에 다른 목숨을 거둔다는 것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다. 아이들이 강아지 키우자고 울며불며 졸라도, 그냥 단호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거라고... (그런 사람이 안 될 것을 알 면서 예술혼 운운하며 발레하나요?) 그저 랜선집사에 만족하기를 독려했는데....
지난 추석연휴의 마지막이었다. 우리 가족은 연휴 동안 낀 뱃속 지방을 벗겨내려 산책에 나섰다. 늘 다니던 경로가 있었지만 그날은 조금 비껴가기로 했다. (왜? 갑자기?) 그런데 눈이 마주쳤다. 대로면 화단가에 두 개의 작은 겁먹은 블랙홀. 작은 아기 고양이였다. 나는 사실 작은 고양이는 실제로 본 적도 없었고, 큰 고양이는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사람이었으나 이 아이는 이대로 두면 죽는다는 것을 직감했다. 화단은 대로와 울타리도 없이 열려있는 구조였고, 자동차들이 상시로 달리는 곳이었으며 주변 아파트는 아기 고양이 걸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리에 있었다. 목줄까지 하고 있는 아기고양이가 어떤 연유로 이런 곳에 떨어져있있을까? 우리의 결론은 유기였다. 구조하겠다는 우리와 무섭다는 고양이 사이에서 혈투(실제로 피를 보았으니)를 벌여 남편은 아기고양이를 잡았고, 내 겉 옷으로 감싸 집 안으로 데려왔다. 들어오자마자 소파 밑으로 숨어버린 고양이를 또다시 힘들게 잡아 미지근한 물로 씻겨 말리고 편의점에서 고양이 캔을 사서 조금 먹였다. 이것도 모두 고양이에 대한 상식이 전무해서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날은 밤에 뛰어다니다 이것저것 깨면 어쩌지, 나를 할퀴면 어쩌나라는 두려움과 앞으로의 행보에 떨며 고양이를 작은 구멍하나 열어 둔 박스에 담아 두었다. 나는 절대 너를 키울 생각이 없으니 내일 보호소에 보내줄게. 하루라도 잘 지내보자. 하루만 있을 예정이니 그냥 하루라 부를게. 하지만 나는 하루를 어디에도 보내지 못했다. 보호소라는 곳은 소정의 책임비를 받고 아이를 맡아 입양까지 보내준다 했지만, 이런 스트릿 출신 아이의 입양이 쉬울까 싶었고, 남편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안락사당한다는 말을 넌지시 하며 가면 하루는 결국 죽게 될 거라는 말을 반복했다. 나는 동시에 살겠다고 나와 연이 닿은 아이를 보호소에 보내면 이 아이를 두 번 죽이는 꼴이 아닌가 싶어, 어쩌자고 대책도 없이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인지 무지한 나를 탓하며 괴로워했다. 사실 또 하나의 이유가 있었는데, 우리 시댁은 전라북도 오수라는 곳이다. 오수는 동물친화동네로 지정하여 매년 오수 의견제가 열리고, 동물 장례식장도 마련되어 키우던 동물이 무지개별을 건넜을 때 유족들이 울면서 찾아오는 곳이다. 그럴 때마다 시골 어르신들은 혀를 차며 제 부모가 죽어도 저렇게 슬퍼할 거냐 하며 그들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친정도 사정이 다르지 않았다. 동물 같은 건 애초에 안 키우는 게 답이라는 양가 어르신들 때문에라도 나는 애완동물은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하루가 갑자기 내 인생에 뛰어든 것이었다. 내가 끌고 온 것일 수도 있지만... (눈이 마주쳐버렸잖아요 ㅠㅠㅠㅠㅠ ) 나는 거짓말 없이 정말 사흘을 잠을 설치며 울었다. 이런 작은 아이 하나 거두는 것도 결심이 어려운 못난 나.. 그러다가 결국 근처에 사는 엄마에게는 털어놓게 되었는데, 엄마는 단호히 말했다.
"그런 애는 키워야 해.
살겠다고 들어온 애를 버리면 너 벌 받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허락이었다. 벌 받는 게 무서웠던 나는 하루를 임보, 임종보호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만 데리고 있으려고 했었던 하루는 벌써 여든둘 하루 째 우리와 함께 머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