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만 레벨 업?

기술이 인간을 바꾸는 시대, 우리는 어떤 인간을 꿈꾸는가

by 이니


공부 잘하는 약 주세요


ubhakO_y8m3bE5BQfvFzVU6fYg0.jpg 불이 꺼지지 않는 대치동의 밤


한국의 교육열은 대단하다. 2000년대 초반에는 'R'과 'L'발음을 잘 구분하기 위해 혓바닥 아래를 절개하고, 혀를 길게 하는 설소대 절제술이 화제가 되었다. 혀를 길게하면 혀의 유연성이 높아져 영어 발음이 좋아진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수술과 영어 발음이 무관하다고 알려지면서 설소대 절제술도 점차 사라져갔다. 설소대 절제술이 사라진 자리를, 이제는 '공부 잘하는 약'이 채우고 있다.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치료하는 성분이 주의력과 행동을 제어하는 뇌를 활성화하고, 집중력이나 기억력 같은 기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ADHD 환자가 늘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를 잘하기 위해' 활용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동원된다. 만약 두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해서 공부를 잘할 수 있다면 어떨까? 아마 설소대 절제술이나 ADHD 약 처방처럼 인기를 끌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는 테슬라로 알려진 일론 머스크의 또다른 기업 중 하나는 뉴럴링크이다. 뉴럴링크는 컴퓨터를 뇌에 연결해서 상호작용을 돕는 기술을 개발한다. 쉽게 말해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게 해주는 기업이다.


인공지능으로 레벨 업?


2ee3ef1949a81acc6aabf2cff79101ab.jpg 뉴럴링크의 첫 임상시험 참가자인 놀란드 아르보. 출처 : 과학동아


뉴럴링크는 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Brain-Computer Interface) 기술을 개발한다. BCI는 칩의 형태로 만든 장치로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첨단 기술이다. 2021년 뉴럴링크는 뇌에 칩이 이식된 원숭이가 게임을 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처음에는 조이스틱을 활용하여 게임을 하고, 조이스틱이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일 때 스무디 보상을 주었다. 뇌파만으로 게임을 조작하는 방식이 구현된 것이다.


2024년에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 공개되었다. 놀란드 아르보는 다이빙 사고로 어깨 아래 모든 신체가 마비되었다. BCI 장치를 두개골에 이식한 아르보는 미세 전극을 통해 신경세포(뉴런)와 전기 신호를 주고받으며 생각만으로 컴퓨터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뉴럴링크의 목표는 그것이 아니다. 뉴럴링크의 최종 목표는 뇌에 칩을 심어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고,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는 슈퍼 인텔리전스를 만드는 것이다. 마치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처럼 인간이 슈퍼 인간으로 다시 거듭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을 넘어서 신체, 정서, 도덕적 수준을 과학기술을 통하여 달성하고 이것을 인간의 지향점으로 보는 사상을 포스트휴머니즘(트랜스휴머니즘)이라 부른다. 이 때 인간이 나아갈 방향을 한 마디로 '인간 향상'이라 부른다.


중증 지체 장애인이 기술을 통해 보다 편리하게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히 기술적 진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향상과 치료는 다르다. 치료와 달리 향상은 '더 좋게' 만들기 위한 것을 목적으로 한다. 트랜스 휴머니스트들은 과학 기술을 치료에만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 좋은 기술을 '인간을 더 좋게!' 만드는 데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인간을 향상시키려는 욕망은 첨단 기술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더 나은 인간'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5만 달러짜리 난자


image_wrapper.jpg 우생학 증명서


인간을 더 좋게 만들려는 열망은 뉴럴링크 같은 최첨단 기술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좋은 유전자', '우수한 능력'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인간을 향상시키려 했다. 마이클 샌델의 책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에서는 아주 재미있는 광고가 등장한다. 바로 '프리미엄 난자'를 찾는 광고다. 한 불임 부부가 난자 공여자를 찾으면서 "아이비리그 대학 출신, 175cm 이상의 키, 튼튼하고 날씬한 몸매, SAT 점수 1400점 이상의 여성의 난자"의 대가로 5만 달러를 지불하겠다고 한 것이다. 불임 부부는 공부도 잘하고, 아름다우며, 건강한 여성의 유전자를 원할 뿐이다. 결혼할 때 우리도 외모와 능력을 보긴 한다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광고는 마음이 불편하다.


사실 인간을 향상시키려는 욕망은 첨단 기술의 산물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왔다. 과거에는 보다 노골적으로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는 방식으로 인간 향상을 시도했다. 대표적인 것이 과학의 탈을 뒤집어 쓴 '우생학'이다. 영국의 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은 우생학을 "한 인종의 타고난 특성을 개선, 발달시키는데 영향을 주는 모든 요소를 다루는 과학"이라고 정의했다. 이렇게 들으면 좋은 배우자를 만나 우수한 자녀를 낳고 싶어하는 우리의 열망과 큰 차이가 없어보인다. 하지만 골턴의 주장은 <네이처>에 실리며 과학적인 권위를 얻고, 과학자와 정치인들의 지지를 받으며 점차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미치게 된다.


초기 우생학은 열등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결혼과 출산을 제한하는 소극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지적, 신체적으로 우수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아 인류를 개선하는 적극적인 형태로 나아간다. 처음으로 우생학이 합법화된 곳은 미국이다. '벅 대 벨'(Buck vs. Bell) 사건은 우생학에 강력한 영향을 준 판례로 남아있다. 1927년, 캐리 벅이라는 여성은 양부모의 조카에게 성폭행을 당해 자녀 비비안을 출산하게 된다. 의사들은 캐리가 지적장애가 있던 친모처럼 자녀를 돌볼 능력이 없다고 판단했고, 캐리는 정신질환자 수용소로 보내 불임수술을 당한다. 벅 대 벨 판결에서 버지니아 주의 강제 불임 시술은 합헌으로 결정이 난다. 이것이 미국 전역의 강제 불임 시술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법적 기반이 된다. 무려 1936년까지 6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강제로 불임시술을 당했다.


벅 대 벨 사건은 이후 독일 나치가 인종 청소의 명분으로 인용하는 판례가 된다. 독일 나치는 우수한 아리아 인종의 결혼과 출산을 적극 장려하는 동시에 인종청소, 강제불임, 안락사, 집단 학살 등을 실시한다. 나치 독일은 더 극단적인 불임법을 시행하여 3,40만 건의 불임 시술을 집행한 것으로 추정된다.



레벨 업이 뭐가 문제야?


우생학까지는 아니더라도,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좋은 유전자를 물려주고 싶은 마음까지는 비판하기 어렵다. 하지만 '프리미엄 난자'를 구하는 광고는 확실히 내키지 않는다. 뉴럴링크를 통해 인간 향상을 꾀하는 것도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하다. 이 때 마이클 샌델은 '공정성'이라는 카드를 꺼내든다.


샌델은 유전공학 기술을 활용해 운동 선수들의 기능을 향상시키는 사례를 통해 인간향상을 비판한다. 육상 선수들은 혈액 속에 적혈구 농도가 높으면 근력이 극대화되어 유리해진다. 그래서 일부 선수들은 검출되지 않는 호르몬이나 약물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금지되고 있다. 그런데 특수한 시설을 통해 혈액의 적혈구 농도를 올려줄 수 있다면 이건 괜찮을까? 샌델은 이런 시도가 스포츠의 경쟁을 오염시킨다고 본다. 경쟁력을 인위적으로 향상시키는 것이 결국 사회적으로 차등화와 위계화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결국 인간 향상은 인간의 계급화를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샌델은 단지 기술 사용의 허용 여부가 아니라 기술이 불러오는 도덕적 위계와 사회적 차별 구조 자체를 문제 삼는다. 향상은 단순한 개선이 아닌 누구에게 더 많은 '기회'가 돌아가는지를 따지는 문제인 것이다.


5b7ea466-5721-49a4-9717-428fb7b304de.jpg 남자 육상 1만m에서 우승한 셀레몬 베레가의 모습 출처 : 연합뉴스


최근에 유사한 사례로는 2021년 도쿄 하계 올림픽의 나이키의 신발이 있다. 탄소 섬유를 활용한 나이키의 '줌X 드래곤 플라이'와 '줌X 베이퍼 플라이'를 신은 선수들이 육상 남자 1만 m 금은동, 여자 100m 금메달, 남자 100m 금은메달, 그리고 남자 400m 허들에서 은메달을 받았다. 밑창과 깔창 사이에 끼운 탄소 섬유판이 반발 탄성을 높여 적은 에너지로 추진력을 크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나이키의 신발을 신을 수 있는 사람과 신을 수 없는 사이에 분명한 격차가 존재하게 만든다. 기술은 평등하게 열려 있는 듯 보이지만 결국 그것을 누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나눈다. 포스트휴머니즘이 그리는 '인간 향상'의 세계는 결국 돈이 있어야 가능한 업그레이드 세상일 뿐이다


물론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흑인이든 백인이든 모든 인간에게 기회가 열려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수사는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미 지금도 거대 자본의 지원을 바탕으로 최첨단 기술을 도입해 훈련한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 사이의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논의를 인공지능으로 가지고 와서, 인공지능 기술을 도입한 장치를 몸에 부착한 선수와 그렇지 않은 선수가 경쟁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선수들 사이의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이 말하는 '우리 모두의 향상'은 결국 '소수만의 레벨업'으로 귀결된다.


우리는 인간을 '더 좋은' 인간을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기술을 동원해 왔다. 하지만 정말 좋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 더 똑똑하고, 더 아름답고, 더 빠른 인간이 좋은 인간인가? 그리고 더 좋은 인간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도 되는 것인가? 우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에 몰두한 사회의 단면을 들여다보며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리고 '더 좋은 인간'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무엇을 위해 향상되고자 하는가?" 그리고 "그 경쟁은 과연 나의 것인가?"



- 참고문헌 -


중앙일보, "육상 금·은·동 모두 신었다…나이키 뜻밖의 '신발 도핑' 논란"

마이클 샌델,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조선일보, 머스크 "뉴럴링크 첫 임상 실험자, 생각만으로 마우스 움직여"

Medium, "How Eugenics Legislated Sterilization Around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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