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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곰 Sep 26. 2023

도움 받아본 사람이 남을 돕는 법

3 day 친절한 마음은 전염된다


전날 3.4km를 더 걸어왔기에 오늘은 17.5km만 더 걸으면 됐었다. 팜플로나까지 가는데 중간에 마을도 많고 풍경도 아름다워서 순례길을 걸으면서 제일 편한 날이 아니었나 싶었다. 




숲길을 지나가는데 한 순례자가 절둑거리며 스틱을 도움닫기로 쓰는 게 아니라 지팡이로 쓰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었다. 본인도 문제가 생긴 걸 아는지 엄청 천천히 걸어가고 있었는데 그 광경을 나는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피레네를 넘을 때 닉 가족의 도움을 받은 것이 스쳐 지나가서) 


그를 불러 세우고 간단한 내 소개를 한 뒤 무엇이 문제인지 물어보았다. 그는 무릎이 문제인 것 같다고 이야기해 주었었다. 가방을 내려놓은 다음 그의 바지를 걷어 올리고 몇 장 없는 파스를 그의 다리에 붙여주었다. 무릎에 붙이는 게 아니라 무릎 뒤쪽의 오금에 파스를 붙여야지 효과가 있다는 지식을 부모님을 통해 배웠기에 그에게도 앞이 아니라 뒤에 붙여야 한다고 손짓발짓을 통해 열심히 설명했었다.

파스가 잘 붙고 약물이 들어가기 쉬운 혈관이 많이 모인 곳에 파스를 붙여야 약물이 혈관을 타고 통증을 느끼는 부위에 잘 전달이 되어서 더 빠른 파스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에게 한국의 파스를 설명해야 했는데 도무지 파스 말고는 대체 영어가 안 떠오르는 거다. 파스라고 이야기해도 그는 "파스?" 이해하지 못하길래 "메디컬 페이퍼"라고 설명해 버렸다.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긴 했지만 그는 나의 불법(?) 시술(파스 붙이는)을 받아 주었다.


고맙다고 본인은 닉이라고 했다. 벌써 2명의 닉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스틱을 지팡이로 쓰는 닉




팜플로나는 순례길에 위치한 첫 번째 대도시이다 그래서 내가 방문한 날에 시장이 열려서 과일들을 팔고 있었는데 처음으로 스페인어를 번역기 돌려서 오렌지를 하나 구입한 날이기도 했었다.


막상 시장에 도착했지만 언어의 장벽을 넘지 못해 쭈뼛거리며 과일들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한 할아버지가 이방인처럼 오렌지만 바라보는 나에게 몸짓의 소통을 하시더니 오렌지를 가리키며 손가락 하나를 올렸었다.


"우노?"(스페인어 : 하나)


우노가 뭔지 모르지만 손가락 하나를 보니 한 개를 의미하는구나 느끼고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고 상인과 이야기하더니 값을 지불하라고 했었다. 노상인도 말로 하면 내가 못 알아듣는 것을 알고 계산기에 숫자를 써서 보여주었다. 그렇게 첫 구입한 스페인 과일이었다. 비타민을 챙겨 먹어야 해!라고 생각해서 구매했던 것인데 생각보다 과즙의 단맛이 많이 느껴져서 만족했었다.


그렇게 30분 여분을 더 걸어서 성벽을 지나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팜플로냐 마을 중심부로 들어가는 성벽
합스부르크 왕가의 왕인 펠리페 2세가 16세기 세운 팜플로나 성벽은 높고 단단해 ‘무적의 요새’로 유명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뚫리지 않았던 성벽은 19세기 들어 프랑스군에 의해 ‘무혈’ 함락된다. 스페인을 공략하던 나폴레옹은 팜플로나를 창으로 뚫을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꾀를 냈다.  

겨울이 되자 프랑스군 병사들은 성벽 앞에서 눈싸움을 하는 척했다. 이 모습이 재미있어 보였던 스페인 병사들은 성문을 열고 눈싸움을 하기 위해 나왔다. 이때 프랑스 병사들이 눈 속에 숨겨두었던 무기를 꺼내 스페인군의 항복을 받아내고 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오늘 묵을 알베르게는 좀 비싼 편에 속하지만 대성당이 앞에 있다는 메리트가 좋아서 선택하게 되었다. 11시에 도착했지만 체크인을 해주길래 가방을 내려놓고 관광객이 되어 홀로 다니고 있었는데 우르다니즈에서 만났던 빅터와 남자 한 명을 만나게 되었다.


같이 있던 사람은 준, 첫인상은 유심이 안된다며 방황하는 한국인이었다. 점심때이기도 했고 바로 앞에 있는 버거킹을 가자고 했는데 빅터는 햄버거가 당기지 않는다며 파스타를 먹으러 떠난다는 게 마지막 모습이었다. 결국은 준과 같이 버거킹에 들어왔는데 항상 순례자 메뉴만 먹다가 처음으로 키오스크를 사용하는데 너무 익숙지 않은 거다. 이미지만 보면서 뭔지 모르는 치즈버거 세트를 고르고 카드로 결제했는데 영어가 막 뜨더니 ok를 눌렀더니 영수증이 길게 쭉 출력이 되길래 주문이 완료된 줄 알았었다.


30분을 기다리는데 메뉴가 안 나오길래 영수증을 들고 내가 주문한 음식이 안 나온다고 항의했는데 갑자기 직원이 소프트콘을 하나 손에 쥐어주는 거다 그래서 '아 내 음식이 준비하는데 오래 걸려서 미안해서 주는구나' 생각하고 자리에 앉아서 준에게 유심 사용방법을 알려주는데 30분이 더 지나도 안 나와서 다시 따지러 나갔었다. 직원은 뭐라 뭐라 설명하는데 하나도 못 알아들어서 ok 하고 자리에 앉아서 혹시나 해서 내 영수증을 번역해 보았었다.


아니나 다를까 내 카드가 문제가 있다고 결제취소 명시가 된 내용이었다. 영수증이 20cm로 나오길래 당연히 주문되었다고 생각한 나의 잘못이었다. 얼마나 바보 같이 보였을까 취소 영수증을 들고 메뉴가 안 나온다고 항의하는 외국인.. 참 부끄러웠다. 현금으로 계산을 누르고 결국은 1시간이 지난 이후 내 햄버거를 받을 수 있었다.


근데 아이스크림은 왜 공짜로 준거지?




준과 헤어지고 유럽의 건축양식들을 보면서 어쩜 이렇게 조형미 있는 건축물을 과거에 만든 건지 감탄하면서 산책을 즐겼었다.




유럽은 블록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알록달록한 건물 사이로 하늘을 가둔 듯한 연출된 사진들이 많이 찍힌다. 나는 이런 조형적인 건물의 색감과 파란 하늘의 색감이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다시 숙소로 들어왔더니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으면서 만났던 제이미, 알레스가 숙소에 도착해 있었다. 시간은 16시 왜 이렇게 늦게 도착했냐고 물어보니까 피레네를 넘으면서 쌓였던 피곤 때문에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제이미는 다리를 절뚝거리고 있었다.


아침에 샀던 오렌지를 그들에게 나눠주며 비타민을 보충하라고 이야기하고 남아 있던 파스를 설명과 함께 샤워하고 붙이라고 주었다. 침대에 누워서 쉬고 있었는데 알레스가 오더니 데카트론에 갈 예정인데 같이 갈 거냐고 물어보았다. 딱히 할 게 없었던 좋다고 응했고 쫄랑쫄랑 따라갔었다.

첫 미국인 친구 제이미

하지만 알레스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하는 친구였고 1시간 동안 쇼핑했다. 나랑 제이미는 여자친구의 쇼핑을 기다리는 남자친구처럼 한쪽 구석에 앉아서 알레스가 보일 때마다 손을 흔들면서 장난을 쳤었다. 쇼핑이 끝나고 제이미와 알레스는 저녁을 먹으러 갈 예정이라고 따라올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외국인들과 있는 자리가 너무 불편했던 나는 거절을 했었다.


혼자 다시 열심히 돌아다니다 한인 마트를 발견하고 저녁으로 먹을 라면을 하나 샀다. 이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녁을 간단하게 때우자는 생각이었다. 신라면 컵라면과 레몬 스프라이트 음료수를 하나 구입해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마침 3~4명의 사람들이 각자 홀로 음식을 준비하고 있길래 같이 낑겨서 물을 데운 다음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의 행동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집에 들어가서 누군가의 일상을 지켜보는 느낌, 꾸밈없이 각자의 식사를 준비하는 모습들이 너무 평온했었다.


내가 올려둔 물이 끓을 때 즈음 생장에서 처음 만났던 닉이 내 앞에 앉았다. 내가 앞에 놓인 컵라면에 관심을 가졌는데 그게 무엇이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신나게 신라면에 관해서 설명해 주었다.


"분말 스프를 넣고 3분간 기다리면 이것의 요리는 끝나 한번 먹어볼래요?"


그는 흔쾌히 좋다고 응했고 면을 덜어가는 순간에 그의 식단이 보였다. 온통 채소를 먹고 있길래 그를 다급하게 멈춰 세우고 컵라면 육수는 고기베이스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당신이 비건이면 먹지 못한다고 말했는데 그는 웃더니 오늘은 샐러드가 먹고 싶어서 해당 식단을 구성했다고 했었다. 멈췄던 면을 접시에 덜어가더니 갑자기 면을 칼질(?)하기 시작했다.


"닉! 한국 라면은 썰어먹지 않아요 젓가락이 없으니 포크로 떠서 호로록 먹는 방식으로 먹습니다"

면을 칼로 썰어먹는 닉




식사를 마치고 앉아 있었는데 제이미, 알레스가 잠시 짐을 두고 왔다며 블로와 다른 친구들과 술을 먹을 건데 같이 갈 거냐고 다시 권유했지만 이 또한 거절했었다.. 참 그때를 생각하면 도전에 대한 것들을 무서워했었다. 그냥 술 같이 먹는 건데 영어로 대화하는 것을 무서워해서 그랬었다. 


둘이 나가고 30분 뒤 침대에 누워있다가 너무 심심해서 밖으로 나갔더니 엄청 시끌시끌했다 항상 그런 건가 싶었는데 오늘은 무슨 축제 같은 게 있었다고 한다. 그들에게 연락해도 술을 먹고 있는지 연락을 받지 않길래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일찍 잘 준비를 했었다.


제이미 당신의 호의가 싫어서 거절한 것은 아니었어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변화를 두려워하고 도전이 어려웠었어 항상 만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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