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

그래서 재밌는걸지도

by fernweh



세상 일은 내 뜻대로 안된다. 원치 않는 상황적 요인과 한계가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삶을 살아감에 있어 어떤 자세를 취하는 게 가장 현명할까. 그건 아마 ‘내맡김의 경지’ 일 것이다. 처음에는 화가 치밀어오르고,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스럽기도 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러나 원래 인생은 그런 거다. 지금 당장 ‘좋은’ 일처럼 보여도 끝맺음이 좋지 않을수도, 반대로 불운처럼 느껴졌던 일들이 생각지 못했던 기회로 이어지기도 하다. 그래서 인생은 참 재밌는 것.

이런 예측불허하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 이왕이면 불안보다는 유쾌함을, 의심보다는 믿음으로 무장한 채 내가 살아가는 세상 만큼은 유연하게 살아가고 싶다. 어디서부터 불어온지도, 불어갈지도 모르지만 바람은 그 어느 것에도 걸리지 않는다. 바람처럼, 파도처럼, 늘 그자리에 존재하는 무성한 녹음처럼 그저 ‘존재’하며 살아가고 싶다.


비자를 받으러 이른 아침부터 피곤한 몸을 이끌고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 갑자기 울리는 전화를 받았을 때 오늘 비자를 못 받을 것 같다는 대사관 직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솔직히 믿기지도 않고 너무 화가 나고 나의 하루가 망쳐진 것만 같고 내가 잃어버린 돈과 시간과 체력 모든 것들이 너무나 허망하고 기분이 잡쳐졌다.


그런데,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다른 대안을 찾아보자 마음 먹고 계획을 수정했다. 그러고 나니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어차피 계획대로 안되는 게 인생 아니겠나, 하며 괜히 웃음도 나왔다.


서울역에 내려서 맛있어 보이는 호두과자를 사서 오물오물 씹으며 서울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무료 전시나 실컷 보고 가야지!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천경자 화백의 작품과 아랍에서 온 작품들을 관람하였는데, 늘 그렇듯 시각/청각적 새로운 자극들을 받으며 여러 생각을 하기 보단 온전히 현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미리 예약해둔 돌아가는 기차가 2시 45분이라 점심 겸 스타벅스에 와서 빵과 커피를 먹었다. 먹고 있는데 대사관으로부터 오늘 안에 해결될 것 같긴 한데 다른 날에 방문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이제 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그냥 어찌 되든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서 일단 메일 답장을 기다려보고, 조금 기다렸다 저녁 버스나 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가고자 마음 먹었다.


무한정 기다리게 될수도 있다. 오늘 안에 제대로 해결이 안 될수도, 또는 운좋게 비자를 받고 무사히 내려갈 수도 있겠지. 그런데 뭐 어떻게 되든 받아들일 거다. 그래도 기다려 보는 건 오늘 안에 받으면 번거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으니까..


못 받으면 그냥 서울 구경 하다가 가는 거지 뭐.

인생은 어찌될지 모른다. 그래서 재밌는 거 아니겠는가.

상황을 통제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날 떄, 진정한 자유에 이를 수 있음을 안다. 그저 주어진 이 순간에 집중하며, 음미하며 살아갈 뿐이다. 내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미라클이다. 진짜로


그렇게 하염없이.. 는 아니고 일단 기다려본다. 뭐 운좋게 받을 수도 있지 않는가. 안되면 어쩔 수 없고.


나는 하고 싶은 게 참 많고 열정도 있고 때로는 그 과도한 열정이 나를 힘들게도 하지만..

그래도 그 많은 꿈들이 나를 붙잡거나 집착으로 이끌지는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꿈이 원동력이 되는 것과 나를 갉아먹는 집착이 되는 건 한 끗 차이니까.


꿈이라는 것도 어릴 적부터 품어온 거창한 목표라기 보다, 그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싶은 것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아주 사소하게 내가 먹고 싶은 걸 먹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 뿐 아니라, 준비가 필요한 교환학생처럼 에너지가 많이 드는 것도 있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있는, 무언갈 진정으로 꿈꾸고 실천해나가는 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사랑한다. 그리고 나도 그런 눈동자를 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세계를 넓혀주기보다,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가로막게 되는 것은 그것을 이루지 못한 나를 용납하지 못할 때인 것 같다.

나는 ‘꼭 무언갈 해야 한다’ 라는 강박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을 지향한다. 혹자는 그 모습을 보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젊을 땐 열정을 불태워야해.’ 라며 조언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것 또한 결국 그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일 뿐이고, 그들의 내면에 새겨진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가야해. 무언갈 꼭 성취하고 이루어야만 해.’ 라는 법칙을 나라는 배경에 투영한 것일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의 수만큼, 많고 다양한 세상이 존재한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세상을 살아간다. 우린 서로의 세상을 온전히 이해할수도, 대신 살아가줄수도 없다.


그렇기에 나도 그저 내 세상을 살아가려 한다.

’현재‘ 내 내면으로부터 비롯된 꿈을 품고 살아가지만, 그것이 뜻대로 안되더라도 괜찮다. 바람은 나뭇가지에 걸리지 않는다.


마음을 비우니 정말 평온하다. 내가 파도 앞에서 느낀 내면의 목소리, 내 존재 자체의 고유함과 고요함을 떠올린다.


어쩌면 오늘 내가 비자를 받지 못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내 뜻대로 안된 날이 삶에서 잊을 수 없는 가장 소중한 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어떤 순간이든 현재를 살아가면 된다.


무언갈 꿈꾸고 목표를 향해 노력하다 보면 현재를 놓치기 쉽다. 그렇지만 나는 꿈꾸는 삶도 참 사랑한다. 목표를 향해 노력하면서도 이게 전부가 아니라는, 내 삶의 소중함은 그저 존재함에 있다는 걸 상기하고 노력하느라 소진하게 된다면 그런 나를 지켜봐주고 보듬어주면 된다.

그렇게 또 오늘을 살아가는 거다.


아직 여러 물음표가 멤돌기는 하지만, 나는 그 물음표와 함께 살아가는 게 좋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나를 온전히 믿는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 내 꿈과 생각들을 깊이 신뢰한다.


삶은 참 재미나다!


꿈을 꾸고, 목표를 세워 노력해나가면서도,

지금에 머무르려 하고 삶의 덧없음을 느끼는 모순 가득한 나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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