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왕창 벌어 부자 되고 싶어요."
월급 받으러 학교 오는 아이들-우리 반 경제교실(2023.4.2)
by
포롱
Apr 9. 2023
“선생님, 오늘 월급날인 거 알죠?”
등교 때부터 싱글벙글한다.
“그렇게 좋니?”
“그럼요. 근데 세금 좀 덜 떼면 안 돼요?”
“세금이 있어야 나라가 돌아가지.”
“세금 좀 깎아주세요. 세금 내고 자리 임대료 내면 남는 게 없어요.”
“세금이 부족해. 3월 생일파티도 해야 하고 왕창 돈 쓸 일 많아.”
“그럼, 월급 조금만 올려줘요.”
“직업 바꿀래? 청소부 월급 세다.”
“어 그건 좀. 쉬운 게 없네 정말.”
우리 반은 경제 교실을 운영 중이다.
어렵고 딱딱한 경제를 교실 생활로 배우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 나라 이름(꿈나라)도 정하고 화폐 단위(드림)도 만들었다.
‘꿈나라’에는 다양한 직업의 국민 25명이 매일 출근 중이다.
환경부 직원은 출근과 동시에 공기청정기를 가동하고 교실 창문을 연다.
환기가 끝나면 교실 온도를 체크하고 난방기를 켠다.
통계청 직원은 선생님 확인이 끝난 아침 글쓰기 노트, 배움 노트 체크에 들어간다.
“누가 안 냈지? **이 이번 주 X표 두 개네.”
때마침 출근한 낙농업자는 신선한 우유 배달에 나선다.
“8시 45분! 지각 아니죠? 하마터면 벌금 낼 뻔했네.”
1층부터 냅다 달린 **는 숨이 차다.
2교시 중간 놀이 땐 직업 활동이 가장 왕성하다.
분리수거 업체는 쓰레기를 버리고, 우편배달부는 선생님 심부름 전문이다.
은행원은 돈의 입출금을 확인하고 증권사 직원은 주식거래를 도와준다.
“밥 안 받은 사람 빨리 나와!”
쩌렁쩌렁 고함 울린다.
점심시간에 급식배식원이 주인공이다.
오후 2시 30분 청소부들의 교실 정리가 끝나면
꿈나라의 하루도 막을 내린다.
3월 30일, 드디어 두 번째 월급날.
월급은 2주마다 받으며 직종에 따라 260드림부터 350드림까지 다양하다.
월급명세서에 따라 각자 가계부에 액수를 적고
은행원 확인 도장을 받으면 입금 완료.
가계부에 쓰인 숫자일 뿐인데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돈 벌었으니 써야 제맛이지.
“오늘 급식 1등 쿠폰 산다! 아침 안 먹어서 배고파.”
면제권이 불티나게 팔린다.
‘배움 노트 면제권’ ‘지각 면제권’ ‘주제 글쓰기 면제권’ ‘독서 릴레이 면제권’...
50드림, 60드림일 때는 쳐다도 안 보더니
반값 할인했더니 문전성시다.
“짝꿍 선택권 100드림이잖아. 반반씩 부담해서 앉자.”
“오늘 영어학원 숙제해야 해서 배움 노트 면제권 살 거야.”
귀찮은 노트 정리 안 해도 되는 배움 노트 면제권은 최고인기.
“예금하면 이자도 붙나요?”
“투자도 해보고 싶어요.”
2주, 4주짜리 은행 정기예금도 생겼고 ‘선생님 몸무게’ 주식도 만들어졌다.
선생님 몸무게가 0.1kg 줄어드는 것에
100드림 투자에 1드림씩 배당하는 수익구조로 만들자니
대부분이 몸무게 늘어나는 것으로 바꾸잔다.
“살 빼서 너희들 수익 나게 해줄게.”
“우리 엄마도 다이어트 한다고 해놓고 막 먹어요. 맨날 살쪄요.”
“선생님은 걷는 거 좋아하고 주말마다 등산도 가서 살찔 틈 없어.”
“살찌게 할 자신 있어요. 걱정마요.”
아무리 꼬셔도 싫단다.
주식시장 개장 첫날부터 돈이 몰렸다.
월급 대부분을 몰빵하는 아이들이 등장했다.
오르락내리락 몸무게에 환호하고 탄식 중이다.
“선생님, 저 대출받고 싶어요.”
“지금 너 신용등급 몇 등급이지?”
“저번 주 독서 릴레이 못하고 배움 노트 몇 번 못 내서 내려갔어요.”
“등급이 올라야 대출할 수 있어. 먼저 등급 좀 올리자.
그런데 대출받아서 뭐 하려고?”
“자리 임대료가 비싸요. 그래서 대출받아 전세 살래요.”
“그건 대출이자가 임대료보다 쌀 때 가능한 거잖아.
그리고 넌 일단 돈을 좀 더 모아라.”
번갯불에 콩 볶아 먹고 싶은 녀석이다.
우리 집은 가난했다.
4남매의 등록금 고지서가 날아올 때면
엄마는 이웃집으로 돈을 꾸러 다녔다.
시골 깡촌에서
부모님의 뜨거운 교육열은
애초 사치가 아니었을까.
힘들게 일해도 늘 살림살이는 그대로인 부모님을 보면서
크면 돈을 왕창 벌겠다고 다짐했다.
몽당연필도 아까워 볼펜 대에 끼워 썼고
빌려 온 동화책이 귀하고 재미있어
책장이 해지도록 읽고 또 읽었다.
늦은 밤 구멍 난 양말을 깁던 엄마의 한숨,
지친 아버지는 막걸리 기운으로 잠이 들었다.
아랫집 수정이는 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었고
코 묻은 소맷자락은 반질반질 닳아 있었다.
늙수그레한 담임선생님은 사시사철 같은 양복
소풍날 담배 한 보루 받으시고 활짝 웃으셨다.
그랬다.
모두가 배고프고 모든 게 부족했다.
그 시절 가난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눈부신 시간이 흘렀다.
주인 잃은 연필이 교실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점심시간 맛있는 급식이 나오고
학습 준비물실에는 교육용 물품이 쌓여있다.
“우리 집 가난해요?”
초등학교 시절 딸이 대뜸 물었다.
“아니~!!! 왜? ”
“그럼 왜 우린 방학 때 해외여행 안 가요?”
아,
가난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휴대폰으로 들여다보는 세상은
하나같이 풍족하고 여유 있고 화려하다.
수십만 원짜리 와인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며
철 따라 해외로 골프 여행을 다닌다.
이름도 모르는 명품 옷과 명품 가방이 즐비하다.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는데
아직도 난 가난하구나.
나의 아이들은 가난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SNS 속 빛나는 주인공처럼 살았으면 좋겠다.
왕창 돈 벌 수 있도록 가르쳐주고 싶다.
밤낮 공부를 시키면 가능하려나?
주식 공부를 지금부터 시켜야 하나?
지극히 평범한 나로서는
부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 줄 수는 없겠다.
대신!
가난하지 않은 아이들로 키워야겠다.
돈의 소중함은 알되,
돈에 휘둘리지는 않는!
마음마저 풍요로운 어른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아, 통장 돈 묵히지 말고 정기예금에라도 넣어.
이자 한 푼이라도 벌어야지?”
“4월 초에 한 달짜리 예금할 거예요.”
“왜? 당장 안 하고?”
“5월 5일 만기 되면 찾으려고요.
어린이날 선물로 나에게 줄 거예요.”
짝꿍 선택권 사서는 하루 종일 붙어 지낸 아이들.
“오늘 행복했니?”
“네, 진짜 좋았어요.”
“내일도 살 거야?”
“아뇨. 돈 아껴야죠.”
배움 노트 면제권 사는 **에게 묻는다.
“돈 쓰니 편하지?”
“좋긴 한데 잔액이 줄어 불안해요.”
**와 **는 20드림씩 기부 저금통에 넣었다.
“힘들게 벌었는데 이걸 기부한다고?”
“어려운 사람 도와주고 싶어요.”
가르치지 않아도 부자인 아이들이 많다.
흥청망청 돈 쓸 거라는 선입견도 틀렸다.
주식에 투자하다 패가망신한다는 지론도 바꿔야 할 것 같다
“배고플 때 드세요.”
책상 위에 과자와 사탕이 자꾸 등장한다.
주식투자 몰빵한 녀석들 짓이다.
급식 배식원에게 훈수까지 둔다.
“선생님께 고기와 밥 가득가득 드려. 알았지?”
‘제발 다이어트하지 마세요.’
‘맛있는 거 많이 먹고 행복하세요.’
아침 글쓰기 노트엔 간절한 애원이 가득하다.
돈 쉽게 벌리는 게 아니라는 걸 가르쳐주고 싶은데
달콤한 유혹에 자꾸 넘어가
우리 반 주가는 연일 상한가를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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