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만하고 우아한? 아줌마들의 점심식사

일곱빛깔 교대동기 7인의 시트콤 같은 만남 이야기

by 포롱

-아놔! 지하철 잘못 탔…. 빨리 갈게.

-거꾸로 탔구나. 천천히 와.

-나 길 잃었어. 여기 어디야?

-넌 또 왜? 버스 정류장 잘못 찾은 거 아냐?

-숲이 보이는 데 대공원역에 이런 데가 있어?”

-너 혹시 능동 어린이대공원 간 거 아니니?

-아놔, 사당역 종착역이라고 내리래. 나 또 기다려야 해.

-지방 할머니들도 우리보단 낫겠다.

-이상해. 난 주도면밀한 사람인데 꼭 우리 모임 만날 때만 이래.

-너네 전부 어디 가서 교사라고 하지 마라.

-앞으로 2호선 밖으론 절대 벗어나지 말자.

아침부터 난리다.

영교과 7명의 만남은 늘 이런 식이다.

하지만 한 명도 화를 내거나 짜증 내는 법이 없다.


교대 다닐 때부터 우린 그랬다.

30대 초반에 초등학교 교사가 되겠다고 다시 학교에 다녔다.

띠동갑쯤 되는 아이들 틈에서 7명의 동기가 뭉쳤다.

모두 나만큼 특이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드사 직원, 카지노 딜러, 로펌 비서, 학원 영어 강사, 유치원 교사 등

전직도 다양했고 나이대도 다양했다.

날고 긴다는 젊은 대학생들 틈에서 우린 다소 부진아에 가까웠다.

피아노 수업 땐 건반과 씨름하며 늘 박자를 놓쳤고

합창할 때면 불협과 삑사리도 화음과 추임새라 우겼다.

체육 시간 어색한 몸부림은 거의 블랙 코미디에 가까웠다.

나와 그들의 끝없는 실수담은 답답한 학교 분위기를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그림을 그리고 붓글씨를 쓰고 리코더를 불고 식물 이름을 달달 외우고...

민망한 쫄쫄이 무용복을 똑같이 맞춰 입고 춤을 출 때는

아무나 교사가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고

극한 직업 훈련임을 절감했다.

하지만 다시 주어진 인생 2회 차 배움의 기회는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했다.


7명의 첫 엠티의 기억.

맥주잔을 앞에 두고 **언니가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놨다.

일찍 돌아가신 엄마 이야기에

줄줄이 사탕처럼 서로의 인생 이야기가 터져 나왔고

그날 우리는 사정없이 무장 해제됐다.

마음의 장벽이 무너진 7명은

자매보다 더 각별한 사이가 됐다.


경쟁이 치열한 교대에서 우린 좀 남달랐다.

학점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음을 작은 인생 경험을 통해 알았던 것이다.

“못할 수도 있지.”

“괜찮아.”

“그거 중요하지 않아.”

“같이 하자.”

동기들이 없었다면 아마도 난 지금 교단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환갑도 안된 친정엄마의 갑작스러운 암 선고와 영원한 이별,

임용시험이고 다 포기하고 싶던 순간.

“뭐든 도와줄게.”

“언니, 시험 같이 보자.”

손잡아 주던 동기들을 만난 건 일생의 큰 행운이었다.


“괜찮아. 천천히 와. 바쁜 거 없다.”

모임 시간을 훌쩍 넘겨 완전체가 된 우리들.

오늘 모임 기획과 진행은 **다.

1안, 2안, 3안까지 치밀하게 계획을 잡았다.

과천대공원 둘레길을 걷고 국립미술관을 보고 근처 맛집서 맛있는 점심.

만남이 늦어 미술관 주변을 간단히 산책하는 일정으로 바꿨다.

“언니, 요렇게 서봐.”

“미술 작품 우리 따라 해 보자.”

“와~~ 이 사진 대박이야. 구름이 예술이야.”

멋들어진 소나무가 있고 조각상에 감탄하면서 하하 호호.


“나 학교에서 완전 진상 선생 된 얘기 좀 들어봐 봐.”

“우리 반 금쪽이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팁 좀 알려줘.”

“우리 둘째 학원도 못 가잖아. 단계 테스트에서 떨어져서. 어째야 해?”

학교 이야기, 반 이야기, 아들딸 이야기.

만나면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정말 끝도 없는 수다 퍼레이드 펼쳐진다.

“어? 시간이 어중간하니 그냥 밥 먹자. 그냥 맛집 말고 여기서 먹지 뭐.”

“그래그래. 그러자.”


애 셋 엄마 된 **이까지 합류하면서 점심상은 더 풍성해졌다.

“가격도 싸고 맛도 최곤데?”

“우리 계획은 이게 아니지 않았어?”

“바뀌라고 있는 게 계획인데 뭘.”

“우리 큰 형님 더 이상 제사 못 지냈겠다고 선언했잖아.”

“어머머, 자세히 좀 얘기해 줘.”

“난 그 큰 형님 마음 충분히 이해돼.”

“언니, 중간에서 잘했네.”

수다 삼매경에 미술관 관람도 패스.


“아, 우리 집 비었다. 갈까? 여기서 가까워. 가자.”

일정이 또 바뀌었다.

계획적이고 주도면밀한 **와 **는 좀 힘들겠다.

그래도 웃음으로 받아주는 그들.

“이 시점서 우리 설문 한번 해보자.”

“수업이 원래 계획과 늘 달리 진행되는 사람 손?”

7명 중 네 명이 손 든다.

또 웃음보 터졌다.

사람 참 안 변한다.


“저기 유채꽃 이쁘다. 가서 사진 찍고 가자.”

오늘 중으로 **네 집 갈 수 있을까?

그늘에 바람 불어 좋으니 멍 때리고 가잔다.

대공원을 내려보며 제각기 사색에 빠졌다.

“우리 집은 못 가겠네. 여기서 너무 많이 놀았어.”

**가 또 계획을 바꿨다.

“사당역서 차나 한잔하지, 뭐.”

“그래, 그것도 좋아.”

지도 앱 켜서 커피숍을 찾는 **와 **.

어느 조직이든 일을 벌이는 자와 수습하는 자가 있다.

**와 **는 사방팔방 튀는 우리를 수습하고 균형 잡는 역할이다.


사당역으로 이동한 7명.

“커피숍이 적당하지 않네. 저기 맥줏집 가자.”

“그래, 좋다 야! 이런 날씨엔 시원한 맥주지.”

골뱅이와 치킨을 먹으며 또 나라와 교육과 가정과 나의 아이들 이야기가 펼쳐진다.

함께 공부하며 그렸던 교사로서의 삶,

우리를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 우려의 시선, 위로의 시선을

덤덤히 얘기한다.

그러고는 다짐한다.

우리 몫을 함께 묵묵히 해내자고,

그 길 함께 하자고 토닥여 준다.

이들과 함께라면 난 또 거뜬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야, 너 오늘 계획한 거 하나도 못 했다.”

“에이, 그게 뭐 인생이지.”

내 인생의 보물 같은 6명의 동기와 보낸 하루.

다음 모임은 또 어떤 웃음으로 또 어떤 시트콤이 펼쳐질지

벌써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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