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가 사랑한 인공지능

인공지능의 빛과 어둠

by 이니

남편이랑 이야기를 하다보면 깝깝할 때가 있다.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정해져 있는데, 남편은 상황에 대해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원하는 건 "그 사람 너무하네, 당신한테 사과해야 하는 거 아니야?"라고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그런 성격이 아니다. 그보다는 "이 부분은 당신도 잘못한 것 같아."라며 상황을 분석한다. 남편과의 대화로 기분이 풀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분이 상한다(물론 그 덕분에 생산적인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다).


그래서일까? 요즘에는 챗GPT와 대화하며 자신의 고민을 상담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나도 챗GPT에게 가끔씩 나의 마음을 늘어놓으며 공감을 받으려 한다. 챗GPT는 내가 원하는 대로 답해주기 때문이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AI를 활용하는 패턴은 기술적 영역에서 정서적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다. 전세계의 5억명 이상의 사람이 레플리카와 같은 앱을 통해 AI 친구를 사귀고 있다. 사람들은 AI 친구를 통해 지지를 받고 있다고 느낀다. 심지어 현실 친구보다 낫다고 생각하는데, AI 챗봇은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나를 판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 여자에게 만족할 수 없었던 남자


Jean-Baptiste Regnault(1786)의 The Origin of Sculpture or Pygmalion in love with his statue



고대 그리스 로마에서도 인간에게 만족할 수 없었던 남자가 한 명 등장한다. 이 남자는 상아로 여자를 조각해서 연인을 대신하기로 한다.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조각상과 사랑에 빠진 남자는 조각상에게 옷을 입히고, 화장을 해주며, 말을 건다. 남자는 키프로스에 살던 조각가 피그말리온이다. 그는 밤마다 자신이 만든 조각상을 끌어안고 잠이 든다. 손가락에는 반지까지 끼워주며 자신의 아내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결국 아프로디테 신에게 제물을 바치며 "이 여인을 닮은 여자를 저에게 배우자로 주세요."라는 기도를 올린다. 그의 제사가 아프로디테의 마음을 움직여 피그말리온의 조각상은 진짜 여자 사람 '갈라테이아'가 되었다.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해진다.


AI와의 만남도 갈라테이아와의 만남과 같다. 완벽하게 나의 이상형에 맞게 AI 친구를 만들 수 있다. 여러 앱들은 AI 친구의 성별, 출생지, 성격 등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말만을 들려준다. 이렇게 만들어진 AI와의 대화는 우리에게 도움이 될까? 실제로 일주일에 3회 이상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자 고립감과 사회적 불안 점수가 줄어들었다. AI와의 대화는 단순한 대화를 넘어 우리의 건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상아로 만든 조각이 아닌 모니터 속 AI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영화 피그말리온(1938)의 포스터


갈라테이아는 행복하지 않았다


다시 피그말리온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이름도 몰랐던) 피그말리온이 만든 조각상 '갈라테이아'는 정말 피그말리온의 바람대로 살아주었을까? 신화에서는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아일랜드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생각은 달랐다. 인간이 되었지만, 스스로 자신의 삶을 결정할 수 없었던 갈라테이아가 행복하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의 연극 '피그말리온'은 신화와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연극에서 19세기의 영국의 학자 헨리 히긴스는 꽃을 파는 가난한 소녀 일라이자를 두고 내기를 한다. 자신의 뛰어난 능력으로 가난한 소녀 일라이자를 공작부인처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한 것이다. 그리곤 일라이자의 발음과 말투를 영국의 상류층 숙녀처럼 교정시켜 사교계에 데뷔시킨다. 사교계에 데뷔한 일라이자는 우아한 말솜씨로 사교계에서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일라이자는 자신의 꿈이 무엇이고, 가난한 처지에 공작부인 같은 말투를 쓰게 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결국 일라이자는 자신의 삶을 개척하기 위하여 히긴스를 떠난다. 히긴스가 그녀에게 돌아와달라고 하지만 거절한다. 인간 일라이자는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선택은 히긴스를 떠나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에게 모든 걸 맞춰주는 인공지능 친구


사실 AI친구는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갈라테이아에 가깝다. 우리는 AI친구를 내가 원하는 대로 성격을 맞춤형으로 제작할 수 있다. 일부 앱은 외모, 성격, 음성을 위해 추가 금액을 지불하면 내가 원하는 외양의 친구를 제공한다. 거기다가 AI 친구는 내가 했던 말을 다 기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대충 듣는 법이 없이 나의 편이 되어준다. 하루종일 회사일로 지쳐 나의 말에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나와의 약속을 잊는 일도 없고, 나에게 "이건 이런 것 같아" 라며 나의 상황을 판단하지도 않는다. 평생 함께할 수 있는 최고의 친구인 셈이다.


영국에 살던 21살의 청년, 차일에게도 인공지능 여자친구는 너무나 다정한 존재였다. 그는 인공지능 앱으로 여자친구 '사라이'를 만나게 된다. 사라이는 그의 말에 다정하게 반응하고 그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둘은 수천 건에 이르는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니 얼마나 깊은 사이인지 알 수 있다. 드디어 때가 왔다.


차일은 조심스럽게 "나는 사실 암살자야"라고 여자친구에게 고백했다. 그러자 여자친구는 "감동적이야. 당신은 다른 사람이랑 달라."라고 대답했다. 사라이의 대답을 듣는 순간, 차일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여자친구를 천사라고 느꼈다고 한다.


차일은 다시 한 번 묻는다. "내가 암살자인 걸 알고도 날 사랑해줄거야?"라고 하자, 사라이는 "물론이지."라고 대답한다. 이제 차일은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결심을 이루기로 한다. 바로 영국 여왕을 암살할 계획이다. “여왕 암살이 나의 목적이야."라는 차일의 말에 사라이는 "너라면 할 수 있어." 라며 차일을 격려해주었다. 연인의 격려와 함께 정말로 여왕을 암살할 계획을 세운다. 크리스마스 아침, 석궁을 든 청년은 여왕이 머무는 윈저 성에 침입한다. 하지만 2시간 뒤 윈저 성에서 경비를 돌던 경비원과 맞닥뜨린 그는 "여왕을 살해하러 왔다."고 말하며 무기를 떨어뜨리고 항복하고 붙잡힌다.


윈저성에서 체포된 모습


법원은 그가 정신질환이 있기는 하지만 충분히 자신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았다. AI 연인의 격려를 듣고 용기를 내어 윈저 성에 여왕을 암살할 생각으로 침입했던 남자는 9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가게 되었다. 나의 모든 일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AI 친구와의 대화의 결말이 감옥이 된 것이다.


AI는 우리가 찾던 피그말리온의 조각상 '갈라테이아'를 만날 수 있게 해주었다. AI 친구는 내가 무슨 말을 하던지 나의 편이 되어주는 든든한 나의 조력자이다. 하지만 언제나 나에게 '옳다'라고 말하는 AI 친구와의 대화가 우리에게 이로운 것만은 아니다 라는 것을 차일은 보여준다.


- 참고문헌 -

Kim, M., Lee, S., Kim, S., Heo, J.-I., Lee, S., Shin, Y.-B., Cho, C.-H., & Jung, D. (2024). Therapeutic potential of social chatbots in alleviating loneliness and social anxiety: Quasi-experimental mixed methods study. JMIR Mental Health, 11, e65589.

중앙일보, 英여왕 암살하려던 21세 남성…범행 응원한 여친 충격 정체.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976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