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희 성우님의 낭독 강사과정을 들으며>
매주 수요일, 송정희 성우님과 낭독 공부를 1년 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낭독을 가르치는 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고 있다.
낭독을 혼자서 즐기는 걸 넘어,
그 멋진 경험을 세상에 전파하는 일이다.
낭독을 잘하고, 낭독에 진심이어야 함은 기본이다.
그리고 그걸 ‘잘 가르쳐야’ 한다.
업이 교사이니 가르치는 것 만큼은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조금의 자만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마음은,
첫 수업에서 바로 무너졌다.
기본적인 낭독 실력 부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웠던 건
나의 평소 화법과 태도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수강생끼리 교사와 학생 역할을 번갈아 하면서
배우고 가르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평소의 민낯은 물론 숨기고 싶은 것을 온통 들킨 것 같 민망함이었다.
낭독을 처음 배울 때는
내면을 들여다보며 느꼈던 부끄러움이었다면,
이번엔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
말의 리듬, 눈빛, 관계 맺는 방식이
그대로 노출돼 알몸을 보인 것 같은 수치스러움이었다.
모든 수강생에게 허용적이되, 절대 휘둘리면 안 된다는 뜻이다.
넓은 마음으로 수강생을 받아주되,
단호함은 놓치지 말라는 메시지.
나는 따뜻하면서도 엄격한 교사가 되고 싶었지만,
아직도 균형을 잘 못잡고 있는 나의 약점을 성우님은 너무 정확히 짚어주셨다 .
수업에 몰입하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높아진다.
‘전지적 교사 시점’을 원하지만
아직은 이리저리 휘둘리는 자아도취형 존재임을 들켰다.
톤이 일정하고 단조롭다는 지적.
그렇게 하면 아이들은 금세 지루해지고 졸릴 수 있다.
그 말을 듣고부터는 의식적으로
목소리의 크기와 속도를 조절하며 변주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 말은 정말 아팠다.
내가 학생의 리듬을 느끼지 못한 채
진도에 쫓겨 앞서가고 있었다는 걸
정확히 꼬집어 주셨다.
매주 2시간의 수업이지만,
그 전에 준비해야 할 게 많다.
지난 수업을 모니터링하고
다음 자료를 분석하고
내가 직접 모의 수업을 녹음하고 피드백까지 들어야 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니 부담감도 많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모처럼 엄하지만 애정 가득한 스승님을 만나서
혹독한 자기 대면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리고 함께 답을 찾아가며 고민해주는 동료들도 있으니
그 과정이 막막하고 힘들지만은 않다.
‘학생들과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나만의 강의 색깔을 찾아야 한다.’
‘수업은 퍼포먼스가 아니라 관계다.’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
지나치게 남을 의식하거나
스스로에게 기대를 과하게 걸면
수업 시간마다 나를 깎아먹게 된다.
결국 내가 얻은 건,
‘내 소리, 내 모습, 내 리듬’을 직면하고,
부족함은 겸허히 채워가겠다는 다짐이다.
다음 달 초, 낭독회가 끝나면
이 수업도 마무리된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건
결국 자기 해체의 과정이다.
그래서 아프다.
하지만 그 아픔 사이로
살이 돋고, 근력이 붙는다.
나는 지금,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