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단상
2021년 9월에는 죽음이 거의 눈앞에 와 있었다.
코로나가 심해져서 일주일 이상 1인 격리 중환자실에 있으면서도 쉽게 상태가 호전되지 않았다.
초기에 발열이 시작된 후 주말을 거치면서 40도에 가까운 열이 3일 이상 나면서 폐가 급격히 나빠졌다.
그 당시에는 만일 그렇게 회복되지 않고 죽음에 이르게 되면 가족들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화장이 되는 상황이었다.
감사하게 열흘 정도가 지나면서 열도 잡히고 산소 포화도도 어느 정도 회복이 되어 퇴원을 하였다.
그 2주 정도의 시간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지나고 회복은 더딘 시점에 내가 입원하던 비슷한 때에 들어온 30대 남자가 결국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핸드폰은 사용하고 있었으니 더 상황이 안 좋아지기 전에 ‘가족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너무 걱정할 가족을 생각하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다음 해 2월에 건강검진이 있어서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폐가 이상의 흔적이 없이 정상이었다.
지금도 폐 기능이 절반이나 기능을 상실한 상황들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일상이 꿈만 같고 너무도 감사하다.
누구에게나 두려움은 있다.
두려움의 형태와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지만 그 중심과 출발은 죽음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사실은 죽음을 향한 여정인 인생에 어떤 삶을 살든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맞이하고 싶은 사람도 없으니 누구에게도 두려움은 없을 수 없다.
죽음이 그토록 피하고 싶고 두렵게 느껴지는 것은 누구도 그 경험을 나누고 안내해 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거절감에 대한 두려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유한한 삶에 대한 두려움,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 두려움의 종류는 너무도 다양하고 많다.
우리가 살면서 ‘죽을 고비를 넘겼다.’라는 말을 종종 한다.
하지만 실제로 육체적으로 죽을 고비를 넘기는 것 말고도 살면서 느끼는 두려움은 육체적 죽음보다 마음에 죽음이다.
어떤 사람이 여러 번의 실패 후에 또 다른 실패가 두려워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그는 육체 이전에 마음에 죽음에 이른 것이다.
건강하게 자라고 좋은 부모 밑에서 일상을 누리는 아이는 불안이나 두려움이 별로 없다.
내가 누리는 일상이 어느 날 내게서 사라질 수 있다는 경험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려서 고아가 되거나 버림을 받은 경험이 있는 아이는 오늘 먹을 것이 있고 따듯한 잠자리가 있어도 그 마음에 늘 불안과 두려움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내가 삶을 통해 누리던 것이 내게서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경험이 마음에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있는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지혜인가?
살겠다고 발버둥 치면 불안과 두려움은 더 커지고 오히려 우리를 죽음으로 끌고 간다.
하지만 육체의 죽음이든 마음에 죽음이든 그 죽음을 겸허한 마음으로 직면하면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살 수는 없다.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죽음 직전의 사람들 수백 명을 인터뷰해, '인생에서 꼭 배워야 할 것들'을 받아 적어 ⟪인생 수업⟫이란 책을 발간하였다. 책의 마지막 단원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가르쳐 주는 가장 놀라운 배움 중 하나는 삶은 불치병을 진단받는 순간에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때 진정한 삶이 시작됩니다. 당신은 죽음의 실체를 인정하는 순간, 삶이라는 실체도 인정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모든 날들을 최대한으로 살라는 것입니다.
물론 죽음 앞에서 상심과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마음에 죽음부터 맞이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
하지만 오히려 불치병과 같은 판정 이후에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 뿐 아니라, 그 병조차 극복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불치병 진단을 받지 않아도 결국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원수처럼 지내며 얼굴도 보지 않고 지내던 누군가에게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연락을 하면서 ‘여전히 나를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죽음을 직면하게 될 때 정말 내 인생에 대해 진지해지는 마음으로 내 인생을 조망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그때 막연한 불안과 두려움 넘어 인생에 대한 새로운 희망과 통찰을 가지게 될 것이다.
이제 불안과 두려움은 이 시대 현대인의 고질병이 되었다.
그 이유는 나도 모르게 세상 기준의 성공과 소유에 집착하는 마음의 동전에 앞뒷면이다.
성공과 소유를 조장하는 세상의 선전이나 메시지는 우리에게 더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제 나름의 성공과 소유를 가져도 불안하고, 가지지 못하면 더 불안하고 두려움 가운데 전전긍긍하며 산다.
누구나 죽음을 맞이하지만, 또 죽을 때 동전 하나라도 가져갈 수 있는 사람도 없다.
그것은 결국 지금 내 것이라고 생각하던 모든 것이 실상은 내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닌가?
당신이 성공과 소유를 향해 달려가면 갈수록 불안과 두려움은 더 엄습할 가능성이 높다.
성공과 더 많은 소유를 위해 달려가지 않으면 실패하고 가난하게 된다는 것이 아니다.
요즘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버킷 리스트’에 대해 관심들이 많다.
죽음 앞에 서서 간절한 마음으로 ‘버킷 리스트’를 이뤄가는 사람은 불안과 두려움보다는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하고 감사로 채워갈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그 모든 리스트를 다 이뤘다면 그는 죽음 앞에 서서 진짜 인생을 산 것이다.
두려움을 이기는 가장 지혜로운 길은 역설적으로 두려움의 근원인 죽음 앞에 겸허히 서서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죽음 앞에 겸허하게 서서 보면 실패도, 타인의 시선도, 인정받지 못할 두려움도 사실 별거 아니다.
그리고 성공과 소유라는 가치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당당히 나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