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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구석 특파원 Sep 01. 2024

여의도로 출퇴근하면 성공한 인생일까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여의도로 출퇴근도 하시고... 성공하셨네요."



첫 문장부터 '저는 100억을 벌었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대뜸 꺼내서 죄송하다. 한 대학후배가 몇 년 만에 연락이 왔는데 이야기하다 보니 내게 '너 성공했네'라고 평가하는 거다. 본인이 그날 오전 SNS에 국회 상임위원회 회의 모습을 공유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전직 국방부 장관과 전직 해병대 사단장, 아울러 전직 해병대 수사단장 등... 국민적 관심사를 받고 있던 인물들이 대개 출석한 회의였다. 이런 현장을 마주할 일이 잘 없는 후배 입장에서야 '저 자식, 성공했네'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은 "성공은 무슨"이라고 회신했다. 겸양의 의미를 보여준 게 아니었다. 겸손을 인생모토로 삼고 있지만 내가 잘난 건 으스대야 적성이 풀리는 인간군상이다. 그런 만큼 '성공은 무슨'이라는 메시지 내용은 진심이었다. 



요즘 어떻게 사냐, 졸업은 했냐, 뭐 준비하고 있냐...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후배는 대학 졸업을 유예하고 대학 도서관을 전전하며 외교관후보자시험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너도 나도 힘내자'고 전했다. 



광화문/강남/여의도 등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돼서 '신분 상승' 하자는 게 대학 시절 본인 꿈이었다.


후배와의 대화 이후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사람, 국회에서 주로 일하는 사람은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고. 



본인은 스스로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대학생 시절에는 광화문/여의도/강남 등지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을 꿈꿨다. 경제적 자유라거나 영향력 있는 사회인, 믿음직한 동료들 같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직장인의 현실이란 미디어로 접한 것과는 다르다는 걸 절감 중이다. 대학생활 기억이 희미해지고 직장인으로서의 삶이 더욱 익숙해지면서 그렇게 됐다. 흔히 직장생활이란 드라마 미생 같은 것인 줄 알았는데, 실상은 영화 내부자들과 더 닮은 듯하다. (;;)



오히려, 나는 실패했기 때문에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신세라고 스스로 여기고 있는 차다. 내가 꿈꿨던 모습이란 전국 방방곡곡 사건사고 현장을 돌면서 그곳 소식을 취재/보도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기자를 꿈꿨던 이유 중 하나가 세상을 떠도는 구름을 동경해서였다. 천생 역마살 기질이 다분한 사람인지라...





그러나 본인은 기성 언론사 기자들이 겪었던 '정석 루트'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채 국회에 불시착해 버린 사람이다. 흔히 언론사에서 국회 출입기자는 '에이스'라는 이미지가 있지만 본인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기자초년병으로서 현장 경험치를 쌓은 것도 아니다. 국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데스크/선배들의 교육 같은 것은 듣도 보도 못했다. 이쪽 업계에는 '꾸미(친목 겸 취재편의를 위해 기자들끼리 만드는 무리)'라는 게 있다고 들었지만, 타사 기자들과 네트워크 형성이 전혀 안 돼 있으니 언감생심이다. 



이러한 와중에 졸지에 '정치 1번지'에 덩그러니 떨어졌다. 취재처로서 중요도가 가장 높은 곳이지만, 그만큼 취재 난이도 또한 높은 게 국회다. 본인은 약 1년 6개월째 '여의도 길냥이' 신세가 됐음을 고백한다. 




나와 상황이 비슷한, 국회에서 만났던 어떤 선배는 "마이너 매체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격려해 주셨다. 어쨌거나 매체가 작더라도 국회 출입기자로서 열심히 일해보라는 이야기였다. 



다만, 선배 격려대로 생활하고 있지는 못하다.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를 걸어 다니는 고양이처럼, 국회라는 일터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조심 배회하고 있다.



여의도 출퇴근을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하는 건 과한 일반화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그 사례가 너무 다양하다. 국회라는 공간만 보더라도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직원 등 '엘리트 직장인'들이 상당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회라는 공간을 자세히 살펴보면 방호직원, 식당/청소노동자, 도로안내원과 같은 '평범한 직장인'들이 대다수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더구나 스스로 길냥이로 여기는 본인과 같은 '회색인간 신분 직장인'들 또한 포진해 있다.  



20대 주제에 성공한 인생 따위를 논하자니 주제넘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다만, 개인적으로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가보다 더 중요한 게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라고 판단하고 있다. 



본인은 여의도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다. 그리고 내가 출퇴근하는 공간은 매번 뉴스 화두에 오른다. 뉴스 공식 문법이 '여의도 면적의 몇 배' 따위였던 적도 있다. 



그러나, 본인은 고향에서 농사짓는 동창 김아무개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다. 무엇보다 내가 그 친구만큼 열심히 살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없다. 





여의도 직장인으로 거듭난 데 대해서 대학 후배가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한 건 다소 지나치다고 여기고 있다. 중요한 건 어디에 서 있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하고 있는지라고 본다.



그 후배는 외교관을 꿈꾸고 있으니 외교관의 세계를 언급해 볼 법 하다. 어떤 외교관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 대사관에서 근무하겠지만, 또 다른 외교관은 아프리카/동남아 등 개발도상국 지역 대사관에서 근무를 이어갈 수 있다. 그렇다면 전자는 후자보다 성공한 부류의 인간인가? 



물론 현실적으로 보자면, 전자 부류는 외교 당국 내에서 '성공적인 정치질'을 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겠다... 만은 실제로 그 사람이 성공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와는 거리가 있다고 본다. 중요한 건 그 외교관이 자신의 근무지에서 맡은 소임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가라고 보기에. 



누군가에게는 여의도로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들이 근사해 보일 수 있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가 서 있는 자리에 불평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소임을 묵묵히 해낸다. 개인적이건 직업적이건 성공한 인생이라는 건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뱀다리)



국회를 드나들다 보면 이 공간에 새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흔히 여의도는 정장룩 직장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여겨지지만, '여의도 1번지'인 국회는 다소 예외적인 공간에 해당한다.




국회에는 여의도 이미지를 대변하는 국회의원, 보좌진, 국회직원 등이 상주하고 있다. 이들은 사실 국회의사당역이 아니라 여의도역에 내려도 전혀 위화감 없어 보이는 부류다.



반면, '저 사람 국회의사당 가겠네' 싶은 사람들이 꼭 있다. 주로 노동조합 조끼를 입은 시민들이라거나 이륜차 등으로 이동 중인 장애인 분들, 인솔교사 쫓아다니는 학생(유치원생) 등이다. 이 사이에 중소기업 재직 중인 본인 같은 사람도 스리슬쩍 들어가 있다. 



요즘 정치뉴스들만 보면 다들 분통 터진다는 둥, MZ세대 정치뉴스 회피도가 늘어난다는 둥, 국민이 가장 불신하는 집단 중 하나가 국회라는 둥 우울한 소식들이 많다. 그런 와중에 국회도 나름 '민의의 전당'으로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을 짚어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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