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 이런 건 의좋을 필요가 없단다
어제저녁 갑자기 큰 아이가 "엄마, 아직 안 빠진 앞니 위에 잇몸이 불룩해요."라고 했다. 화들짝 놀란 나는, "뭐!"라고 말하며 얼른 아이 입을 벌려보라고 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른 건 다 저학년 때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났는데 위에 있는 작은 채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왼쪽 앞니만 위에 불룩하다. 헙, 나도 모르게 오른손으로 입을 막게 된다. 어떡하지? 왠지 모를 불길한 기운이 온몸을 엄습한다. 제발 아니기를...
여기까지 이게 무슨 일인고 할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아주 대단하고 큰 일이다.
둘째 아이가 2년 전 정기검진으로 치과를 방문했을 당시 충치 두 개 정도 치료하고 나오려는데 엑스레이를 한 번 찍어보자고 한다. 유치발치 후 영구치가 나고 하는 무렵 전체적인 유치 상태나 영구치 뿌리 등을 확인하기 위해 찍어보는 게 좋다고 하더라.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엑스레이 촬영을 했는데 선생님이 빨리 와보란다. 위 앞니 두 개 사이에 하얀 머리가 삐죽 내밀고 있다. "선생님, 이건 뭔가요?"라고 했더니 "어머니, 이건 과잉치입니다. 없어도 되는 치아인데 이렇게 잇몸에 매복되어 있어서 엑스레이를 찍어봐야 알 수 있어요. 간혹 잇몸 밖으로 나오기도 하는데, 매복되어 있다가 주변 영구치의 치열을 방해하기도 하고, 신경을 건드려서 통증을 발생시키기도 합니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결론은 없애야 하는 거였다. 과잉치는 일반 치과에서도 발치를 하긴 하지만 매복되어 있어서 신경을 건드릴 수도 있으니 위험하다고 소견서를 써줄 테니 대학병원에 가서 발치를 하라고 했다. 그때만 해도 오만가지 생각이 들면서 노산이라 애를 늦게 낳아서 안 좋은 건 다하나 하며 내 탓을 많이 했다(유치원 때 원시 판정받아서 원시용 안경으로 시력도 교정 중이다). 둘째를 출산할 때는 30대 후반의 산모가 별로 없어서 다소 심적으로 잔뜩 위축된 노산 엄마였던 터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늦게 출산해서 그런가, 내가 임신했을 때 뭘 잘못했던가, 정말 별별 생각을 다하며 검색을 열심히 해보았지만 과잉치에 대한 기사나 글 등이 별로 없어서 걱정을 잔뜩 했다.
바로 대학병원에 전화를 하고 예약을 잡았는데 그 사이 열감기를 앓아버려 열이 나는 통에 원래 예약된 날짜에 발치를 하지 못하고 예약가능 날짜가 없어 한 달 후 발치를 위해 방문할 때는 이미 과잉치가 잇몸 밖으로 삐죽 나와버린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위치가 나쁘지 않아서 간단히 마취를 하고 10분 만에 발치를 했다는 것이다. 그날도 아이는 누워서 마취부터 발치까지 진행하는데 보호자는 마주 보는 의자에 앉아서 지켜보란다. 마취는 했지만 피를 줄줄 흘리면서 진행하는 모습을 보니 손이 덜덜 떨리고,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는 것이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나 같으면 아프다고 울기도 하고 무서워서 벌벌 떨었을 텐데. 초등학교 2학년 밖에 안 된 둘째 아이가 용감하고 씩씩하게 아픈 것을 잘 참아주어서 너무나도 대견스러웠다. 다 끝나고 나서 간호사, 의사 선생님들과 심지어 교수님까지도 씩씩하게 울지 않고 잘했다고 폭풍 칭찬을 해주셨다. 그러고 나서 교정치료를 지금껏 받고 있다.
첫째 아이의 경우, 7~8살 무렵에 유치가 거의 다 빠지고 대부분 영구치가 자라고 있었는데, 유독 위의 왼쪽 앞니 하나만 유치상태로 빠질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보는 사람마다 앞니 하나만 작다느니, 왜 이가 이상하냐는 등의 말을 너무 많이 듣게 되고, 실제로 내가 봐도 이상하게 보여서 너무 신경이 쓰인 탓에 엑스레이를 찍어봤었다. 그때만 해도 의사 선생님이 3~4학년 되면 유치 빠지고 영구치 날 거라고 영구치 뿌리가 위에 있다고 좀 기다려보라고 했었다. 그렇게 들은 지 벌써 4년 전이니 올해 5학년이 되었다. 그런데 어제 첫째 아이가 유치 위 잇몸이 부었다고 하니, 둘째에 이어 또 과잉치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둥. 드디어 오늘 아침 병원 문 열자마자 예약제로 하는 치과라 전화를 하니 한 시간 후 예약이 있긴 하지만 진료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오라고 했다. 바로 첫째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서 예진 후 엑스레이를 찍었다. 이번에도 또 선생님이 빨리 들어오란다.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역시나 사진을 보니 유치 위에 영구치가 있고, 왼쪽에 작은 흰점이, 오른쪽에는 치아처럼 보이는 덩어리가 있다. "어머니, 중앙에 이건 영구치고요, 왼쪽은 석회처럼 보이긴 하는데 과잉치일 확률도 좀 있어요, 그리고 오른쪽은 과잉치입니다." 둘째 아이에 이어 첫째 아이의 두 번째 과잉치 소식이건만, 이런 소식은 두 번째 들어도 적응이 되질 않는다. 아니, 적응이 될 수가 없는 소식이다.
"그럼 어떡하나요?"
"21년도에 엑스레이 상에는 영구치만 있었는데 그 사이에 양쪽에 이런 것들이 생겼는데 원인은 알 수가 없어요. 그런데 일단 유치를 발치한 후 두 달 정도 상황을 지켜봐야 합니다. 영구치가 내려와서 잘 자라주는 게 제일 좋은데, 과잉치가 내려오면 발치를 해서 영구치가 내려와서 자랄 수 있게 해줘야 하고, 만일 둘 다 자라지 않는다면 매복된 과잉치를 대학병원에 가서 발치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바로 마취를 해서 유치발치를 무사히 마치고, 두 달 후 진료 날짜를 예약하고 병원을 나왔다. 첫째 아이한테 대강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그래도 첫째는 너무나 해맑게 씩 웃는다. "너는 이를 뺐는데 안 아프니? 그리고 이 상황에 참 해맑다."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엄마, 좋게 생각하는 게 좋잖아요. 나쁘게 생각하면 뭐가 좋아요." 하면서 길가에서 히죽히죽 웃으며 짱구 엉덩이춤을 춘다. 아이고, 못살아.
그래. 네 말대로 좋게 생각하는 게 좋지. 큰 아들을 보며 나도 그만 피식 웃음이 난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하나 사주기로 했는데 지혈용 거즈를 입에 물고 있어서 오후에 사주는 것으로 했다.
평상시에는 둘이서 앙숙처럼 붙어있다 하면 싸우면서 과잉치는 어째 둘이 나란히 생기누. 그런 건 사이좋게 같이 할 필요가 없는데. 또다시 두 달의 시간을 마음 졸여야 하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